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나자렛 초등학교에서 온 감사 편지
“ 무슬림 나라에서 꽃피우는 그리스도의 사랑 ”  성탄을 맞이하여 소박한 방글라데시의 구유를 만듭니다 . 아기 예수님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아닙니다 . 집에 있는 볏단을 가지고 오며 숨겨 두었던 종이를 잘라서 만국기 모양으로 꾸미며 예쁜 수건을 찾아서 아기 예수님을 덮어 드립니다 . 몇 달 전에 수건 한 장이 없어졌는데 성탄 때 아기 예수님의 이불로 나왔습니다 . 이토록 아기 예수님을 위해서는 어느 이기심도 아낌도 없이 내놓는 이들이 저희가 사는 곳의 은인들입니다 . 나자렛의 소박한 삶의 예수님을 본받고자 이름 지어진 나자렛 초등학교 . 비록 작아서 초등학교 5 학년까지만 있지만 유치부부터 5 학년 중 졸업식 때에는 눈물도 흘리며 서로 꽃도 주면서 아름다운 선후배의 정을 나누는 장면은 가슴 따스합니다 . 지난해의 도움은 어찌 감사 드릴지요 . 아이들은 공부의 도움이 오고 간식의 변화가 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며 서로 웃고 장난하고 또는 싸우며 전과 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 그 아이들 속에서 진행하는 저희와 교사들은 살레시오라는 이름과 함께 벌써 나자렛 학교 깊숙이 도움의 손길이 있고 저희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은 이제 친숙하기까지 합니다 . 우유를 마시면서 달걀 껍질을 벗기면서 저희는 여러분들의 이름을 반복하며 아마도 이것이 보답이 되는 기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고해지는 것은 무슬림국가인 방글라데시는 지금까지도 혼란을 겪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 부정과 부패 . 범법들이 큰 공공기관에서부터 작은 상점에까지 이루어지는 이곳이지만 , 저희는 이 작은 나자렛 학교에서부터 사랑과 진실의 교육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작은 것이지만 나누어 먹고 , 싸우면 화해하고 양보하고 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교육을 말입니다 . 기대하지 않았던 가장 기쁜 소식은 이번 5 학년 아이들 24 명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점수로 국가시험을 전원 통과한 것입니다 . 참으로 기대 이상의 점수가 나와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이런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었음은 역시 후원회원님들의 나눔과 정성이었습니다 .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이렇게 매년 매 순간 소박한 나자렛 학교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저희의 소박한 기도로 후원회 회원님들의 가정과 하시는 일들 안에서 기쁨과 은총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고정란 마리피앗 수녀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12
필리핀 빠야따스(쓰레기산 마을)에서 온 감사 편지
“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 안녕하세요 ? 필리핀 빠야따스에서 인사드립니다 . 제가 필리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3 년 2 월입니다 . 공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여유로운 움직임과 친절함이었습니다 .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살 집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동네 사이에 건축한 것을 계기로 나라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처음에는 길이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집을 지으면서 “Subdivision” 을 통과하면 통행세를 내야 했고 , 연고가 없으면 부잣집 동네는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 또한 “Subdivision” 안에 잠시 머물며 살면서도 차로 짐을 나르려면 통행세를 내야 했습니다 . 또 하나는 치안이 약한 필리핀은 개인 집이나 회사에 경비를 두고 총을 갖게 하여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 선교목적으로 우리는 빠야따스 쓰레기 동네와 우리 집 옆 동네인 삥끼안을 중심으로 ,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도시 빈민가를 방문하여 가족을 만나고 , 머리를 깎아주고 , 상처를 치료해주고 , 필리핀 자매와 함께 아이들에게 교리와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도왔습니다 .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을 선정하여 장학금도 지원했습니다 . 선교의 모든 불편은 우리의 사명과 기쁨의 자극이 되어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5 년을 이곳에서 지내다가 저는 직무 이동으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10 년만인 2018 년 4 월 , 다시 제가 처음 필리핀에 와서 살던 이곳 빠야따스로 돌아왔습니다 . 10 년 만에 와보니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 여유 있던 자연의 공간들이 집과 상가로 꽉 들어찼고 , 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지금은 어디서든 많아서 무슬림 동네처럼 보입니다 . 무슬림들 중에서는 공공 사무실에서도 높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 또 이글레시아라는 교회는 천주교에서 나간 교회인데 100 미터 거리마다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여 도시와 시골에서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우리 동네에 이 교회의 본부가 있는데 넓은 공간에 학교 , 교회 , 병원 , 은행 등 크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고 하지만 , 일 년에 한두 번 성당에 오는 신자들이 많고 또 신자들 교육이 약해서 믿음과 봉사 활동이 적은 편입니다 . 도시에는 교통난이 심해 일요일을 빼고는 늘 교통체증이 심합니다 . 그래서 늘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데 현지인들은 이에 적응도 잘 되어 있습니다 . 그럼에도 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가족 간의 유대가 깊고 , 가족이 우선시 되고 있으며 ,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아 어디서나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또한 , 이어지는 많은 축제와 잔치에 참여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흥겹게 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들이 미래의 일꾼이니 그래도 필리핀은 미래의 희망이 있는 나라로 보입니다 . 우리가 일하고 있는 빠야따스 현장도 많이 변했습니다 . 예전에는 높은 쓰레기 산 위에 어른 , 아이들 할 것 없이 함께 일했는데 , 지금은 그것이 금지되어 허락받은 어른들만 일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분리된 쓰레기를 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동안 먼저 구분하여 오는 길에 고물상에 내려놓아 수입을 얻고 , 나머지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지므로 현지 사람들의 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 생활이 점점 힘들어져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 그러한 사정으로 우리 까리따스 수녀들은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일주일에 한 번 , 5 백 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면서 교리 , 머리 깎아주기 , 목욕시키기 , 상처 치료 , 장학금 지급 등 그들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그와 더불어 가정을 방문하여 영양 부족으로 체중이 미달인 3~4 세 아이들을 매년 35 명씩 선정하여 매일 식사제공 , 초기교육 , 건강증진 후 초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시작한 지도 8 년째입니다 . 처음에는 마르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센터에 왔지만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고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들로 변했습니다 . 또 장학금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은 희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으며 , 시간이 가능할 때 우리 복지센터에서 와서 함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 , 자존감 ,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 선교사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의 가정과 사회에는 문제가 늘 따릅니다 .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 또는 친구들의 꾐에 빠져 마약을 하는 어른과 어린이들도 많습니다 . 현 정부는 마약 타파를 위해 사살도 감수합니다 . 우리 동네 과넬리안 수녀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마약 자를 직접 본 그 수녀님은 오랫동안 힘들어했습니다 . 많은 마약 자들이 사살되었는데 그중 한 곳이 빠야따스였습니다 .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남편이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고 , 가끔 안 나올 때는 남편을 도망시켰다가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이런 상황과 뉴스를 보며 모두 마음 아파하며 지내기 일쑤입니다 . 가톨릭 주교들은 사살반대를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하지만 현 정부는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 우리의 희망은 우리와 함께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 가족원들만이라도 영육으로 건강하게 자라 이곳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 우리와의 잦은 만남 , 상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올바른 사회의 일꾼이 되어 빠야따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와 봉사로 임하고 있습니다 . 제가 지난 5 년 경험한 이 동네에 Junreth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 이 청년은 수원교구 신부님의 도움으로 장학생이 되어 4 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아이를 선정할 당시에는 아이의 가족은 쓰레기에서 뒤진 닭다리를 먹었고 , 밥에 소금을 뿌려 먹었습니다 . 또 전기세도 못 내 전기회사에서 법정에 오도록 하여 도와 달라고 저에게 요청해오기도 했습니다 . 저는 그 가족의 밀린 전기세를 1 년으로 나누어 갚아 주었고 , 교통비 대신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 동생이 태어날 땐 엄마와 아기가 입원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 신부님의 자비로 학비와 용돈은 매달 지급 되었지만 , 가족의 생계는 쉽지 않았습니다 . 성실한 그 청년은 4 년 과정의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은행에 정식 직원으로 취직했고 ,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까지도 자기와 같은 상황의 아이 1 명을 선정하여 매월 용돈을 주고 있으며 ,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힘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을 통해서 올해부터 Junerth 와 같은 이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시작했습니다 . 이곳에서 여러분의 도움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 Junerth 와 같은 아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며 기대해봅니다 . 민순애 베르나르도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18
남수단에서 온 감사 편지
“ 꿈을 심는 사람들 ” 한 해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 일상이 늘 같고 잎이 지고 겨울이 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 올 한해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초등학생 장학금 지원을 해 주신 덕분에 한해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다 .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모님 앞에서 폼 잡은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 남수단 톤즈에 계시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죨리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한국의 신자들이 조금씩 모은 헌금을 보내와서 이렇게 우리가 교육 혜택을 받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취지를 설명하며 시작된 일이 난민촌 어린이장학사업이 되었다 . 수천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 중 200 여 명을 선별하기가 어려워 각 공소의 제대 복사들과 전례 무용단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뽑게 되었다 . 그야말로 아수라장 속에서 성적표에 명시된 성적을 고쳐서 내거나 , 평소엔 미사에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나도 그 팀이라고 하며 막무가내로 떼쓰듯 죽치고 있는 아이들 , 부모들끼리 서로 삿대질하며 가방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실랑이하는 우리 난민촌 엄마들 . 이분들 덕에 남수단이 , 그 오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애교스러웠다 . 우리는 봉사자들과 함께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시장에 가서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흥정을 하던 시간들 , 크기별로 신겨보고 줘야 하는 신발을 수천 명의 눈이 무서워 절대 나눠 줄 수 없어 납치하듯 우리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나눠 주던 일 . 너무 남루해 보이던 아이들이 교복을 입혀 놓으니 세련미가 넘쳐 나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던 일들 . 수업료 내기 위해 사무실에 가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 한국에 계시는 고마운 분들의 몫을 대신 받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 마지 2 캠프 스쿨에 쥴리라는 4 학년 여자 어린이가 있다 .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쪽 발 소아마비로 지팡이를 짚고 살아오고 있다 . 이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별로 말도 없고 뒤처지는 아이로 보여졌었다 . 그런데 학용품 등을 내주게 되면서 유심히 보니 내면에는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멀리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갈 기회가 되었을 때 목발을 사다가 주었다 . 지팡이 하나로 온몸을 흔들며 걸어야 했던 쥴리는 이제 양쪽 목발에 의지하여 품위 있게 걷게 되니 본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부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 새로 생긴 사립학교에 학급 학생 숫자가 적어 그쪽으로 우리 아이들이 많이 입학하게 되었다 . 그러나 교육비는 훨씬 비싼데도 책걸상도 교실도 없어 두 번째 갔을 때는 대판 싸우고 왔다 . 학비 낸 거로 의자라도 사 줘야지 어떻게 휑한 공터에서 돌멩이에 앉아 공부시킬 수 있는지 하고 ... 다음에 가보니 플라스틱 의자에 우리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다 . 빠게리냐 캠프에 있는 탄달라 초등학교를 많이 밀어줬다 . 이 학교는 유일하게 NGO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 내에서 자생한 학교이다 . 처음 피난 왔을 때 피난 온 교사들이 모여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고 학부모 모임이 결성되어 학비를 조금씩 받아 분필이며 , 시험지 등을 사고 조그만 칠판을 사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야외에서 아이들 수업을 진행했다 . 그러다가 비가 올 것 같으면 집으로 다 돌려보내곤 하였다 . 교사들에게는 옷이라도 빨아 입으라는 명목으로 비누 몇 장씩을 가르친 수고비로 드렸다 . 선생님들이 아이들 미래를 위하는 사명감 하나로 1 년을 버텨 왔고 , 우리는 이 학교를 돕기로 했다 . 아홉 칸 임시 교실을 지어주고 25 명의 교사에게 월급을 조금씩 지급해 주고 고학년 아이들을 과외 수업시키게 하여 수고비를 또 지급해 드리니 , 우리 아이들의 영어 , 수학 실력도 많이 향상됨을 볼 수 있었다 . 이 학교에 우리 남수단 어린이 장학생들을 대거 뽑아서 보내 , 학교 운영에 보탬이 되게 하였고 이제는 번듯한 학교가 되어 얼마 전에는 축구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왔다고 학교 잔치를 하니 꼭 오라는 연락이 왔다 . 이렇게 1 년이 흘러가고 ,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 어린이들을 데리고 내년엔 남수단 국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너무나 척박한 이곳에서 이런 꿈을 꾸기엔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서럽고 , 아픔이 밀려오고 또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기에 포기하고픈 생각이 없지 않아 있지만 , 인생은 도전이라고 했던가 ,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우리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보다 나은 환경을 우리 어린 꼬마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 주님 , 우리 하는 일에 힘을 주시고 우리 발걸음을 지켜 주소서 . 아멘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2019.04.17   조회수 | 22
말라위 돈보스코 기술대학에서 온 감사편지
먼저 여러분들의 정성 어린 성금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성금을 보내주시는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여러분들이 결코 누구보다 부유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여기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내주시는 귀한 성금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없으면 어찌 저희가 제대로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프리카에 온 지 13년이 되었습니다. 2005년 8월에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선교를 시작했고, 2008년 2월부터 말라위에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단체는 어디를 가든 청소년기술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여러 번 타운에 나가는 일이 생기는데, 갈 때마다 큰 회사나 큰 상점 또는 음식점에 가면 저희 졸업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도움을 받아 졸업한 젊은이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전기기술자나 컴퓨터 기술자 또는 회계사 또는 자동차 정비사 등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하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 직업을 갖게 되었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선교의 보람을 느낀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2005년 선교지에 온 뒤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가난으로 공부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으며, 교실이 없어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교실을 지어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감사한 일 중의 하나는, 제가 잠비아에 있을 때 저희 단체에 입회한 지원자들을 책임 맡고 있었는데 그 지원자들 중 4명의 젊은이가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비아에서 두 명이 6월 30일에 그리고 짐바브웨에서 두 명이 7월 7일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젊은이들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지도자 양성을 해나갈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교육을 해나갈 수 있는 교육자들을 양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와서 무엇보다도 심혈을 기울여 왔던 부분은 교실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실을 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영을 제대로 해야지 교육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고 건물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살레시안들은 이미 기술대학교와 청소년센터를 운영하고 있기에 저희의 교육 파트너로서 한 수녀회를 초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적어도 이분들이 오셔서 교육하기 위해서는 이분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데, 우선은 임시로라도 거처할 공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학교부지 구입과 담장건축, 교실건축 그리고 교사동 건축 등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여러분들의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과 가정을 위해서 저희들은 선교지에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김대식 알렉산더 신부 / 살레시오수도회
2018.08.24   조회수 | 155
캄보디아 뚤곡 직업학교에서 온 감사편지
+ 평화 수단어린이장학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4년을 지내고 작년 10월에 프놈펜 북서쪽에 있는 바탐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지원해주는 장학금은 이전 소임지인, 소녀들을 위한 직업센터(Computer-Secretarial course)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서, 이번 바탐방 소식은 장학생들의 이야기 대신 캄보디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주산업이 농업인 바탐방은 넓게 펼쳐진 논밭과 푸른 자연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저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듬뿍 느끼게 하는 선물 같은 곳입니다. 건기(乾期)엔 금세 타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에 웬만해선 바깥출입을 삼가야 하지만, 올해는 우기(雨期)가 빨리 온 덕에 마을로 가는 길이 늘 즐겁습니다. 제가 사는 바탐방 공동체에는 재봉을 가르치는 작은 직업센터가 있습니다. 올해는 시골에서 온 8명의 소녀가 기숙 생활을 하며 기본교과(literacy)와 재봉기술을 함께 배웁니다. 기숙 생활을 하는 66명의 여중고생들은 주중에 남자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돈 보스코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기숙생들이 학교에 가는 동안에는 80여 명의 유치원생이 빈 공간을 매일 채워줍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온종일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하지요. 저는 기숙생들을 돌보며 마을 세 곳에 있는 본당 유치원들(차로 30분~1시간 거리)을 도와주고 주일엔 마을 오라토리오(청소년들과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뛰어노는 공간)를 활성화하고 있습니다.얼핏 보기엔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마을 곳곳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유치원을 방문하거나 오라토리오를 갈 때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미소라는 단 하나의 무기로 제 마음을 쏙 뺏어가는 이 아이들은 태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에서 사는 탓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아요. 농사로 생계를 잇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다른 일거리가 특별히 없기에 많은 부모가 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수도인 프놈펜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함께 살지만, 이곳 바탐방은 가족이 물리적으로 해체된 경우가 많습니다. 할머니, 이모와 사는 유치원생 한 아이는 한 살 때 태국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 부모님을 네 살이 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 5월 성모성월에는 밤인사 시간에 매일 두 명의 기숙생이 성모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는 기회를 얻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의 빈자리를 성모님께 의탁하며 보호를 받는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몇몇은 부모님과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오랫동안 기도해서 지난 캄보디아 새해에 3년 만에 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상에 작은 꽃을 봉헌했습니다.마을을 돌아보면 이곳 아이들의 생활은 정말 단순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장난감을 갖고 시간을 보낼 상황은 아니지요. 그래서 매주 일요일 오후에 우리 집과 성당 두 곳 마당에서 오라토리오가 문을 엽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말씀한 ‘Run, jump, shout, but do not sin.’은 이곳 오라토리오의 모토입니다. 오후 1시 30분쯤 되면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축구, 줄넘기, 배드민턴 등을 하며 신나게 뛰어놉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가톨릭 정신에 대해 훈화를 듣습니다. 영상을 틀거나 리더 아이들이 주제에 맞는 연극을 준비하면 모든 아이가 금세 집중합니다. 그 후 미술, 노래, 율동, 연극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집니다. 주일 오전 미사를 봉헌하고 점심 직후 오라토리오를 위해 대문을 나설 때면 뜨거운 햇볕에 잠시 주춤합니다. ‘이렇게 더운데 아이들이 많이 올까?’‘그늘을 찾아야 하겠는데…’등 걱정이 앞서지만, 리더 친구들과 함께 오라토리오가 열리는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먼저 와 기다리던 동네 아이들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활동시간 내내, 있는 힘껏 뛰고 달리고 환호하며 땀에 젖은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제게 전달해주는지. 그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되뇝니다. ‘살레시오 수녀로서 얼마나 행복한가!’ 오라토리오 활동의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오라토리오 리더 친구들입니다. 저와 함께 사는 10 · 11학년(우리나라의 고1, 2학년) 기숙생들과 본당의 청소년들 30여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지요. 살레시오 청소년운동(SYM)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살레시오 리더로 교육받으며 오라토리오 아이들 안에 현존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리더 모임을 합니다. 이 친구들이 오라토리오에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가끔 문제가 생겨도 인내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상황을 저에게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캄보디아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저에게‘선물’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저희를 이곳에 오게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있는‘선함과 순수함’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큰 선물이지요. 주어진 환경에서 마음껏 기뻐할 줄 아는 아이들, 그래서‘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분은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라는 성 요한 보스코의 말씀을 충만히 살 수 있음을 절감하며 오늘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Run, jump, shout, but do not sin.’ 홍미나 따시아나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
2018.08.24   조회수 | 14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