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의 영성
양승국신부(살레시오회)
(1993년 사제수품, 2000년 로마 교황청설립살레시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석사. 살레시오회 관구장)
과거의 영성이 개인적이고 신비체험적이고 세상을 등지는 형태였다면, 현대 영성 신학의 동향은 신앙의 실천, 신앙과 삶의 접목하고 세상 속으로 들어와 함께 어우러지는 영성을 지향하고 있다. 즉 앞으로의 영성은 보다 인격적이고 공동체적 차원이 부각될 것이다.
헨리 나우웬 신부에 따르면 영성적인 삶은 자신의 깊숙한 자아와 동료 인간, 그리고 하느님께로 향한 발돋움(reaching out)이다. 진지한 영성생활의 결과는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제대로 된 영성생활은 세상과 이웃을 향한 투신으로 열매 맺어야 함을 가르친다.
각 사람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 꽃피어난 이태석 신부의 영성은 현대영성의 흐름에 잘 부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하루는 보통 사람의 한 달, 두 달 이상이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그는 톤즈의 가난한 청소년들과 하루하루 힘겹게 견뎌내고 있던 톤즈 주민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을 거듭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살레시오회 동아프리카 관구 소속 수단 지부 지부장 페링톤 신부(Ferrington Poobalarayen)는 이태석 신부가 얼마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밀도 깊고 충만한 삶을 살다갔는지 잘 알 수 있는 증언을 했다.“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다섯 명, 열 명이 할 일을 혼자 척척 다 해냈습니다. 그는 톤즈에서 불과 8년 동안만 선교사 생활을 했지만 사실 80년을 봉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가 해오던 일을 어떻게 계속해나갈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1. 이태석 신부 영성의 뿌리는 돈보스코 영성이다.
이태석 신부의 영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이태석 신부의 영성은 그가 인생의 스승이요 길잡이로 선택한 돈보스코의 영성과 크게 다름이 없다고 확신한다. 돈 보스코의 영성이자 이태석 신부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다양한 완덕의 길 가운데 돈보스코가 선택한 길이다.
길 잃어 해매는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착한 목자의 모습, 당시 인간 취급도 못 받던 어린이들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신 다음 한 명 한명을 축복하시는 친절한 사랑으로 충만한 예수님의 모습, 가장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한 평생 자신의 삶 안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돈보스코의 일생 전체가 돈보스코의 영성이자, 그의 탁월했던 제자 이태석 신부의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사목활동의 초기 돈보스코의 선택(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삶)과 이태석 신부의 선택(가장 고립된 오지 톤즈에서의 선교사 생활)은 주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할 정도였다. 그만큼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일생을 건 어려운 선택 앞에서 진지한 성찰과 결단을 거듭했던 것이다.
2. 이태석 신부가 실천한 영성은 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이다.
돈보스코 영성은 그가 창안한 ‘예방교육’ 안에 잘 집약되어 있다. 그는 기존의 다른 교육자들과는 달리 이성, 종교, 감응하는 사랑이란 자기만의 독특한 브랜드이자 깃발을 내건 예방교육을 통해 가난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정직한 시민,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성하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마음과 삶 전체의 결정체가 바로 예방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돈보스코는 현장에서 실천했던 교육자였다. 그는 다른 교육자들과 달리 청소년들의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가 창안하고 실천한 예방교육의 개념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펼쳐나갔던 교육 사업의 현장인 오라토리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보스코의 영성이 요약되어 있는 예방교육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질 정도로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현존과 헌신,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낮춤이 요구되는 영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착한 목자로서의 한없는 사랑과 헌신, 인내를 중심축으로 하는 교육 이념의 총합이 바로 예방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돈보스코의 예방교육은 적절한 임장지도를 통해 청소년들이 죄를 지을 환경을 미리 차단하고, 그들이 선을 행하도록 돕는 교육방식이다. 교육자들의 사랑어린 동반으로 청소년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덕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발전시키고자 애쓰는 것이 이 교육방식의 골자이다. 돈보스코는 자신의 예방교육을 강압적 교육방식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설정했다. 다음은 돈보스코께서 직접 교육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강압교육은 사람을 강압적으로 대합니다. 법을 어겼을 때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속박과 처벌로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방교육은 온유로써 사람들 교육하고자 하며, 그러므로 법을 준수하도록 친절하게 도와주고,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가운데서 행해지고 있는 교육입니다. 한 마디로 예방교육은 그리스도인 애덕이 제안하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종교가 밝혀주고 가르쳐준 양심적인 동기에서 옳은 일을 행하고 그른 일을 피하도록 청소년들을 인도합니다.”
이 예방교육은 이성적 사랑 방식이여서 구속적이지 않으며 스스로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종교가 바탕에 있어야 하며 억압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에 호소하는 것 이여야 한다. 즉 최종 목표는 청소년들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예방 교육은 감응하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감응하는 사랑이란 청소년들을 향한 교육자의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 스스로 교육자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깊이 느끼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청소년들도 교육자를 사랑하게 되는 상호적인 사랑이다. 돈보스코의 어록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젊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는 물론 나보다 박학한 사람도 많고, 나보다 훌륭한 인격자들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러나 나보다 여러분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육자 여러분,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되도록 사랑하십시오.”
3. 이태석 신부의 영성
3.1 가장 작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돈보스코에게 당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사업의 ‘큰 손’이던 바롤로 후작 부인이 자신이 운영하던, 그래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소녀들을 위한 복지시설과 아무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돈보스코의 대답은 단호했다. “제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돈이 있으시니까 사업에 필요한 사제들을 얼마든지 구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제 불쌍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이 순간 그들을 저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저는 해고를 받아들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전념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저를 도와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돈보스코의 노선은 이태석 신부의 생애 안에서 똑같이 되풀이 된다. 그는 청소년들 가운데서도 보다 가난한 청소년들, 어려운 청소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자주 표현했다.“나는 왠지 ‘꼴통’들에게 은근히 정이 간다. 괜히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장난을 걸고 싶고 시비를 걸어 반응 보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을 보면 나도 혹시 꼴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셨듯이 우리도 끝까지 우리의 꼴통들을 기다리다보면 작은 기적들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태석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데 아낌없이 자신을 바쳤다. 특별히 톤즈의 주민 가운데서도 다시 한 번 소외된 삶을 살아가던 나환우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과 우선적인 선택은 주목할 만하다.
3.2 육화의 영성
-환자 중심의 찾아가는 사목의 실천
신비 중의 가장 큰 신비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내려오신 신비, 곧 육화 강생의 신비다. 육화의 신비는 특별히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 왜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는지를 신앙의 차원에서 밝혀 준다. 사목이란 육화하신 주님의 마음이 되어 교회의 가장 약한 지체를 먼저 돌보는 것이다.
초기 오라토리오 시절 돈보스코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시던 예수님처럼 토리노 시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찾아다녔다. 돈 보스코의 제자 이태석 신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병원을 지어놓고 찾아오는 환자들만 치료하지 않았다. 그는 걸어올 힘도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다른 환자들을 찾아 정기적으로 이동 진료를 떠나곤 했다.
-톤즈 청소년들의 진정한 친구, 이태석 신부
다른 스승, 랍비, 사제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녀, 세리, 환자들의 친구가 되셨다. 돈보스코 역시 이러한 예수님을 철저하게도 추종했다. 그는 당시 엄격하고 위엄이 있으며 학생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다른 사제들과 달리 토리노의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에게로 내려가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이태석 신부 역시 톤즈 청소년들의 친구가 되길 원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루 온종일 동고동락하는 가족이 되길 원했다. 이방인 선교사가 아니라 그들의 동반자이길 원했다. 다음의 글에서 이태석 신부의 철저하게도 톤즈에 육화해서 그들과 완전히 하나 되고 싶어 하는 염원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그들과 함께 이것도 하면 좋겠다, 저것도 하면 좋겠다 혼자서 계획을 많이 세우곤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질적 도움보다는 같이 있어주는 것, 함께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전쟁이나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고 그들을 버리지 않고 같이 있어주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주님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그것보다 그 사람들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면 그들과 내가 한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또 절실히 실감하지요. 친형제자매가 아플 때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주님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거리상 멀리 있을 뿐인 그들의 고통에 진정 함께 아파해야 하지 않을까요?”
3.3 사목적 열정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과 열두 사도의 삶은 너무나 바빠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다. 군중을 피해 다른 곳으로 피해 달아나셨으나 그곳에도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예수님은 그야말로 뜨거운 사목적 열정을 바탕으로 깊은 투신을 하셨다.
돈보스코 역시 자신이 지닌 역량을 120% 발휘했다. 그 결과 남녀 수도회, 협력자회 창립, 수많은 오라토리오의 최종 책임자, 인쇄소 사장, 대성전 건립자, 학교 교장, 수많은 저술과 강연…늘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의 하루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이태석 신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내면에는 늘 활활 타오르는 열정, 에너지가 충만했었다. 그 결과가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톤즈에 그 짧은 기간 내 1500명 규모의 학교를 건립했고, 병원을 건립했으며, 이동진료를 계속했다. 그는 마치 100개의 팔을 지녔다는 별명을 들은 바오로 사도 같았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열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는 목표가 한번 정해지면 집요하리만치 투신하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자신의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밤잠을 줄여가며 투철하게 매진하곤 했던 뜨거운 사목적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지닌 사람, 내면에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
글을 마치면서
이태석 신부는 그 어떤 존재이기에 앞서 돈보스코의 제자이자 한 살레시오 회원이었다. 그가 톤즈에서 펼쳤던 숭고한 교육 사목활동은 돈보스코께서 토리노 오라토리오에서 펼쳤던 사목활동과 거의 다를 바가 없으며, 이태석 신부가 선택해서 시도했던 다양한 사목활동의 도구들은-브라스밴드 운영, 학교 건립, 동역자 양성-바로 돈보스코께서 사용하셨던 도구들이었다. 그리고 돈보스코의 방법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방법이었다. 결국 이태석 신부는 짧은 기간이나마 돈보스코를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매일 자신의 삶 안에서 충실하게 실천했던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교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각시대에 특징에 따른 영성의 흐름이 있다. 영성은 하느님께서 각 시대를 위해 베푸신 선물이자 은총이다. 한 시대를 이끄는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시대에 따른 하느님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감동을 주며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태석 신부의 영성은 그의 스승인 돈보스코의 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돈보스코의 영성이 그러했듯이 이태석 신부의 영성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현대적 영성이다. 지금 우리가 이태석 신부의 삶에 매료되고 그를 꾸준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영성이 바로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영성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진 이태석 신부의 메시지, 그의 삶과 정신, 영성이 주는 파장은 실로 크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그의 영성(작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 헌신, 함께 있어주는 마음, 영혼과 육신의 치유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태석 신부는 그의 스승 돈보스코께서 걸어가신 노선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돈보스코가 당시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자신의 1차적 주 사목 대상자로 선택한 것처럼 이태석 신부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수단의 톤즈를 자신의 사목대상지로 선정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도 또 다시 버림받은 갈 곳 없는 청소년들, 나환우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돈보스코가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을 주 사목 대상으로 선정하고 깊이 투신하고 헌신하였듯이 이태석 신부 역시 톤즈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깊이 투신했다. 온전히 헌신했다. 그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 재능, 건강 등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돈보스코가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 사이에 착한 목자로서 지속적 현존(Assistenza)으로 그들을 구원하였듯이 이태석 신부 역시 어떻게 해더라도 그들 사이에 머무르고자, 죽기까지 그들 사이에 현존하며 존재 자체로 그들이 희망이요 구원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2011.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