잠비아 루푸부에서 온 감사 편지
“ 관심과 사랑이 용기와 희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 임원 및 후원자 여러분 ! 잠비아에서 일하고 있는 김형식 루피치노 신부입니다 . 저는 지난해 9 월 ,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루푸부 공동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곳 , 루푸부는 잠비아의 Luappula 주 ( 잠비아 북쪽 ) 라는 곳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 예로부터 이곳은 수렵과 낚시가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주된 수단이었습니다 . 삶을 이어가는데에 , 수렵과 낚시만으로는 벅차기에 ZMB( 잠비아 , 짐바브웨 , 나미비아 , 말라위 ) 준관구는 이곳 루푸부에 터를 잡고 , 이곳 주민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농업 기술을 전해주고자 작은 농장과 농업학교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 더불어 , 청소년 교육을 위한 오라또리오 ( 청소년 센터 ) 와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한 본당 ( 지금은 공소 ) 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 살레시오 ZMB 준관구는 이곳 , 루푸부에서 사목을 시작한지 약 30 년이 되었지만 , 여러 가지 이유로 ( 지리적 - 물리적 어려움으로 공동체를 유지 - 관리하기가 어려움 )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사목들이 좀처럼 자리를 잡기 힘들었습니다 . 하지만 , 지속적인 살레시오 회원들의 현존과 노력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 공동체의 사목들이 서서히 자리를 잘 잡아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곳 , 루푸부 공동체는 지난 해 , ‘ 수단어린이장학회 ’ 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 ‘ 돈보스코 농업 기술 학교 ’ 를 조금 더 잘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특별히 , 더욱 도움이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줌으로써 약 20 여명의 젊은이들이 학비에 대한 큰 부담 없이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장학생 중 2 명은 올해 12 월 , 졸업을 앞두고 있고 나머지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학업과 실습에 임하고 있습니다 . 더불어 , 남자 기숙사를 새롭게 마련하여 ( 농업용 창고를 기숙사로 재건축하였습니다 ), 보다 나은 공간과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돈보스코 농업학교에서 지내는 많은 친구들이 수어장에 대한 고마움을 저에게 종종 전해주고는 합니다 .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단순히 이곳의 건물이나 환경만을 나아지게끔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 사랑과 관심은 이곳에서 지내는 젊은이들과 주민들의 마음과 생각에도 변화를 주고 나아지게 합니다 .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용기와 희망으로 변화되어 그들이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습니다 . 그 큰 관심과 사랑 , 아프리카 , 잠비아의 젊은이들을 향한 그 응원과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김형식 루피치노 신부 / 살레시오회
2019.04.17   조회수 | 2
케냐에서 온 감사 편지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걷는 행복한 길 안녕하세요 ? 지난 1 년 동안 보내주신 사랑과 정성으로 ‘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 ’ 의 열악한 환경의 초등부 , 고등부 , 전문 , 기술 교육을 받는 24 명의 아이가 한 학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기에 아이들의 감사 인사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 지난 한해는 여섯 명의 초등학생들이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서 잘 적응한 참 감사한 해이기도 합니다 . 한국에서는 기숙사가 있는 초등학교가 흔하지 않지만 , 케냐에는 전기나 물이 없는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기숙학교가 많고 , 저희 프로젝트에 속한 아이들처럼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 슬럼가의 집에서는 물과 전기도 없고 , 여러 가지 가정 문제 ( 배고픔과 부모의 알코올 중독 등 ) 에 아이들이 혼란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 방학에 집으로 갔던 아이들이 학기를 시작하기 위해 올 때면 , 표정이 한층 어두워진 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 그럴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 기숙학교에 갔던 아이들이 다시 밝아진 얼굴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을 이야기해 줄 때는 큰 기쁨을 느낍니다 .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기쁨입니다 . 성탄이면 가벼운 선물을 들고 ,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 아이들의 환경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친척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기에 그런 집에는 이래저래 딸린 가족이 참 많기도 합니다 . 어릴 적에 싱글맘을 잃은 아모스는 길거리 생활을 하다가 저희 프로젝트를 찾아왔고 , 방학에는 이모 집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이 이모 집에는 아모스와 그의 여동생만 있는 게 아니라 이모의 자녀들과 병으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자매의 자녀들도 줄줄이 있어서 생활고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 근근이 하루를 벌어 살아가면서도 그 표정은 어찌나 밝은지 그런 이모와 방학을 같이 보내는 아모스의 경우는 행복한 경우입니다 . 다른 아이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가난과 병에 찌들어 컴파운드에 들어서자마자 무력감과 절망이 밀려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이 아이들은 오래전에 이런 집을 떠나 길거리를 집으로 삼아 떠돌아다니다가 , 공부하게 되면서 거리에서 학교로 , 방학에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아이들입니다 . 이미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과 도전을 체험한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 유난히 대인 관계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고 , 도둑질이나 싸움으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 학업을 중단하고 길거리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 도전을 이겨내고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성공도 격려하고 축하해 주고픈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 1 년에 한 번 정도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서 치킨 파티를 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거쳐 간 이들의 경사에는 함께 모여서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기도 합니다 . 지난 12 월에는 마이클의 혼배성사가 있었습니다 . 고아였던 마이클은 프로젝트를 통해 초등 교육과 기술교육 과정을 마치고 , 취직해서 가정을 꾸려 아들을 낳아서 살다가 어느 정도 결혼 자금이 생기자 성당에서의 결혼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 저희 프로젝트 출신의 첫 번째 결혼이었으니 다들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 고등학생들은 잔치 마당에서 멋들어진 댄스를 선보이고 , 함께 케이크를 자르며 좋은 날을 맘껏 경축했습니다 . 마이클은 아기가 병원에서 태어나던 날에도 , 결혼식에도 부모 대신 저희에게 연락해 와서 축하해 달라고 했지요 . 마이클이 안정된 가정을 꾸려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합니다 . 그렇게 한 아이가 가장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마이클이 삶의 기회를 다시 찾고 , 행복을 얻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 도움을 주시는 작은 마음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큰 희망을 바라보며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축복을 기도해 봅니다 .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가 가득하길 빕니다 . 김현수 에우제니아 수녀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2019.04.17   조회수 | 4
방글라데시 나자렛 초등학교에서 온 감사 편지
“ 무슬림 나라에서 꽃피우는 그리스도의 사랑 ”  성탄을 맞이하여 소박한 방글라데시의 구유를 만듭니다 . 아기 예수님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아닙니다 . 집에 있는 볏단을 가지고 오며 숨겨 두었던 종이를 잘라서 만국기 모양으로 꾸미며 예쁜 수건을 찾아서 아기 예수님을 덮어 드립니다 . 몇 달 전에 수건 한 장이 없어졌는데 성탄 때 아기 예수님의 이불로 나왔습니다 . 이토록 아기 예수님을 위해서는 어느 이기심도 아낌도 없이 내놓는 이들이 저희가 사는 곳의 은인들입니다 . 나자렛의 소박한 삶의 예수님을 본받고자 이름 지어진 나자렛 초등학교 . 비록 작아서 초등학교 5 학년까지만 있지만 유치부부터 5 학년 중 졸업식 때에는 눈물도 흘리며 서로 꽃도 주면서 아름다운 선후배의 정을 나누는 장면은 가슴 따스합니다 . 지난해의 도움은 어찌 감사 드릴지요 . 아이들은 공부의 도움이 오고 간식의 변화가 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며 서로 웃고 장난하고 또는 싸우며 전과 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 그 아이들 속에서 진행하는 저희와 교사들은 살레시오라는 이름과 함께 벌써 나자렛 학교 깊숙이 도움의 손길이 있고 저희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은 이제 친숙하기까지 합니다 . 우유를 마시면서 달걀 껍질을 벗기면서 저희는 여러분들의 이름을 반복하며 아마도 이것이 보답이 되는 기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고해지는 것은 무슬림국가인 방글라데시는 지금까지도 혼란을 겪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 부정과 부패 . 범법들이 큰 공공기관에서부터 작은 상점에까지 이루어지는 이곳이지만 , 저희는 이 작은 나자렛 학교에서부터 사랑과 진실의 교육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작은 것이지만 나누어 먹고 , 싸우면 화해하고 양보하고 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교육을 말입니다 . 기대하지 않았던 가장 기쁜 소식은 이번 5 학년 아이들 24 명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점수로 국가시험을 전원 통과한 것입니다 . 참으로 기대 이상의 점수가 나와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이런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었음은 역시 후원회원님들의 나눔과 정성이었습니다 .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이렇게 매년 매 순간 소박한 나자렛 학교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저희의 소박한 기도로 후원회 회원님들의 가정과 하시는 일들 안에서 기쁨과 은총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고정란 마리피앗 수녀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2
필리핀 빠야따스(쓰레기산 마을)에서 온 감사 편지
“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 안녕하세요 ? 필리핀 빠야따스에서 인사드립니다 . 제가 필리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3 년 2 월입니다 . 공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여유로운 움직임과 친절함이었습니다 .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살 집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동네 사이에 건축한 것을 계기로 나라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처음에는 길이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집을 지으면서 “Subdivision” 을 통과하면 통행세를 내야 했고 , 연고가 없으면 부잣집 동네는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 또한 “Subdivision” 안에 잠시 머물며 살면서도 차로 짐을 나르려면 통행세를 내야 했습니다 . 또 하나는 치안이 약한 필리핀은 개인 집이나 회사에 경비를 두고 총을 갖게 하여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 선교목적으로 우리는 빠야따스 쓰레기 동네와 우리 집 옆 동네인 삥끼안을 중심으로 ,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도시 빈민가를 방문하여 가족을 만나고 , 머리를 깎아주고 , 상처를 치료해주고 , 필리핀 자매와 함께 아이들에게 교리와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도왔습니다 .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을 선정하여 장학금도 지원했습니다 . 선교의 모든 불편은 우리의 사명과 기쁨의 자극이 되어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5 년을 이곳에서 지내다가 저는 직무 이동으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10 년만인 2018 년 4 월 , 다시 제가 처음 필리핀에 와서 살던 이곳 빠야따스로 돌아왔습니다 . 10 년 만에 와보니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 여유 있던 자연의 공간들이 집과 상가로 꽉 들어찼고 , 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지금은 어디서든 많아서 무슬림 동네처럼 보입니다 . 무슬림들 중에서는 공공 사무실에서도 높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 또 이글레시아라는 교회는 천주교에서 나간 교회인데 100 미터 거리마다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여 도시와 시골에서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우리 동네에 이 교회의 본부가 있는데 넓은 공간에 학교 , 교회 , 병원 , 은행 등 크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고 하지만 , 일 년에 한두 번 성당에 오는 신자들이 많고 또 신자들 교육이 약해서 믿음과 봉사 활동이 적은 편입니다 . 도시에는 교통난이 심해 일요일을 빼고는 늘 교통체증이 심합니다 . 그래서 늘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데 현지인들은 이에 적응도 잘 되어 있습니다 . 그럼에도 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가족 간의 유대가 깊고 , 가족이 우선시 되고 있으며 ,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아 어디서나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또한 , 이어지는 많은 축제와 잔치에 참여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흥겹게 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들이 미래의 일꾼이니 그래도 필리핀은 미래의 희망이 있는 나라로 보입니다 . 우리가 일하고 있는 빠야따스 현장도 많이 변했습니다 . 예전에는 높은 쓰레기 산 위에 어른 , 아이들 할 것 없이 함께 일했는데 , 지금은 그것이 금지되어 허락받은 어른들만 일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분리된 쓰레기를 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동안 먼저 구분하여 오는 길에 고물상에 내려놓아 수입을 얻고 , 나머지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지므로 현지 사람들의 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 생활이 점점 힘들어져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 그러한 사정으로 우리 까리따스 수녀들은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일주일에 한 번 , 5 백 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면서 교리 , 머리 깎아주기 , 목욕시키기 , 상처 치료 , 장학금 지급 등 그들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그와 더불어 가정을 방문하여 영양 부족으로 체중이 미달인 3~4 세 아이들을 매년 35 명씩 선정하여 매일 식사제공 , 초기교육 , 건강증진 후 초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시작한 지도 8 년째입니다 . 처음에는 마르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센터에 왔지만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고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들로 변했습니다 . 또 장학금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은 희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으며 , 시간이 가능할 때 우리 복지센터에서 와서 함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 , 자존감 ,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 선교사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의 가정과 사회에는 문제가 늘 따릅니다 .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 또는 친구들의 꾐에 빠져 마약을 하는 어른과 어린이들도 많습니다 . 현 정부는 마약 타파를 위해 사살도 감수합니다 . 우리 동네 과넬리안 수녀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마약 자를 직접 본 그 수녀님은 오랫동안 힘들어했습니다 . 많은 마약 자들이 사살되었는데 그중 한 곳이 빠야따스였습니다 .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남편이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고 , 가끔 안 나올 때는 남편을 도망시켰다가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이런 상황과 뉴스를 보며 모두 마음 아파하며 지내기 일쑤입니다 . 가톨릭 주교들은 사살반대를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하지만 현 정부는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 우리의 희망은 우리와 함께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 가족원들만이라도 영육으로 건강하게 자라 이곳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 우리와의 잦은 만남 , 상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올바른 사회의 일꾼이 되어 빠야따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와 봉사로 임하고 있습니다 . 제가 지난 5 년 경험한 이 동네에 Junreth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 이 청년은 수원교구 신부님의 도움으로 장학생이 되어 4 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아이를 선정할 당시에는 아이의 가족은 쓰레기에서 뒤진 닭다리를 먹었고 , 밥에 소금을 뿌려 먹었습니다 . 또 전기세도 못 내 전기회사에서 법정에 오도록 하여 도와 달라고 저에게 요청해오기도 했습니다 . 저는 그 가족의 밀린 전기세를 1 년으로 나누어 갚아 주었고 , 교통비 대신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 동생이 태어날 땐 엄마와 아기가 입원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 신부님의 자비로 학비와 용돈은 매달 지급 되었지만 , 가족의 생계는 쉽지 않았습니다 . 성실한 그 청년은 4 년 과정의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은행에 정식 직원으로 취직했고 ,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까지도 자기와 같은 상황의 아이 1 명을 선정하여 매월 용돈을 주고 있으며 ,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힘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을 통해서 올해부터 Junerth 와 같은 이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시작했습니다 . 이곳에서 여러분의 도움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 Junerth 와 같은 아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며 기대해봅니다 . 민순애 베르나르도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4
남수단에서 온 감사 편지
“ 꿈을 심는 사람들 ” 한 해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 일상이 늘 같고 잎이 지고 겨울이 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 올 한해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초등학생 장학금 지원을 해 주신 덕분에 한해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다 .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모님 앞에서 폼 잡은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 남수단 톤즈에 계시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죨리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한국의 신자들이 조금씩 모은 헌금을 보내와서 이렇게 우리가 교육 혜택을 받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취지를 설명하며 시작된 일이 난민촌 어린이장학사업이 되었다 . 수천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 중 200 여 명을 선별하기가 어려워 각 공소의 제대 복사들과 전례 무용단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뽑게 되었다 . 그야말로 아수라장 속에서 성적표에 명시된 성적을 고쳐서 내거나 , 평소엔 미사에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나도 그 팀이라고 하며 막무가내로 떼쓰듯 죽치고 있는 아이들 , 부모들끼리 서로 삿대질하며 가방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실랑이하는 우리 난민촌 엄마들 . 이분들 덕에 남수단이 , 그 오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애교스러웠다 . 우리는 봉사자들과 함께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시장에 가서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흥정을 하던 시간들 , 크기별로 신겨보고 줘야 하는 신발을 수천 명의 눈이 무서워 절대 나눠 줄 수 없어 납치하듯 우리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나눠 주던 일 . 너무 남루해 보이던 아이들이 교복을 입혀 놓으니 세련미가 넘쳐 나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던 일들 . 수업료 내기 위해 사무실에 가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 한국에 계시는 고마운 분들의 몫을 대신 받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 마지 2 캠프 스쿨에 쥴리라는 4 학년 여자 어린이가 있다 .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쪽 발 소아마비로 지팡이를 짚고 살아오고 있다 . 이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별로 말도 없고 뒤처지는 아이로 보여졌었다 . 그런데 학용품 등을 내주게 되면서 유심히 보니 내면에는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멀리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갈 기회가 되었을 때 목발을 사다가 주었다 . 지팡이 하나로 온몸을 흔들며 걸어야 했던 쥴리는 이제 양쪽 목발에 의지하여 품위 있게 걷게 되니 본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부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 새로 생긴 사립학교에 학급 학생 숫자가 적어 그쪽으로 우리 아이들이 많이 입학하게 되었다 . 그러나 교육비는 훨씬 비싼데도 책걸상도 교실도 없어 두 번째 갔을 때는 대판 싸우고 왔다 . 학비 낸 거로 의자라도 사 줘야지 어떻게 휑한 공터에서 돌멩이에 앉아 공부시킬 수 있는지 하고 ... 다음에 가보니 플라스틱 의자에 우리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다 . 빠게리냐 캠프에 있는 탄달라 초등학교를 많이 밀어줬다 . 이 학교는 유일하게 NGO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 내에서 자생한 학교이다 . 처음 피난 왔을 때 피난 온 교사들이 모여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고 학부모 모임이 결성되어 학비를 조금씩 받아 분필이며 , 시험지 등을 사고 조그만 칠판을 사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야외에서 아이들 수업을 진행했다 . 그러다가 비가 올 것 같으면 집으로 다 돌려보내곤 하였다 . 교사들에게는 옷이라도 빨아 입으라는 명목으로 비누 몇 장씩을 가르친 수고비로 드렸다 . 선생님들이 아이들 미래를 위하는 사명감 하나로 1 년을 버텨 왔고 , 우리는 이 학교를 돕기로 했다 . 아홉 칸 임시 교실을 지어주고 25 명의 교사에게 월급을 조금씩 지급해 주고 고학년 아이들을 과외 수업시키게 하여 수고비를 또 지급해 드리니 , 우리 아이들의 영어 , 수학 실력도 많이 향상됨을 볼 수 있었다 . 이 학교에 우리 남수단 어린이 장학생들을 대거 뽑아서 보내 , 학교 운영에 보탬이 되게 하였고 이제는 번듯한 학교가 되어 얼마 전에는 축구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왔다고 학교 잔치를 하니 꼭 오라는 연락이 왔다 . 이렇게 1 년이 흘러가고 ,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 어린이들을 데리고 내년엔 남수단 국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너무나 척박한 이곳에서 이런 꿈을 꾸기엔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서럽고 , 아픔이 밀려오고 또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기에 포기하고픈 생각이 없지 않아 있지만 , 인생은 도전이라고 했던가 ,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우리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보다 나은 환경을 우리 어린 꼬마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 주님 , 우리 하는 일에 힘을 주시고 우리 발걸음을 지켜 주소서 . 아멘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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