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키트에서 온 감사 편지
수단어린이장학회 후원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수단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회의 다니엘 수사입니다. 저희 수도회와 학교를 대표해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남수단의 많은 학생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어려움이 많은 해입니다. 전세계적인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이곳 남수단에도 큰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남수단의 물가는 크게 올랐습니다. 시장 가격은 급등했고, 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코로나 이전 9,600 파운드였던 밀가루 50kg의 가격이 지금은 12,500 파운드로 올랐습니다. 콩 50kg은 18,000 파운드였는데, 지금은 거의 두 배가 되어 33,500 파운드나 합니다. 식용유는 6,500 파운드로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같은 양을 사려면 11,000 파운드를 내야 합니다.이러한 많은 도전 속에서도 우리는 여러분이 매년 지원해주시는 장학금을 통해 이곳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장학금 지원을 통해 학비, 교복비, 급식비를 지원받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려운 상황이지만 장학금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분이 보내주신 정성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웠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보내주는 여러분들의 지원이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낼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학교와 수도회의 구성원 모두 여러분의 지원 덕에 큰 힘을 얻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 외에도 남수단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산발적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영구적인 평화가 아직 오지 않았고,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남수단에 평화가 찾아오길,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이 빨리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마지막으로, 남수단 아이들을 생각하는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한국도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니엘 로딩 오넥 수사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회
2020.11.10   조회수 | 230
남수단 케레피에서 온 감사 편지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수단 케레피에서 인사드립니다. 동서남북이 모두 푸르고 그 위에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가며 비 온 뒤엔 아름다운 무지개를 드러내던 그곳이 케레피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렇게 돌아온 지가 한참만입니다. 군인들이 총을 쏘아 대고 젊은이들이 죽어 가던 그 위를 뛰어넘어 우간다 국경 아주마니로 피해 난민으로 살아온 세월이 2년 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우간다 니믈레로 들어와 1년 반이 되었으니, 실로 4년 만에 케레피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그동안 남수단의 가난한 사람들과 저희 수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우리가 살던 그곳은 이제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모든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던 건물들은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인 도둑들이 들어 뜯어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갔습니다. 지붕 양철부터 시작해서 전기선과 밸브, 창문과 출입문까지 다 떼어 갔습니다. 부착되었던 가구들까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타일도 떼어 갔습니다. 군인들도 남수단 사람일테니 학교는 건드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전쟁 군인들이라, 반군들을 쫓아내고 얻어지는 전리품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붕을 다 떼어냈으니 천장이 그냥 자연 비바람에 모두 무너졌습니다. 담쟁이 넝쿨이 자라나 벽을 타고 높이 올라가 있었고, 교실 안에도 잡목 및 풀들이 자라나 있었습니다. 4년이란 세월이 폐허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심지 않은 나무들이 껑충 자라나서 지붕 위에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요즘 아저씨 두 분과 2명의 수녀가 고학년 남학생 2명씩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 가서 잡목 자르는 일과 풀 뽑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도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어느 집 하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습니다. 그래서 집들은 세월을 견디지 못해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놀랄 일도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피난처에 가서도 즉시 흙을 짓이겨 집을 지었으니까요. 지금 이곳의 문제는 열악한 교육환경과 식량, 그리고 의료입니다. 아직 사람들이 난민촌에서 다 돌아오지는 못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을 봉쇄하였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넓은 땅을 갈아 이 나라의 식량인 카사바를 심어 놓은 사람도 있습니다.이곳 선교지 주위로 새로운 마을이 조성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난민촌에 있는 지역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물일 것입니다. 프로젝트 경비는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으므로 절차만 이뤄지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사방이 부시(밀림)가 되어 버려 기계가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로 이곳까지 들어오기 위해서는 풀숲을 헤지고 가시나무 잡목들을 자르면서 오가고 있습니다.이 모든 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 케레피 어린이들이 재잘대며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올 것입니다. 부모들은 땀 흘려 일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려 애쓰고, 매주 주일은 성당에 와서 하느님께 찬양하며 미사를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청년들은 마을의 주인답게 마을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성가 연습도 시키고, 이웃 마을과 교류도 하면서 이를 위해 밤낮 본당 사제와 미팅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항상 남수단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분께 감사합니다. 저희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2020.10.07   조회수 | 344
캄보디아 포이펫에서 온 감사 편지
쭙리업쑤어(안녕하십니까).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캄보디아 포이펫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전복남 요한 신부입니다.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회원 여러분과 가족 모두 건강하신지요?이곳 캄보디아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여파가 크게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 내에는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입국자 외 확진자는 없는 상태입니다. 확진자가 나오면 캄보디아 내의 열악한 의료여건 때문에 통제가 어려울 것을 염려한 캄보디아 정부의 강력한 사전 통제로 다행히도 확진자가 없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 모든 육로로의 입출국이 금지되었고, 해외를 오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프놈펜 공항 한 곳만 유지하고 있어서 입국자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제의 여파로 캄보디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그 여파가 우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어서 상당히 우려되고 있습니다. 또한 캄보디아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던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고, 외국 투자 공장들도 하나씩 문을 닫아서 실직자가 늘어나는 상황입니다.그중에서도 제가 있는 포이펫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포이펫은 태국과의 국경 지역에 있는 태국과의 육상 통로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 포이펫에 사는 사람들의 주 수입원은 포이펫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카지노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태국 국경 검문소를 매일 오가며 날품을 팔아서 벌어오는 돈입니다. 그런데 카지노가 정부 명령으로 문을 닫고, 국경도 폐쇄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수입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그 여파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학교는 3월 하순 무렵에 정부의 명령으로 모든 학교가 문을 닫은 상황에서 온라인 교육에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교육을 받을 기기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당수의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정에 컴퓨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족 중에 스마트폰이 있는 경우에만 겨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다고 해도 스마트폰 한 대를 온 가족이 돌려쓰니, 학생들이 이것으로 집중하여 공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가난한 가정의 학생일수록 공부하기는 더욱 어려운 환경입니다.캄보디아 정부도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학교 교육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하지만 전면 개방이 아니라 졸업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6학년, 한국의 중학교 3학년인 9학년, 그리고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인 12학년을 대상으로 교실의 학생을 둘로 나눈 2부제 수업을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우리 학교도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면 학교 수업을 재개할 예정입니다. 이미 방역 준비에 대한 정부의 점검을 받았고, 개학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저는 학교가 쉬는 동안에도 바쁘게 지냈습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학생들의 집을 방문해서 식자재를 나눠주었고, 캄보디아에서 처음 시행되는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서 수업이 진행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평소에는 가보지 못했던 기숙생들의 집들도 방문했습니다. 거리가 먼 시골에 살고 있어서 오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가정환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하루는 9학년 쏘파이의 집에 들렀습니다. 나무와 함석으로 지은 집은 6명인 온 가족이 잠을 자기에 매우 좁아 보였습니다. 집 앞에 금방 넘어질 듯 보이는 평상이 있었고, 평상 위쪽을 비닐로 지붕처럼 만들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집이 좁아서 평소에 이곳에서 잠자는 듯했습니다. 비 올 때 바람이라도 불면 잠을 못 자고 비가 들이치지 않는 쪽으로 모여 비 그치기를 기다릴 것이 뻔해 보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길이 멀어서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쏘파이의 부모님이 이미 점심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생선구이와 닭고기구이 그리고 채소와 함께 캄보디아 특유의 소스가 함께 차려져 있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선생님과 신부님이 방문했다고 평소에 가족들이 먹지 못했던 음식을 무리해서 준비한 듯 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인사하며 일어서려는데 선물이라면 웬 종이상자를 준비했습니다. 함께 갔던 비어스나 선생님이 맛있는 ‘쁘라엥’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쁘라엥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의 정성에 감동했습니다. 자신들이 먹기에도 모자란 것을 애써 준비해 준 것 같았습니다. 쏘파이의 집을 나와 같은 마을에 있는 쏘파이의 사촌 12학년 차눈의 집에 갔습니다. 나무 사이에 걸어둔 해먹에서 차눈이 부스스 일어났습니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반가워서 가까이 가서 눈을 들여다보니 눈이 빨갰습니다. ‘너 공부 안 하고 밤에 춤추고 놀았지?’하고 물으니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졸업시험 준비해야 하는 녀석이 공부는 하지 않고 밤에 어디 가서 춤추고 놀았구나 싶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껌껌한 밤에 음악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밤늦게까지 춤을 추고는 합니다. 집 앞에는 불이 피워져 있고, 불 위의 석쇠에 작은 토끼 정도 되는 정체 모를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그 고기로 하자고 했지만, 이미 먹고 왔다고 하니 가져가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갔던 소피아 선생님이 쥐는 어디서 잡았냐고 하니 부모님이 들에서 잡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무슨 쥐?’ 하고 물으니 선생님들이 불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정체 모를 고기를 가리켰습니다. ‘쁘라엥’은 바로 들쥐였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사촌인 쏘파이와 차눈이 손님 접대한다고 며칠을 밤새 들쥐를 잡으러 다닌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녔다고 타박한 게 미안해서 차눈의 얼굴을 보고 미안해하니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캄보디아에 와서 살면서 다른 문화와 환경 때문에 힘든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여기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특별히 좋은 모습이 같다고 느꼈을 때는 감동을 더 크게 받고 더 힘을 받습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정성을 다해 선생님이나 손님들을 대접하려는 마음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고 기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 생각합니다.현재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신이 줄 수 있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그 마음이 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배려하고 의지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소망해 봅니다.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님들과 가족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면서 포이펫의 소식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쭙리업리어(안녕히 계십시오).전복남 요한 신부 / 살레시오회
2020.09.29   조회수 | 379
남수단 톤즈에서 온 감사 편지
한국에 계신 여러분, 안녕하세요?저는 살레시오수녀회 소속 마리암 수녀입니다. 저는 인도 출신으로 1969년 살레시오수녀회에 입회했습니다. 간호학을 공부한 후 진료소에서 일했으며, 중고등학교에서 교리와 간호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인도에서 지내다가 1982년에 선교사로 수단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남수단 독립 이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수단과 남수단이 ‘수단’이라는 한 나라였습니다. 제가 남수단에 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초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학교에서 일한 후에 의료 분야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와우, 톤즈, 다르푸르 지역에서 의료센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톤즈에 있는 성녀 요셉피나 바키타 농업센터의 담당자로 지역의 가난한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올해 남수단 톤즈의 가난한 가정을 위한 집짓기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남수단에서는 양철지붕을 올린 벽돌집을 짓는 것이 매우 경제적입니다. 대부분의 톤즈 사람들은 흙벽 위에 짚으로 엮은 초가지붕 집에 삽니다. 이런 집은 바람과 비에 취약하며, 우기에는 특히 전염병의 위험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런 초가집은 2~3년에 한 번씩 볏짚을 바꿔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가는 매년 오르는데 짚을 매번 바꾸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저희는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정성을 모아 이곳 톤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벽돌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작은 벽돌집은 이곳 사람들에게 집 이상의 큰 의미입니다. 벽돌집은 궂은 날씨를 막아주고,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공간입니다. 또 집을 보수하고 새로 짚을 올려야 할 비용의 부담이 없어져, 이곳 사람들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코로나19는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수단의 국경이 닫히면서 지붕으로 올릴 양철 슬레이트와 다른 건축자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임시방편이지만 우기가 오기 전에 재활용한 짚으로 사람들의 집을 수리했습니다. 현재는 국경이 다시 열렸고,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7개의 벽돌집이 완공되거나 거의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공사를 하는 한 채의 집에는 한센인 가정이, 또 다른 한 채의 집에는 간질로 고통받는 주민이 거주할 예정입니다. 두 집도 거의 공사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남수단의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계획만큼 집을 지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농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가정에 총 20채의 집을 지어주기로 한 계획을 7채의 집을 짓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코로나19로 공사가 연기되면서 다시 공사를 재개할 무렵에는 자재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예산 안에서 좋은 자재를 이용해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7채의 집을 짓는 것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추후 준비가 되면 더 많은 집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공사 시작부터 완공까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눕니다. 사진으로나마 이곳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도움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귀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리암 카라티풀라투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
2020.09.22   조회수 | 339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온 감사 편지
안녕하세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사드립니다.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보내는 올해, 신부님과 관련된 아주 개인적인 소중한 경험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2008년 무렵, 신부님께서 휴가차 한국에 오셨을 때 수녀원을 방문해 현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에게 강하게 남은 건 ‘선교지에 얼마나 큰 희망이 넘치는가!’였습니다. 직접적으로 이 말씀을 언급하진 않으셨지만, 신부님 덕에 선교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신념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과 함께하며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했던 것이 이때까지의 순수한 열망이었다면, 선교지 사람들의 희망을 읽어내고 함께 키워가는 것을 선교의 목표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날 저녁, 깨달음의 순간에 느꼈던 떨림은 지금 이곳 캄보디아에서의 삶에, 또렷한 좌표가 되었습니다.   올해 2월 말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직전,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6월 초 캄보디아에 돌아와 보니 이곳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생활 모습이 이미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모든 학교는 3월 말 문을 닫았고,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정상수업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교육청에서는 TV 채널과 온라인 수업을 장려하지만, 캄보디아의 생활여건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공장이 기계 가동을 멈췄고, 앙코르와트 관광 역시 침체한 터라 관련 일로 생계를 잇는 수많은 사람이 실직한 상황입니다.현재 돈보스코 뚤꼭 직업센터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학생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어 1학년은 70%, 8~9월 인턴십 후 학사과정을 마치는 2학년은 거의 98%의 온라인 출석률을 보입니다(스마트폰은 이곳에서도 필수품, 액정이 깨져있거나 오래된 중고품이어도 여기서는 충분한 기능을 합니다). 다만 인터넷 사용료가 문제였는데 요즘 통신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져서 1주일에 1달러로 요금이 낮아져 걱정을 덜었습니다. 물론 인터넷 속도가 속을 썩이거나 다양한 가정환경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선생님이 온라인 수업 중에 문제를 내고 답을 종이에 적어 화면으로 보여 달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땅에 답을 적어 비췄다고 합니다. 소몰이하느라 들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수업에 참여하려 부단히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 마음을 아련하게 합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한다는 이 작은 몸짓들이 참으로 기특하고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줍니다. 아이들 스스로 지닌 희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문을 닫는 동안 우리는 가정방문을 차분히 진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요즘 수녀회를 통해 각국에서 온 긴급 구호물품들을 주변 가난한 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방문 때 지방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약자들이 받는 경제적인 타격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부모 모두 태국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잃고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이 있습니다. 당장 먹을거리조차 구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에게 서둘러 구호물품을 전했습니다. 쓰레기 매립장 주변에 사는 가족을 방문했을 때 “코로나보다 배고픔이 더 두렵다.”고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에게서 우리는 단단한 힘을 보았습니다.2학년 아이들은 9월까지 인턴십에 참여합니다. 현장에서 직무를 실습한 후, 일부 친구들은 정식 직원이 되어 같은 곳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인턴십 준비를 위해 3개월 만에 만난 아이들은 농사일을 돕느라 하나같이 야위고 까맣게 그은 얼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사회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에 꽤 들떠 있었습니다. 정부가 아직 기숙사 운영을 허가하지 않아 실습을 위해서는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큰 숙제가 있었음에도 아이들은 “수녀님, 저희가 잘 해낼 수 있어요!”라며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동행한 인터뷰에서 만난 어느 대기업 인사과 직원은 자신도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한 돈보스코 칠드런 펀드의 장학생이었다며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7월에 일찍 인턴십을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의 성품과 실력, 적극적인 태도에 만족해서 직원으로 채용할 친구들을 더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휴가 후,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캄보디아와 이곳 아이들의 삶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습니다. 전보다 더 어려워진 상황과 학교와 기숙사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오롯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아이들과 새로운 세계에 자신 있게 도전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랐습니다. 매우 기특하고 고맙기만 했습니다. 다음 주엔 인턴십 중인 2학년들의 실습 나눔을 위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사회생활이 어땠을지 몹시 궁금하고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기대가 큽니다. 7월 27일에는 살레시오 집의 전통인 감사축일 행사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아쉽게도 전체 아이들의 절반만 참석했지만, 모두 함께했던 시간에 감사하며 그때를 그리워했습니다. 각자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에 대해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순수하게 표현하는 아이들 덕분에, 가슴 찡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의 일상을 거의 모두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희망을 길러내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살레시오 수녀로서 큰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아이들의 지긋한 힘을 뒷받침해주시는 수단어린이장학회에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홍미나 따시아나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
2020.08.31   조회수 |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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