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9:37~38)
안녕하세요! 필리핀에서 인사드립니다.
2022년에 들어서면서 필리핀의 모든 학교가 9월 새 학기부터 대면 수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두 해 정도 사용되지 못했던 학교들이 내∙외부적으로 정리정돈을 하고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한 교실에 수용할 학생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학생에 한해 선착순으로 등록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자녀들의 백신 접종을 미루어 오던 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이 백신 접종을 서둘렀습니다. 8월 말, 걱정과 우려 속에 모든 학교가 문을 열었고 그 후 몇 달 동안 온라인과 대면 수업이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대면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 학교 앞은 발 디딜 틈 없이 학부모와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바랑가이(동사무소)에서는 경찰들과 봉사자들을 학교 주위에 배치하였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면 수업 재개는 저에게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두 해 정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런 기쁨도 잠시, 가정방문을 하는 동안 만난 부모와 아이들은 대면 수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늘어놓았습니다. 온라인 수업이 주가 되었을 때 공부에 필요한 기기들과 인터넷 환경이 미비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대면 수업에 필요한 환경 조성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대면 수업의 공백으로 인해 교복, 신발, 가방, 학용품 등등 등교에 필요한 것 중에 제대로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팬데믹 전에 입었던 교복. 체육복과 신발은 두 해가 지나면서 작아졌고 양말과 속옷은 학교에 입고 갈 수 있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니,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방문하는 사도직 장소를 꼼꼼하게 다시 돌며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아이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부모님을 만나 등교에 필요한 준비들을 지원해 줄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새 학기 등록 신청을 한 후 등록증을 받았습니다. 등록증을 받고 난 후 준비물을 사기 위해 학교와 문구점, 시장을 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바쁘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때론 아이들이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아 10분만 더 기다리자던 게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이런 이유로 놓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복을 입고 구두를 신어 보며 가방을 메고 학용품을 차곡차곡 쌓는 아이들의 수줍듯 기뻐하는 모습은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모두에게 같은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학교를 등교하기 위한 준비물을 가져서 기뻐하기보다도,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몸과 마음에 입고 행복해하는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대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노트북을 마련해 줌으로써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본인들이 희망하는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추천받게 되었음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매월 1회 무허가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간식 나눔을 하였습니다. 일회성으로 지원하는 간식이 어린아이들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묻기보다도, 그 자리를 통해 저희는 더 많은 아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알 수도 없던 아이들이 간식을 받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그 이후로 저희는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더 자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로서는 계속 간식을 받으러 나오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잘 있는지 궁금해지고, 아이들은 간식 나눔이 있는 날을 더 기다리면서, 서로를 기다리는 날들이 자리매김해 갔습니다.
평소에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없는 우유와 좋아하는 닭튀김, 소고기 죽, 햄버거 등으로 간식을 준비하면서 나눔이 있는 날이면 좋은 날씨를 주시길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으므로 매번 길 위에서 간식 나눔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손길처럼 매번 좋은 날씨를 주시고 필리핀 도우미 자매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도직 장소를 방문하면서 만나는 거리 거주민들, 다리 밑에 사는 가족들 등 많은 빈곤한 가정들이 하루 한 끼 먹는 식사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자녀 교육은 사치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집안의 노동력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는 권유에 화를 내는 부모도 있었지만, 오랜 만남을 통해 그들도 변화되어 갔고 자녀들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학교의 문이 활짝 열려있어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어, 집안에서 거리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요.
이들을 돌보고 지원할 수 있는 많은 일꾼을 보내 주십사 기도드리며, 멀리 한국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봉숙 필로메나 수녀 / 성가소비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