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이태석기념병원의 임시 진료소를 찾아 대기하는 주민들
[사단법인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고(故)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깃든 아프리카 남수단의 병원이 화재로 운영을 중단했다가 두 달여 만에 진료를 재개했다.
1일 사단법인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 따르면 올해 9월 6일 아침 남수단 톤즈에 있는 이태석기념병원 배터리실에서 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당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병원은 한순간에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병실 2개가 소실되는 등 방 5개가 훼손됐다.
또 의약품이 대부분 불에 타고 태양광 설비가 손상됐으며 건물 전체의 배선 교체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마저 끊긴 절박한 상황에서 병원 운영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수단에서도 오지인 톤즈의 아픈 주민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진료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했다.
병원 측은 수단어린이장학회의 긴급 지원으로 전력 생산을 위한 태양광 시스템 설비를 다시 확보했고 화재 사고 두 달여 만인 11월 11일 이태석기념병원 옆에 임시 진료소를 열었다.
진료소는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환자들을 돌봤던 건물에 마련됐는데 공간이 좁고 의약품도 아직 충분하지 않아 긴급 환자들을 중심으로 진료하고 있다.
이태석기념병원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병원을 지원해온 수단어린이장학회는 내년에 병원 건물을 복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경숙(순천향대 구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화재로 전소가 된 병실들이 있고 나머지 시설들도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라며 “내년에 지붕을 철거하는 등 리모델링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석기념병원은 2014년 7월 이탈리아 신부들의 도움으로 개원한 뒤 톤즈의 가난한 주민들을 치료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불이 나기 전까지 주민들이 매일 200명가량 병원을 찾아 진료나 치료를 받았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오랫동안 이태석기념병원을 도왔는데 2020년부터는 병원의 의사 및 직원 급여와 의약품, 이동 진료소 등 운영비를 모두 지원하고 있다.
11월 초에는 화재 상황을 점검하러 남수단 현지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화마 흔적이 남아 있는 이태석기념병원
[‘이태석 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가 11월 6일 남수단 톤즈에서 이태석기념병원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 9월 6일 화재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심각한 피해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펼친 헌신적 인류애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의인이다.
인제대 의대 졸업 후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2001년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던 톤즈(당시 수단 지역)에 정착한 뒤 밤낮으로 한센병, 말라리아, 결핵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아이들에게 직접 음악을 가르쳤다.
톤즈의 유일한 의사였던 그는 현지에서 ‘쫄리'(John Lee)라는 친근한 애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2008년 휴가차 한국에 들렀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2010년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신부의 삶은 남수단 곳곳에 큰 감동을 줬다.
남수단 정부는 2018년 이 신부에게 훈장을 추서했는데 당시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은 “이 신부가 우리한테 너무 많은 사랑을 남겼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수단 교육부는 초중고 교과서에 이 신부의 봉사 활동과 업적을 수록했다.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의 사랑으로 자란 제자 중 몇몇은 의사가 돼 스승에 이어 ‘인술’을 실천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의 모친 신명남 여사는 올해 9월 별세했다.
화재가 났던 남수단 이태석기념병원의 한 건물 외벽
[‘이태석 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가 11월 6일 남수단 톤즈에서 이태석기념병원의 외벽 한쪽을 촬영한 사진. 9월 6일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고(故) 이태석 신부의 애칭이었던 ‘쫄리'(John Lee)가 적힌 벽면은 손상되지 않았다.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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