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친구들”
어느덧 잠비아에서 생활한 지 9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곳에 살면서 선교랍시고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 선교란 함께 하는 것. 원주민들 삶에 함께하는 만큼 그들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더욱 함께하고 싶으셔서 보내주신 최초의 선교사이십니다. 원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선 나름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들 5명 정도를 꼽자면 첫 번째는 영육간의 건강입니다. 이 친구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지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많은 선교사가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바로 건강 때문이지요. 선교지는 위험하니까요.
두 번째 친구는 좋은 식성입니다. 현지 음식을 얼마나 잘 먹을 수 있느냐에 따라 선교지 삶의 등급이 달라집니다. 현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그보다 큰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 친구는 현지어 능력입니다. 제 개인 생각으론 선교 생활의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우려면 이 세 번째 친구랑 굉장히 친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선교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현지어를 못 한다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커다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네 번째 친구는 굉장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바로 꿈에 원주민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만큼 무의식중에서까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꿈에서 원주민들과 현지어로 말까지 한다면 이건 뭐 거의 원주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고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이 친구는 참 애매합니다. 좋은 친구라고 하기도 어렵고, 뭐랄까 위험한 친구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바로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잠비아 모든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본 적이 있고 그 고통을 늘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말라리아 경험 때문에 한국에서 헌혈을 못 하지만 잠비아에서는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잠비아에서 말라리아 환자는 헌혈 제외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말라리아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선교지에서 지내면서 제게 가장 큰 고비는 말라리아였습니다. 처음 말라리아 걸렸을 때는 이리도 큰 고통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입에서 “엄마~!!”라는 신음을 내뱉으며 통증을 호소한 일은 아마도 아기 때 빼놓고 처음이었을 겁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서 선교지에서 지내는 것이 매우 두려웠습니다. 그때 그 기억,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며 축하도 해주셨고, 어떤 신부는 선교사들에게 말라리아는 세례식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 선교사들의 격려가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하도 궁금해서 원주민 자매님들께 물었습니다. 아기 낳는 고통과 말라리아 고통 중에 어떤 것이 더 큰지를…. 놀랍게도 어떤 분들은 말라리아를, 어떤 분들은 산고가 더 크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그 고통을 이겨낸 저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걸리고 나면 최소 이틀은 아무것도 못 하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걸을 수 있다는 것. 숨 쉴 수 있다는 것, 눈을 깜빡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저는 다섯 번째 친구 말라리아를 뭐라 불러야 하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원수라고 하기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 때문에 힘들 것 같고, 그냥 위험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지만 일단 찾아오면 절대 거부할 수 없고 무조건 몇 일간을 함께 있다가 보내줘야 하는 친구. 왜 나를 찾아 왔는지 미워하고 원망해봤자 소용없기에 그저 있는 동안 잘 달래줘야 하는 친구. 좋은 점은 그나마 함께 있는 동안 나름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고 성장시켜주는 친구. 저는 이런 다섯 명의 친구들과 저는 선교지에서 나름 고군분투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얼마 전 몇 년 동안 못 만났던 마지막 다섯 번째 친구를 찐하게 만났었습니다. 제발 다시는 안 만나길 바랐었는데…. 하지만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또 누군가는 그렇게 고통 속에 지낸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은 점점 상황이 심각해져 간다는데, 여러분이 각자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들 안에서 단지 벗어나려고만 하지 마시고 누군가는 더한 상황에서 죽음에 직면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여러분 삶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모든 회원분께서 부디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저 또한 선교지 삶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러분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코로나 조심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김종용 프란치스코 신부 / 수원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