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섬김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경험입니다.
2011년 여름, 카자흐스탄에서 유학 중인 딸을 만나러 알마타에 갔었다.
알마타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고 당당하게 자란 나무들과 천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
도시를 관통하는 이 개천은 알마타의 자랑으로 개천가에 벤치들이 그늘을 따라 놓였다.
아침의 천변에는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유모차 부대들이 산책로를 따라 놓여진 벤치를 차지하고
한없이 흐르는 물을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빵을 먹거나, 신문을 읽는다.
밤에는 친구들, 연인들,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면서 온갖 쓰레기를 버려대서 아침에 청소부들이 땀을 흘린다.
2일 1조를 지어 청소를 하는데 눈부신 금발에 덩치 좋은 백인 미남 청년이 아무리 봐도 독일계 같은 튼튼한 얼굴과 덩치를 하고 푸른 눈을 즐겁게 반짝이며 열심히 열심히 쓰레기통을 비우고, 빈 병을 치우고, 빗자루를 휘두른다.
그 옆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국계 청소부 아저씨가 같이 웃고 수다 떨면서 한발 한발 쓰레기 수레를 밀고 다닌다.
나도 시원한 천변의 길을 산책하는 것이 좋아 아침 일찍 개천을 따라 기분 내키는 만큼 걷다가 한창 제철인 중앙아시아의 명물 과일들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와 먹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개천가에서 거리의 천사인 할머니를 만났다.
천변은 유모차를 끌고 가기 좋은 넓이와 길, 시원한 나무그늘 들이 이어졌지만 다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어느 한 구역은 길이 좁아지고 그늘도 없어서 약 100미터 되는 그 천변은 벤치도 망가진 거 하나뿐이고 사람들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은 좀 있는지 몰라도, 거기서 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절묘한(?) 이점 때문인지, 망가진 벤치에는 천사 할머니 한 분.
천사인 걸 어찌 알았나, 하면 유모차 한대에 살림 다 싣고 이 더운 여름에 두꺼운 겨울 옷 걸치고 앉았으면 그게 천사의 날개지.
하여간 이 할머니를 지나치지 않은 이유가, 내 지갑 속에 가득한 동전 때문이었다.
보니까, 아파트에는 애들이 장을 보고 남은 동전이 화장품 손가방에 하나 가득.
1뗑게 짜리 동전에서 100 뗑게 짜리 동전까지 묵직하게 한 가방이었다. (1뗑게는 약 8원이다)
에휴… 애들이 뭘 아냐,,,,
늬들이 돈을 벌어봐야 동전 한 잎까지 귀한 줄 알지….
잔소리 안 하기로 굳게 맘 먹은 나는 그냥 곱게, 내가 그 동전을 써야지 하고는 과일을 좀 사갈까,,, 하고 들고 나온 참이었다.
근데 주인을 알아본 명검처럼, 할머니를 본 동전들이 내 지갑에서 징징대고 우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네고, 이런 저런 대화를 시작했다.
나의 러시아 어 실력은 별볼일 없고 할머니의 총기 역시 내 러시아어 실력 정도라 우리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하여간….
“할머니,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하나 남은 윗 이를 보이며 사람 좋게 웃는다.
흐려지긴 했지만 아직 남은 연두색 섞인 청자 빛 눈동자가 다정하게 반짝인다.
세월의 무상함… 분명 젊어서는 사랑스러운 미인이었으리라….
“할머니,,, 저는 안나예요. (내 러시아 식 이름이다) 할머니 이름은요?”
“나는 발랴….”
“발랴,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살아요? 가족들은 어떡하고요?”
“응… 가족들 모두 하나도 남지 않고 하늘로 갔지, 하늘로….”
별로 싫어하는 기색도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해준다.
“근데 너는 어디서 왔어?”
“저는 한국에서 왔고요, 여기서 공부하는 딸을 만나러 왔어요.”
“응, 좋아, 좋아,,, 딸도 건강하고, 너도 건강하게 잘 지내. 나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거든. 친구들이 있는데, 걔들은 아침마다 씻으러 저 냇물로 내려가. 우린 여기서 지내지만 이렇게 씻고 살아”
“발랴, 나이가 어떻게 되요?”
“많아,,,,, 하여간 많아….. 정확히? 잘 몰라, 근데 많아….”
딱히 더 할말도 없어서 동전 지갑을 꺼냈다.
과일을 사가야지, 하고 100 뗑게 동전을 두어 개 꺼내고 나머지를 발랴의 치마폭에 올려 놓았다.
“발랴, 아프지 마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사시라는 소리가 듣기 좋은지, 동전이 기뻤는지, 발랴는 순간 생기가 돈다.
그리고 일어서는데 천변에서 냇가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할머니 둘이 더 나타났다.
바짝 마른 할머니가 버려진 고양이 같이 사나우면서도 겁먹은 눈으로 다가오고 그 뒤를 빨간 비키니를(!!!!) 입은 빛 바랜 금발의 할머니가 따라온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발랴,,, 얘 누구야???”
뭐라고 할지 몰라 잠시 주춤했더니 발랴가 가 보라고 손짓을 하며 대답한다.
“응, 아무도 아냐. 그냥 지나가다가 인사 한 거야….”
그리고 과일을 사 오는데,,,, 왜 이리 과일이 무겁던지….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했다.
내가 왜 100뗑게짜리 동전을 몇 개 골라냈는지,,,,
인색하게, 욕심 사납게, 추하게….
다음 날 남은 동전을 죄다 챙겨서 다시 나갔다.
그런데, 내 기억이 잘못 된 건지 아무리 헤매도 그 낡은 벤치가 놓인 자리를 못 찾겠다.
시간은 흐르고, 태양은 점점 따갑고, 목은 마르는데….
발랴의 전 재산을 실은 낡은 유모차, 망가진 벤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틀을 은근히 마음 쓰며 찾아 다녔다.
발랴에게 당연히 줘야 할 것을 못 준 기분이 들면서 초조해지고 찜찜하고 무겁고 초조한 기분이 담긴 동전 무더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이래서,,,,
이래서,,,,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하신지도 모르겠다.
가장 낮은 자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자비심을 느끼게 하시려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감정을 놓치지 않게 하시려고,,,
이 잘난 약간의 돈으로 그런 고급스러운 감정을 한 순간 이나마 맛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덕이겠는가.
이래서 그들을 거리의 “천사”라고 하는구나….
자신을 낮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의 내면, 특성을 일깨우려는 천사인지도 몰라.
별로 기도를 해 본 적이 없지만 맘 속으로 기도가 나온다.
하느님, 천사를 만나게 해 주세요….
어쨌든, 좌우간,
수색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드디어 발랴의 낡은 유모차를, 망가진 벤치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 기뻤다.
발랴는 빨간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와 나란히, 그 천변 골목에서 유일하게 드리워진 손바닥만한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그나마 조금 더 해가 뜨면 사라지고 없을 그늘이지만…
“발랴, 나 기억해요?”
“응, 그래,,, 동생 만나러 왔다고 했지? 그래, 동생은 잘 있어??”
에구,,,, 동생이나 딸이나 뭐가 중요하겠어. 우리는 다정하게 마주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래봐야
“아, 날씨 정말 덥네요… 이렇게 더운데 괜찮아요?” 하면
“응, 그래도 더운 게 낫지. 겨울은 너무 추워서 갈 데가 없어,, 너무 싫어….”
라는 뻔한 내용들이지만.
아, 정말 발랴는 알마타의 겨울을 어찌 보내는지…
가느다란 눈발이 밀가루처럼 솔솔 하루 종일, 며칠을 계속 내리며 쌓이고, 또 쌓여서 그게 겨울 내내 녹지 않고 어디든 눈 천지로 만드는 알마타.
이런 눈은 습기가 적어서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스키 타기에 딱 좋다지만 그러나 거기서 올라오는 냉기에 발랴는 뼈가 시릴 텐데…
이런 저런 기초 회화 수준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빛 바랜 금발의 빨간 비키니 할머니는 점잖게 신문을 정독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길거리 광고 같았지만, 그녀는 지성과 품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
발랴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더니, 활짝 웃는다.
웃는 입에는 금니 몇 개가 자랑스럽게 반짝인다. (과거 구 소련에서는 금니가 부의 상징이었다)
“내 이름은 올가야. 옷 차림이 이래서 좀 미안한데, 씻으려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씻고 해를 쬐면 건강에 좋거든”
“올가, 만나서 어찌나 반가운지… 다음에 만나면 또 인사 나눠요”
나는 나머지 동전을 죄다 발랴에게 주고 일어섰다.
올가에게는 왠지… 친구인척 정상인처럼 격식 차려 인사하고 동전 주기가 좀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때는 발랴와 올가 옆에 처음 봤던 “고양이 같은 그녀”가 앉아있었다.
더럽고, 겁 먹고, 사납고, 바짝 말라서, 건강이 안 좋은 피부 색을 하고는 계속 담배를 피워대며 아주 조금씩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타샤.
갈색 단발머리의 나타샤는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고 질문을 해 댄다.
“어디서 왔어? 교회에서? 뭐 하러 온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산책 중이었다니까….”
그래? 하고 새침한 표정을 하던 나타샤였지만 나중에 내가 악수를 청하자 뭐라고 중얼대더니 손을 내밀어줬다.
손등을 나에게 향하면서….
내가 의아한 표정을 보이자 올가가 웃으며 이야기 해 준다.
“나타샤는 아직 씻지를 못해서 손이 더럽거든. 더러운 손이라 너를 잡을 수 없어서, 그래서 손등을 내 민 거야.”
아!!!! 예의와 염치…..
돈 방석에서 뒹구는 인간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예의와 염치가 느껴지는 손짓.
나는 나타샤와 악수하고, 올가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환하게 웃으며 내미는 올가의 손은 안 쪽으로 뒤틀려 굳어버린 불구.
발랴의 손은 멀쩡했지만, 발가락이 7! 8개 뭉그러진 채 검은 색이다.
동전이 없으므로 지폐를 건넸다.
“적지만 이걸로 세분 점심 식사 하세요”
올가는 불구가 된 한 손을 가슴에 얹으며 격식을 차린 점잖은 언어로 축복을 해 준다.
“너무 고마워. 너도, 네 가족도, 모두 신의 축복이 함께 해서 늘 행복하기를….
늘 건강과 행운이 가득한 삶이 되고, 네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이렇게 나는 할머니 천사 셋을 아침마다 만났는데, 한번은 아침 식사중인 때도 있었다.
“안나, 여기 와서 앉아. 우리랑 같이 아침 먹자….”
빵 조각, 오이지, 그리고 버터 조각, 더러운 잼 병이 놓인 아침 식사.
근데 솔직히, 나는 그냥 보통의, 평범한 민간인이다.
그 자리에 소탈하게 앉아 빵을 입에 물 수 있는 그런 경지는 어림도 없는 속물.
“아냐, 딸하고 아침 같이 먹어야 해. 딸이 기다리고 있거든.”
이렇게 핑계를 대고 돌아오면서 또 부끄러워졌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내가 끼어 앉을 수는 도저히 없지만,,,,
그렇다면? 내 자리에 그들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을 레스토랑에 초대하기로 맘 먹었다.
그러면 그 할머니들, 최선을 다 해 씻고 모양내고 의젓하게 굴려고 노력하겠지.
천변이 아니라 그래도 그럴듯한 식당에 앉아 서비스 받으며 식사를 하고, 천천히 차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소련이 해체되면서 시류를 못 타고 거리로 나 앉은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들어 봐야지..
이러고 집에 왔는데 그날 저녁 늦게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우리가 터키 여행을 하려고 찾아갔더니 도저히 비행기 표가 없으므로 단념하시라, 고 했던 그 여행사에서.
“아직도 터키 가고 싶어?
그럼 지금 당장 여행사로 와서 표 끊고, 호텔 예약 하고, 그리고 내일 새벽 3시까지 공항으로 가라고., 마침 기적처럼 너희들 숫자의 티켓이 캔슬 되어 나타났거든”
우리는 헐레벌떡 달려가, 예약 마치고, 짐 싸고, 방 빼고,,,,,
그리고 터키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새카맣게 잘 그을려 알마타로 돌아왔을 땐 한국에 가야 할 날 3일 전.
그러나 천변을 아무리 헤매도 이번엔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허망하게 망가진 벤치를 보고 있다가 마침 지나가던 청소부들을 만나 물어봤다.
“저기, 맨날 여기 앉아있던 할머니 셋이 어디 갔는지 혹시 아세요?”
중년의 청소부 아저씨는 뜻밖에 빗자루를 내려 놓고 성의 있게 대답해준다.
“그러게 말야… 한 일주일 전부터 그 할머니들이 안 보이더라고.
응? 뭐라고? 아냐, 우리가 쫓아 낸 거 아냐. 우리도 모르겠어, 어디로 갔는지….
아마 여기서는 벌이가 안 돼서 다른 데로 갔나 봐.
여긴 보다시피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다녀봤자 애 데리고 오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도 돈이 없거든.
근데 그 할머니들은 왜 찾아?”
“아… 그냥,,,,, 산책하다가 이야기 나누고 사귀게 된 사람들인데….
낼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가기 전에 한번 만나고 싶어서….”
“알았어, 내가 혹시라도 보면 인사 전해 줄게”
그리고 한국 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이 왔다.
밤 비행기라 낮에 시간이 있기에 혹시나 하고 또 거길 나가 봤는데 역시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발길을 돌리는데 청소부 아저씨가 반갑게 달려온다.
“어이~ 그 할머니들 봤어. 내가 어제 봤는데, 잠블라 바이자꼬바에 있더라고. 거기 셋이 다 있더군.”
나는 두어 블록 넘어 그 거리로 달려갔지만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못 찾았어?”
터덜 터덜 돌아가니 청소부가 땀이 흐른 얼굴로 물어본다.
“음…. 이렇게 못 보고 가서 아쉽네요. 꼭 식사 같이 한번 하고 싶었는데…. 혹시 만나게 되면 이 돈 좀 전해주실래요? 같이 밥 먹으면서 쓰려고 했던 돈인데….”
청소부는 엄숙한 얼굴로 돈을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반드시 전해줄께. 내 이름은 바질이고, 위구르에서 왔어. 십 이년 전에 돈 벌려고 여길 온 거야. 우리 집은 여기서 이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거기 가족들이 살고 있어. 나랑 같이 청소하는 얘는 러시아하고 독일 피가 섞였는데 아주 착한 애지. 우리는 정직한 사람들이야.
우리는 매일 여기서 청소를 하고, 그 할머니들은 여기 자주 오니까, 아마 여름이 가기 전에 또 올 거야. 한국에 잘 돌아가고,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어”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한 끼 식사,
볼 수 있었던 그들의 최선을 다 한 치장과 우아함,,,,
실제로 같이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같았던 터키 여행보다 훨씬 마음에 남는 발랴와 나타샤, 올가…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면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면서 상상 속에서 따듯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정찬을 차려놓은 테이블에 그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