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말라위 김대식 알렉산더 신부님의 편지
       존경하올 수단어린이 장학회 회원 여러분께 안부 인사드립니다 .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쁘게 저희 아프리카 말라위 살레시오회를 도와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기술학교 교실 증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8 월 중에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  이 교실들이 완공되면 많은 젊은이들이 전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여 사회로 진출하고 또 자립해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뿐 만 아니라 그 가족들과 친척들까지도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관대한 기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님의 풍성한 은총이 있으시길 이곳 말라위에서 계속 기도합니다 .  주 성모님 안에서 김대식 알렉산더 신부 드림  
2015.08.10   조회수 | 2464
캄보디아 프놈펜 돈보스코 전문기술학교 학생들의 근황 (양정식 마르코 신부)
   캄보디아 프놈펜 돈보스코 전문기술학교 학생들의 근황  2015.07.16.(목) 캄보디아 ( 양정식 마르코 신부 )    우리 장학회에서 지원하고 있는 캄보디아 프놈펜 돈보스코 전문기술학교의 근황입니다 .  매주 넷째 주 금요일에는 기숙생들의 생일 파티와 장기자랑 시간을 갖습니다 . 이 날은 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기 때문에 한껏 멋을 낼 수 있어서 모든 학생들이 기다리는 날입니다 . 지난 6 월 26 일에 생일 파티가 있었는데 , 이날은 특별히 작년 , 재작년 기술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던 봉사자들과 함께했습니다 . 공동체 원장신부님의 축복으로 축하가 끝나면 , 다 함께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댄스타임을 갖습니다 . 이 시간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뛰어난 춤 실력을 볼 수 있습니다 . 7 월 13 일부터 16 일까지는 전체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 1 학년은 오전에 2 학년은 오후에 4 일에 걸쳐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 학생들이 공부에 좀 더 공부에 집중하며 , 한 학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2015.08.06   조회수 | 1838
Nuktamanga 마을학교 공사소식 _ (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 )
  남수단 룸벡의 작은 마을 Nuktamanga.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가난한 마을의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는 Nuktamanga 마을 학교 건축비 일체를 지원하였습니다 . 2014 년도부터 계획된 이 학교는 그동안 열악한 통신과 날씨로 인한 도로사정 등으로 건축을 시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현지 건설자들의 노력이 모여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아래 사진은 지난 5 월에 있었던 Nuktamanga 마을학교 공사 현장의 모습과 소박한 기공식 사진입니다 .    
2015.07.14   조회수 | 2337
이해동신부님의 톤즈소식_ 남수단 수도 주바 방문 [1]
  안녕하십니까 ?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여러분 . 메르스 전염병 때문에 긴장해야 하는 한 주간 속에서도 무사한 일 주간이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저는 약간의 건강검사를 위해 톤지에서 이곳 주바에 와 있습니다 .    톤지에는 엑스레이 찍는 기계도 피검사를 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지 못해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주바로 오거나 멀리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야 하는 이곳 실정에 따라 저도 별수 없이 이곳에서 거의 소 한 마리 값인 950파운드를 주고 비행기 표를 사야 했습니다 . 지금 남수단의 화폐가치가 너무나 널뛰기를 해서 암시장에서는 1달러에 12파운드까지 받을 수 있고 정부 공식 은행에서 5파운 정도 밖에 못 받는다고 하니 저는 암시장 가격으로는 아마도 7-8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샀고 정부 공식가격으로는 약 18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샀는가 봅니다 .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돈 – 소 한 마리 가격이 1000파운드 정도에서 시작한다 하니 거의 소 한 마리를 공중에 날리면서 톤지에서 주바로 오게 되었습니다 .     사실 그 비행기 표를 사놓고도 비행기가 비가 많이 오는 날씨 때문이거나 , 조종사가 아파서 또는 전투지역에 징발되어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일주일 이상을 기다리다 겨우겨우 타게 된 비행기가 12인승 프로펠러 비행기였습니다 . 비행기는 톤지 공항으로 도착한다고 해서 비행기 오기 전에 한 시간 반 전에 나가보니 , 세계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공항인 톤지 공항에 비행기 탈 사람들이 큰 나무 밑에 가방을 일렬로 세워놓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12 명타는 비행기가 오는데 왠 사람이 그렇게 많이 기다리고 이 나왔나 .. 했더니 비행기표를 사고 대기 번호를 받은 사람들이 혹시나 탈 수 있을까해서 온 사람도 있었고 , 또 비행기 탈 사람들의 가족들도 오고 , 비행기 타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곳 공항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비행기가 온다는 소식에 구경을 하러 나무 밑에 웅성웅성 모여있었습니다 .         저는 탑승 번호 3번이었기에 3번째로 탑승할 수 있었는데 조종사 두 명을 포함해서 14명 큰 비행기가 아닌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니 속으로 이 비행기가 이렇게 무겁게 사람과 짐을 싣고 제대로 날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 오른 쪽을 쳐다 보아도 왼쪽을 쳐다 보아도 창밖에 날개가 3-4미터 정도 밖에 안되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바로 내 의자 밑에 비행기 바퀴가 달려 있어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일어설수도 앉을 수도 무서우면 그냥 눈감고 있는 것이 최선인 비행기였습니다 . 게다가 좀 센바람이 불면 비행기 자체가 바람에 떠밀려가는 기분이 느껴지더군요 . 정말 촌놈이 작은 비행기 타면서 무서움에 쫄면서 탔습니다 . 조종사가 이륙하기 전에 혹시 토할 것 같으면 앞 의자 뒤의 그물망에 있는 봉투를 사용하라고 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 미국의 한인 공동체에서 보좌 신부로 일할 때 본당 신자가 경비행기를 한대 가지고 있어서 가끔 카우델 공항에 가서 경비행기를 타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연습을 안 했으면 고소공포증에 쫄아서 다른 병으로보다 공포증으로 먼저 갈 뻔했습니다 .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옆 사람과 대화는 전혀 나누지 못하고 ... 그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피곤했는지 한 참을 잤습니다 . 한 참을 자고 일어나보니 조종사도 자고 부조종사도 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하기야 공중에서는 지상에서 차 운전하다가 자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 예전에 저하고 어떤 신부님하고 고속도로를 가다가 제가 조수석에 타있는데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나 운전하시는 신부님과 나 밖에 없는데 ? 내가 코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는 졸지 않고 잇다는 얘기이고 누가 조는 사람이 있나 ? 하고 살펴보았더니 글쎄 운전하시는 신부님이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으악 ! 저승사자님께 운전을 맡겼구나 하면서 운전석에 앉은 그 신부님을 깨워 정신차리게 해드린 일이 있는데 그 상황보다는 나았습니다 . 어찌 되었든 톤지의 그 가난한 사람들의 부러운 (?) 눈빛을 받으면서 이륙한 비행기는 조종사가 중간에서 좀 자고 졸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남수단의 정글이랄까 숲 위를 하느님이 하늘에서 보고 보시니 좋더라 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 정말 우리나라도 아름다웠지만 우기의 비를 맞아 처음부터 끝까지 푸르르고 푸른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는 남수단의 숲이 모습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 혹시나 숲 속에 코끼리나 사자 기린 같은 것이 보이면 줌을 이용해서라도 몇 장 찍어볼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남수단에 코끼리 사자 기린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다만 저 아름다운 숲 속에서 왜 사람들만이 피를 흘리며 부족끼리 싸우고 죽이고 할까 하면서 이 나라의 부족간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정착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잠깐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   한 시간 반 동안 하늘에서 하느님과 좀 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행하다 주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승객들을 활주로 한 가운데 내려놓고 비행기는 비행기를 묶어놓은 자리에 묶어놓고는 승객들을 실러 오는 셔틀 버스인지 셔틀 택시인지는 또 오지를 안았습니다 . 반시간 이상을 땡볕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승합차 한대가 오더니 개인 짐들을 뒷칸에 실어주고 환자와 여자승객 4사람과 저는 신부라고 "아부나 앞자리에 오세요 !" 라는 대접을 받으면서 공항 활주로를 빠져 나오는데 나머지 7명의 남자들은 어떻게 나오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의 지시를 받아 걸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   여러가지 새로운 (?) 것들을 배우면서 공항 청사에 도착해 보니 공수사님과 토마스가 나와 있어서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는 기분으로 얼싸안고 상봉의 기쁨을 나누었고 .. 톤지 집에서 11시에 나와 12시 반에 이륙하고 주바에 두시 도착 ... 집에 오니 세시가 되어 그 동안 배고픔에 허덕인 위장에 평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 식사를 다하고 지난번 토마스가 사는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그 실제 건물들과 장소들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서 그 정도만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 다음날 아침 이곳 본당 신부님과 공수사님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엑스레이 촬영기가 고장 나거나 없는 병원이 많아서 피검사 따로 엑스레이 따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4시간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 평소 건강상태 중에 안 좋던 부분과 한국에서 두세달에 한번 건강검진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이곳 의사에게 그에 대한 여러 증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 이곳에 와서 한가지 좋은 점은 한국에서보다 간 기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기름진 음식도 섭취하지 않고 고기구경하기도 힘들어서 인 것 같습니다 . 한국에 안원장님은 하느님이 공평하셔서 한편에 약한 것도 주시지만 좋은 것도 주셨다고 마지막 평가를 내리시네요 . 그리고 이곳 의사가 제가 예전에 능막염을 앓은 병력과 폐의 염즘에 대한 진찰을 하고는 결핵검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해서 월요일 검사를 위해 주바에 남았습니다 .   제가 주바 이곳 굼보 공동체에 있게 되니 옆집의 까리타스 수녀님들이 공수사님과 우리 한국 누렁이들만 모여서 치프리아나 수녀님의 어머님을 위해 함께 미사하자고 하여 그리고 수녀님들이 근사한 우리 한식 식사를 마련하시겠다고 해서 6.25 날 저녁에 함께 모여 저도 오랜만에 우리말로 미사를 - 남북 통일을 위한 기원미사 - 거행 하였습니다 . 거의 세달 만에 되지도 않는 영어미사만 하다가 우리말 미사를 하니 감개무량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 사진에 나온 모습들이 우리말 미사를 하는 모습인데 미사 드리는 경당도 울긋불긋한 장식이 아니라 소박하고 단순한 장식의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가 깨끗한 한국식 제대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니 마치 고향에 온 듯 했습니다 .    이곳 주바에 와보니 주바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 물론 시내는 시끄럽고 쓰레기가 온통 휘날리고 찌든 가난의 모습이 어느 곳에서는 엿보이지만 정말 변두리에서 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톤지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      해질 무렵에 이곳 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이 와서 운동장에서 소리지르면서 공을 차고 저녁시간에 자기 가족을 위해 물을 긷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녁노을에 어울어지는 .. 그리고 운동이 끝나면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또 성체 조배를 하는 모습이 톤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공수사님은 아랍어로 학교 옆길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어른들과 학부형들과 선생님들과 뭔가를 얘기하시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시고 .. 아이들은 공수사님과 악수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입니다 . 물론 새로운 가와자 (이곳 사람들은 백인들을 가와자라고 하는데 )여서 그런지 관심을 가지고 제 옆에 와서 이것저것 묻고 신기하게 쳐다 봅니다 .    아 . 이곳의 굼보 공동체에 와보니 바로 이 집도 한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기증했다고 건물 중앙에 표가 붙어 있더군요 . 이곳 저곳에서 이태석 신부의 숨결과 한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보내준 열매들이 엿보입니다 .   묵주기도를 하는데 바로 제 앞에 앉은 아이의 양쪽 슬리퍼 뒷꿈치 부분이 모두 다 구멍난 것을 보고는 지금도 아예 신발이 없거나 슬리퍼를 신어도 끈은 아직 쓸만하기에 끈이 아까워 구멍 난 밑창을 버리지 못하고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날이 올까를 생각하면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런 날이 확실히 꼭 올 것이라 믿습니다 . 80 년대 한국의 어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외국인이 호텔에 날아온 파리를 보고 한국이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너도 여기 날아오지 못할 날이 멀지 않았구나 했다는데 ... 이곳에서 구멍 떨어진 신발을 신거나 아예 신발을 신지 못하는 아이들이 온전한 신발을 신고 교실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놓을 날을 상상해 보면서 그럴 날이 꼭 올 것을 확신해 봅니다 .    오늘은 긴 시간 동안 떠들었습니다 .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 긴장이 풀려 말이 많아졌나 봅니다 . 그럼 다음에 또 인사 드리기로 하고 ....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2015/06/22~30 남수단에 톤즈에 계신 이해동신부님과의 메신저 내용 중에서..     
2015.07.02   조회수 | 2417
이해동 신부님의 톤즈소식 _ 문화의 날 행사
        여러 장학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한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다 연락 드립니다 . 지금 우리 공동체에 원장님도 우간다에 가셨다가 주바까지는 오셨지만 , 주바에서 오는 비행기가 비가 많이 와서 , 활주로 문제 때문에 , 또 조종사가 아파서 , 또 사람 수가 적다고 ,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톤즈에 도착하질 못하는 바람에 공동체에 어떤 일들이 생길 때 마다 나머지 회원들이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덩달아 저도 조금 바쁜 것 같습니다 . 여기서는 비행기타고 어디를 가고 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봐야 그 사람이 왔구나 할 수 있지 . 언제 올 것이라든지 떠나게 될 것이라든지 하는 것을 별로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우리 원장님도 주바에 도착했다고 지난 주 월요일 날 연락을 받은 것 같은데 . 벌써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 전화 마지막에 했던 말이 ‘내일 모레쯤 가겠습니다 . 인샬라 !’였는데 .. 인샬라 라는 말 뜻은 " 하느님의 뜻이라면 !" 이라는 뜻입니다 . 요즘 들어서야 여기에 사람들이 그 말을 왜 그리 많이 사용하는지 이제야 알게 될 것 같습니다 . ‘ 내일 모레쯤 가겠습니다 . 인샬라 !’ - 그 때 도착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뜻으로 도착하지 못했으니 자신에게는 별 잘못이 없다는 뜻인지 ... 하하 ..      엊그제 토요일 날 이곳에서는 세컨더리 스쿨 학생들을 중심으로 컬쳐럴 데이 행사가 있었습니다 . 제가 보낸 사진들이 거의 그날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      금요일 날 오후에 20-30명의 세컨더리 학생들이 저희 살레시오 공동체 뒷 뜰에 와서 쓰레기 태우는 곳에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구워주었습니다 . 물론 장소가 온갖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여서 약간은 꺼림직하기도 했습니다만 , 나무로 불을 때서 빵을 구워서 빵 냄새는 그렇게 나쁘지 않더군요 . 400 개인가 500개 빵을 만들었는데 부엌에 놓으면 쥐가 바퀴벌레가 잔치를 벌일 것 같아 식당과 세탁실에 가져다 놓기로 했는데 , 이 더운 나라에서 그것을 그냥 용기에 담아 놓으면 그 다음날 쉴 것 같아서 깨끗한 홑 이불을 찾아 그것을 깔고 그 위에 빵을 두껍지 않게 깔아놓고 또 고양이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홑이불을 깔고 .... 어쨌든 세컨더리 스쿨 담당 브라더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그리고 곤히 잠들었는데 .. 새벽 5시경에 갑자기 왠 시끌벅적한 소리와 소의 울음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 아니 글쎄 몇몇의 세컨더리 스쿨이 남학생들이 지난 번 톤지 동네 청소하고 이곳 시장이 주었다는 그 황소 한 마리를 문화의 날 행사에서 먹기 위해 희생시키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 아침에 미사 갔다 돌아와보니 벌써 다리는 다리대로 머리따로 창자따로 씻고 자르고 끓이고 있어서 적지 않게 놀랐지요 .      문화의 날 올 5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몇몇 학부형과 학교의 대표 여학생들 남학생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손님 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 이 문화의 날 행사는 지난 2007년부터 이곳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아프리카 문화보전을 위한 하나의 축제행사인데 . 살레시오 학교의 학생들만이 아니라 바키타의 살레시오 수녀님들의 학교 , 이곳 공립학교 하이망고의 어린이들 등등 모든 젊은이들이 다 참가하는 행사였습니다 .      9 시 미사로 시작해서 ... 물론 이곳 아프리카 타임으로 9시면 9시 반에 시작하는 미사가 되었고 ... 한 시간 반 미사에 곧바로 국민의례 그리고 각 학교와 단체에서 준비한 노래 춤 연극 웅변 등이 점심도 안 먹고 오후 3시까지 개최되다 ... 비가 오니 그 때서야 발표하지 못 했던 프로그램은 비가오니   밥 먹고 하자며 3시에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 각 행사들이 내용들이 다 좋았고 준비도 많이 했고 (물론 뜻이 뭔지 알지는 못한 것도 많지만 ...) 다 좋았는데 공연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아이들이나 배가 고프지도 않은지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겨우 축제가 중지되고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저는 사실 축제 내내 배고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 그 나마도 11킬로나 빠진 이곳에서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여러 공연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려니 '금강산도 식후경 "이란 우리 말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 다행인지 .. 하늘의 비가 저의 불쌍한 위장을 살려주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 각 단체별로 교실에 들어가 음식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        저는 선생님들이 먹는 교실로 가라고 해서 들어가보니 조그만 교실에 선생님들이 가득 차 한 쟁반의 음식들을 두 세 사람이 함께 나누어야 했는데 원래 다른 사람보다 많이 섭취해야 하는 저 인대도 모두가 배가 고파 음식이 모자란 듯한 느낌이 받았기에 몇 번 집어먹고는 말았습니다 . 아마 주체 측에서도 식사시간을 늦춘 것이 , 준비한 500인분의 식사량으로는 음식이 모자랄 것 같아서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무래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좀 부족 했나 봅니다 .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들도 할말이 있는 것이 ..   소 한 마리로는 모자랄 것 같아 염소도 2마리 더 샀다는데 ...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와버려 음식이 모자랐다고 들었습니다 . 제가 보기에는 약 700에서 800명 정도의 어린이들과 어른들 선생님들이 세컨더리 스쿨의 복도를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            오면서 보니 대나무 울타리로 되어있는 세컨더리 스쿨의 울타리들이 다 망가져서 길이 되어있기에 물어보았는데 ... 문화의 날 행사는 초대되는 사람만 들어오는데 동네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기에 그 아이들도 구경을 하고 음식을 먹고 싶어서 정문으로는 통제를 해서 못 들어오니 대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옛날 시골에서 가설극장 시절에 돈 내고는 못 들어가니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가던 시절의 우리나라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        공연 때문에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는 어린이들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단순히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 오는 아이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거 참 배고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에 측은한 마음이 들 뿐입니다 .       식사가 끝나고 다시 발표하지 못한 공연을 계속하나 했더니 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다 떠나니 다음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다만 비가 오는데도 아쉬운 젊은이들은 마지막 피날레는 모두 다 자유형 막 춤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 이들은 배고픔을 노는 힘으로 극복하는지 어디서 음악 소리만 나면 즉시 춤 동작이 절로 나옵니다 . 이런 모습의 이곳 젊은이들을 보니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의 놀이에 대한 열정과 본성을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 톤지의 여러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다 돌아가고 돌아가면서 세컨더리 스쿨 바로 앞에 지어지는 멀티플 펄퍼즈 홀 - 다목적 강당 -을 보고는 내년에는 비가 와도 저 안에서 행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좋아했다는데 . 이 동네의 젊은이들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장 한 가운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두 건물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 다목적 강당이 지어지면 이 곳의 젊은이들에게는 난생처음으로 강당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저도 내심 기대하고 또 그것이 한국의 파더 존리 메모리얼 파운데이션에서 지원햇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 그리고 저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세컨더리 스쿨 담당 회원과 브라더가 수고했고 저는 미사 같이 거행하고 얘들과 같이 앉아 낄낄 깔깔 헤헤 하하 호호 한 것 밖에 없습니다만 , 일년 중 이곳 톤지에서는 가장 큰 공적 행사인 만큼 더 풍부히 다음엔 치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아무쪼록 이곳에서도 우리 나라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보다도 지극히 가난한 모습이지만 이들 나름대로 웃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기쁨과 행복을 서로 나누는 행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해 드립니다 .       오늘 뉴스에 보니 이제 메르스가 약해져 가지만 또 두 사람이 사망했다면서 한국 소식이 자투리 소식으로 나오는데 메르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건강들 하시고 기쁘고 많이 웃는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 그럼 ....         2015/06/22~26 남수단에 톤즈에 계신 이해동신부님과의 메신저 내용 중에서..  
2015.06.30   조회수 |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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