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포이펫 돈보스코 센터 _ 양정식 마르코신부님의 편지
캄보디아 포이펫 돈보스코 센터돈보스코 센터 포이펫은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포이펫 이라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포이펫은 국경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태국에서 오가는 물품도 많고 사람들 역시 태국으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때문에 이곳에 많은 포이펫 사람들이 물품을 나르는 인력거를 끌며 살거나 태국으로 넘어가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거의 전부가 저소득층이라 볼 수 있는 이곳의 아이들은 집에 그냥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들은 하루하루 벌어서 살아야 하는 가난 때문에 아이들까지 돌볼 여유가 없지요. 오히려 아이들에게 캔이나 플라스틱 병을 줍게 하기도 하고 어린나이에 태국으로 보내 일까지 시키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립으로 가려고 태국에서 오는 여행자들에게 구걸을 시키기도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돈보스코 포이펫 센터는 포이펫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14년 전에 초등학교로 시작해 지금은 중학교와 기술학교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각 학년 1개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술학교는 전기과, 컴퓨터과, 자동차정비과로 구성되어 교육하고 있고 2년제 학교로 졸업 후 직장을 얻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돈보스코센터 아니면 공부할 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아이들이 돈보스코센터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부족해 다 받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학교 내에 기숙사에는 고아인 아이들, 폭행하는 부모, 알콜 중독자인 부모 밑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 부모가 태국으로 일하러 가면서 맡긴 아이들 등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의 열악한 상황중에서도 가장 힘든 처지의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현재 편부의 무관심 속에서 마을 이장에게 성폭행 당하고 있는 9살 여자아이를 학교기숙사로 데려오기 위해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가난이 반복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지는 이곳이지만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제 마음까지 청량해 집니다. 처음 만날때와는 사뭇다른 모습으로 이젠 절 만나면 웃으며 자기 꿈을 서슴없이 말하는 이 아이들보면, 만일 돈보스코센터 포이펫이 없었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끔찍한 상상입니다.캄보디아에 살면서 가난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삶의 부조리를 많이 목격합니다. 그렇지만 늘 삶의 부조리 앞에서 먼저 좌절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삶의 부조리들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여주시는 자기 가족, 자기 나라를 넘는 큰 사랑으로 말입니다. 슬프고 절망스런 현실이지만 이 아이들을 잊지 않고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늘 감사드립니다. 특히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는 올 해 학교 운영비 절반을 도와주셨지요. 그덕에 마음 놓고 아이들을 보살필수 있게되었답니다. 아이들은 가난의 시름에서 벗어나 운동장에서 밝게 뛰어놀고 밥도 잘 먹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기적들이지요. 아프리카를 넘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수단어린이장학회 후원자 여러분들의 사랑이 이곳에서 또 다른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적은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이 아프리카를 넘는 더 큰 사랑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양정식 마르코 신부 드림
2016.09.07   조회수 | 1406
캄보디아 프놈펜 뚤꼭직업학교 홍미나수녀님의 감사편지
+ 하느님 사랑캄보디아에 있는 살레시오수녀회 홍미나 수녀입니다.저는 3년전에 이곳에  도착하여 이곳의 수도인 프놈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간 3년동안 제가 겪은 프놈펜은 눈에 보일 만큼 외적인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곳곳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특히 외국 회사들에 의해 거대한 쇼핑센터, 주상복합 센터들이 건축 중에 있습니다.  또한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는 프놈펜을 중심으로 도시 집중화 현상이 계속되고 있지요.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오는 반면 지방, 시골에는 일거리 부족으로 도시로, 외국(태국, 일본, 한국등)으로 일을 찾아 떠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은 텅텅 비었다고 할 정도지요. 도시의 빠른 성장 , 그러나 그 그늘에 가려져 있는 많은 가난한 이들 , 이것은 바로 물질만능주의로 이어져 사람들은 돈이 삶의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거기에는 도덕의 부재가 따라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바로 피해자가 되는 많은 가난한 가정들이 겪는 어려움들(폭력, 알콜과 마약 중독…)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 아이들의 가정을 통해 만나는 아픔은 우리를 더 많이 기도하게 합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소녀들을 위한 직업센터(2년 과정의 컴퓨터, 사무직, 경리업무)에 온 아이들 대부분은 그 그늘에서 오는 아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더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아이들, 처음엔 수줍고 처음 접해보는 컴퓨터에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들은 기숙사에 머물면서 정리된 공간과 단체생활에 어색해 하지만 살레시오 고유의 가족 정신과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을 키우면서 꿈을 갖게 되지요. 가정방문과 부모교육을 통해 교육은 환경과 가족이 함께 이루어 간다는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이곳은 졸업생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그리워서 찾아오기도 애경사가 있을 때, 결혼 청첩장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가정에 큰 문제가 있는 졸업생을 위해서는 종교에 불문하고 함께 모여 기도 시간을 갖기도 하지요. 이러한 졸업생들의 모습은 우리의 교육이 그들 삶에 어떻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표지이며 우리 사명의 희망이 됩니다. 가정방문을 포함하여 센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에 차량은 필수적이지요. 기존에 있던 차가 노후되어 유지 수리비가 많은 부담이 되어 3년 전부터 새 차량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저희의 필요에 관대히 응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작은 마음과 희생을 수단어린이장학회 가족들을 위해 봉헌하겠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홍미나 수녀 드림
2016.06.23   조회수 | 1083
[톤즈, 부활을 꿈꾸다] (5·끝) 톤즈 선교사 이해동 신부(살레시오회)/ 톤즈방문단기사
[톤즈, 부활을 꿈꾸다] (5·끝) 톤즈 선교사 이해동 신부(살레시오회)매순간 인간적 한계 느끼지만 ‘작은 열매’라도 바라며… 10개월 동안 30㎏ 빠져 톤즈에서 만난 이해동(살레시오회, 57) 신부는 “10개월 동안 체중이 30㎏이나 빠졌다”고 했다. 머리카락은 덥수룩했고, 샌들 사이로 보이는 발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다. 얼굴은 다소 지쳐 보였다. 그는 “1년여 동안 이곳에 지내며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이 신부는 톤즈의 세 번째 한국인 선교사다. 2008년 이태석 신부가 떠나고, 2년 뒤 우경민(살레시오회) 신부가 파견돼 1년여 동안 활동했다. 그 후 4년 만인 지난해 봄 이해동 신부가 파견됐다. 해외 선교는 이 신부의 오랜 꿈이었다. 사제품을 받기 전부터 해외 선교를 지망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쉰이 넘어서도 해외 선교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그러던 중 남수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 고미노(살레시오회) 수사가 “해외 선교를 생각하고 있으면 꼭 톤즈로 오라”고 수차례 권유해 톤즈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이 신부는 살레시오회 톤즈 공동체에서 3명의 신부와 함께 살고 있다. 사제들이 톤즈 예수 성심 성당과 8개 공소를 돌아다니며 미사를 봉헌한다. 이어지는 내용읽기..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30905&path=201604
2016.04.21   조회수 | 841
[톤즈, 부활을 꿈꾸다] (4) 이태석 신부의 발자취를 좇아서 / 톤즈방문단기사
   수단어린이장학회와 함께 톤즈방문을 했던 평화신문 임영선기자님의 기사입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톤즈, 부활을 꿈꾸다] (4) 이태석 신부의 발자취를 좇아서  파더 존 리는 톤즈에 살아있다        톤즈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3명 중 2명은 ‘파더 존 리(이태석 신부)’ 이야기부터 꺼내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가 톤즈를 떠난 지 7년이 넘었지만, 이 신부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사 내용 자세히보기..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29960&path=201604    
2016.04.14   조회수 | 736
이태석 신부의 사랑, 남수단 톤즈를 가다 (하)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 톤즈방문단기사
 2016.3.10~2016.3.19 수단어린이장학회와 함께 톤즈방문을 했던 가톨릭신문 박영호기자님의 기사입니다.   이태석 신부의 사랑, 남수단 톤즈를 가다 (하)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  톤즈의 영원한 친구, 그의 정신을 잇는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의 ‘슈바이처’가 아니라 톤즈의 ‘돈 보스코’로 불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백광현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그의 삶과 영성을 돌아보는 한 심포지엄에서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뚝뚝하고 마치 윗사람처럼 대했지만 이 신부는 사제이자, 의사, 선생님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톤즈와 한국의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했고, 지금도 톤즈 인근 마을에 머물고 있는 살레시오수녀회 인도관구 미리암 수녀는 무척 길게 이태석 신부를 회고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좋아했죠. 사랑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과 장난을 즐겼어요. 늘 행복하게 일했지요. 물론 힘들어했어요. 뜨거운 정오가 되면 더위에 지쳤고, 받기만 하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기도를 했을 거예요. 그는 정말 돈 보스코 같았어요. 젊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공부시키고 생기 넘치게 했죠. 그는 늘 최선을 다했어요.” 기사 끝까지보기.. 기사 링크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72570&params=page%3D1%26acid%3D9
2016.04.14   조회수 |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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