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만 뜬다면
-구상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
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
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
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
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
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무나!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
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
어느 곳에나 어둠은 깔려 있고
어느 곳에나 죽음은 입을 벌리고 있다.
잘못 간수한 한 개비의 담뱃불이
삽시간에 집채를 재로 만드는가 하면
네거리 횡단보도를 무심히 건너다가도
미친 듯 달려드는 차에 목숨을 잃듯
어느 곳에나 어둠은 깔려 있고
어느 곳에나 죽음은 입을 벌리고 있다.
어느 곳에나 영원은 열려 있고
어느 곳에나 당신의 손길은 있다.
만일 그대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저 생명의 약동과 그 죽음 속에서
영원한 그분의 손길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