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 26. 목요일
오늘은 오후에 유엔 지역 안에 있는 피난민 촌에 마실 물과 비스켓을 사가지고 신부님과 함께 공동체 수녀 모두 다녀왔습니다. 우리 돈보스코 지역에서 며칠 지내고 난민촌으로 간 굼보 마을 사람들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지요.
마태오 복음 25장 31절 이하의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또 감옥에 갇혔을 때 방문해 주었다,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걸어 왔습니다. 총격전이 있던 날 모든 누에르족들은 성당으로 피신했고 교회는 위험을 감수 하고 그들을 받아 주었고 딩카 족에게 살해 당할까봐 두려웠던 이들은 배고픈 것, 아픈 것, 다 견딜 수 있지만 신변 안전을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은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주바 시내에 있는 주교좌 성당과 그 외 성당은 이들의 급박한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정말 며칠간 숨 가 뿐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도망자들을 신부님은 낮에는 돈보스코 학교에서 지내고, 밤에는 성당 안에서 잠자게 했습니다.. 성당 안에 있는 사람은 총을 쏘지 않는 다는 이들의 관습이 있기 때문에 대주교님의 조속한 조치이셨습니다. 우리들은 낮에는 먹을 것 사러 주바에 갔었고, 한 편에서는 환자들을 돌 보았습니다. 어둑 해 지면 이들이 어두운 성당 안에 들어 가는 모습을 배웅하며 주님께서 함께 하실 거예요, 하면서 위로의 말을 하고 수녀원으로 돌아 오던 밤길은 저희들도 위험을 감수 해야 했습니다. 누에르 족을 돌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딩카족의 총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 너무나 잘 아시는 대주교님께서 모든 피신자들을 유엔 켐프로 보내는 결정을 하셨고, 이들을 유엔 켐프까지 안전하게 데려 다 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었습니다. 여성 들과 아이들을 먼저 위장 하여 보내고 남자들을 유엔군 보호 하에 보내고 난 후 오늘 3일이 지났습니다. 이 유엔 캠프 안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유엔 군인들의 철저한 조사 속에서 사람들을 안에 들여 보냈고 3만 명 정도 되는 큰 난민촌 마을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아무런 준비 없이 이미 형성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에 치여 걸음 하기가 쉽지 않았고 보통 사람들이 모여 살면 있는, 물건 팔고 사고, 핸드폰 밧데리 충전하고, 아이들은 벌써 빈 깡통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밀고 다니고 있었고, 어느 폐수가 흘러와(아마도 유엔군 막사에서) 만들어 낸 새까만 때 꾸정물 색깔의 물 웅덩이에서 미역을 감으며 재잘 거리는 아이들, 용변을 아무데나 하니까 악취가 며칠 사이에 이미 도가 넘어 있었고, 제가 있었던 필리핀 빠야따스 쓰레기 산은 이보다는 천국이구나 생각 되어졌어요. 유엔군들이 부랴 부랴 화장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기온이 높고(오늘 40도), 비가 오지 않아 나은 편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난시가 끝나도 돌아 갈 집이 이젠 없습니다. 딩카족을 피해서 도망 왔기에 이들이 그나마 살던 오막살이 집도 모두 딩카 족에게 넘어 간 것입니다. 굼보로 돌아 오면서 캠프안에 있는 돈보스코 고등학생 한 명을 치료해 주기 위해 데려 왔는데, 자기 가 살던 집이 바로 저기라고 하며 이젠 다시 올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난민촌에서 이들의 지금의 집은 지붕과 벽을 누덕이 같은 호창으로 두르고 있을 뿐입니다. 대주교님 말씀이 이런 전시 상황이 보통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삶도 아마 보통인 것 같습니다. 놀라서 다 외국으로 도망하지만 놀라 도망 할 필요도 없는 거지요. 그냥 이것이 보통의 수단에서의 삶이니까요. 긴 전쟁을 겪은 이 아프리카 남수단 백성들. 어떻게 이들의 부서진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줄 수 있을 까요. 누가 이들의 조건 없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제가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남수단 선교사 류 치프리아나수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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