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4일(일) 이태석신부님 선종 8주기를 맞아 신부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담양묘소를 찾아 주셨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150여분이 찾아와 주셨고 이태석신부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해마다 함께해주시는 반가운 얼굴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어느새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따뜻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광주에 도착하니 눈이 소복이 내려 설국으로 변한, 살레시오 중고등학교 교내 풍광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치우는 이에겐 눈 쌓인 풍경이 고달픈 현실이지만, 경치를 감상하는 이에겐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해 주고 있었습니다. 날씨마저도 요며칠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이 기세가 누그러진데다가 남녘땅의 따스한 기온마저 더해져 추모행사를 갖기에 아주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묘소에 가기전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 내 성당에서 이태석신부님을 기억하는 미사를 드렸습니다.
장동현 미카엘 신부님, 이해동 라파엘 신부님, 이해섭 베르나르도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해주셨습니다. 멋짐의 아이콘 장동현 신부님의 미사 주례와 함께, 든든한 풍모의 이해섭 신부님께서 중심을 잘 잡아 주셨고, 긍정의 에너지 넘치는 이해동 신부님께서 톤즈에 가시어 있었던 상황들을 때론 재미있게 때론 진중하게 풀어 주셨습니다. ‘2년여 정도의 기간 있으면서도,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께서 처음에 아프리카 톤즈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상황보다도 그나마 기본적인 것들이 갖추어진 상황에서도 음식, 풍토 이런것들로 인해 많이 힘들었는데, 이태석 신부님은 더 척박한 여건에서 더 긴 기간을 어떻게 견디어 낸 것일까 감탄하면서도 그 인내의 원천은 가난하다 못해 더 바닥까지 내려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해동 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중에 또 하나 서양속담을 인용하면서 ‘비서 앞에 성인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고매한 인품의 성인일지라도, 일상은 희노애락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통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분명 사제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고통에 힘들어하시기도 하고 , 슬픔과 분노에서 자유롭진 못하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석 신부님께서 남긴 찬란한 흔적은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어 선종하신지 8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오늘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며, 이태석 신부님을 잊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지금 이자리를 함께 해주고 있는겁니다.
미사 말미에 토마스가 앞으로 나와 몇마디 하였는데, 지금 의대 졸업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이태석 신부님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말과, 이태석 신부님이 그립다고 했으며, 수단어린이장학회를 비롯해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있었고, 자신의 효도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습니다.
미사후 정성스럽게 마련된 식사를 마치고 담양 이태석신부님의 묘소에서 다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는데, 참석하신 분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은 모습을 보며 이제 더이상 신부님의 부재가 슬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그리움이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을 잊지않고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마음과,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게 하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함께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과, 그리고 참석치 못했지만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기억하며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