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왼쪽) 신부가 지난해 12월19일 수단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존 마옌군의 병문안을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살레시오회 제공
“개인적인 의미보다 아이들이 좀 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12월17일 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이 공동제정한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제2회 수상자로 선정돼 심재두 알바니아 샬롬클리닉 원장과 공동수상했던 이태석(48) 신부는 상을 받은 기쁨보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훌륭한 일을 하는 의사 회원들도 많은데 자신이 괜히 상을 가로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8년간 인술을 펼쳐온 그는 의료활동뿐 아니라 교육, 심지어 건축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인 봉사를 베푼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을 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신부는 현재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간신히 그를 만났지만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환후가 악화돼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이 신부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빨리 완쾌해서 수단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이 신부는 뒤늦게 광주 가톨릭대에서 신학도의 길을 걷게 된다. 1994년 광주 가톨릭대를 졸업한 이 신부는 1997년 로마 유학 길에 올랐다.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대에서 유학 중 같이 공부하던 사제들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온 사제가 있어 그와 함께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된 것이 1999년 여름이었다.
“당시 남부 수단의 톤즈에 도착해 열흘을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한센병 환자와 결핵 환자가 많은데도 제대로 된 병원 하나 없었고, 학교 또한 없었어요. ‘내가 가면 도움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지난해 5월 이 신부가 펴낸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라는 책에는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뼈만 앙상히 남아 있는 사람들, 학교가 없어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묘사돼 있다.
그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내게 해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키로 결심,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수단 톤즈마을로 파견을 자청했다. 살레시오회 소속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수단에 파견된 것이다. 이 신부는 40∼50도를 넘나드는 아프리카의 더위 속에서 직접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가며 12개의 병실이 있는 병원을 지었다.
톤즈 인근 80여개 마을을 통틀어 유일한 의사였던 이 신부는 주변 마을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주민 200∼300명에게 인술을 베풀었고 매주 두 번 인근 마을을 돌며 예방접종과 이동진료 활동을 펼쳤다. 특히 홍역, 결핵 그리고 한센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결핵요양소를 운영해 결핵 환자를 치료했고,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조차 없어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태양열로 가동되는 냉장고를 설치했다.
이 신부의 헌신적인 활동이 한국에까지 알려짐에 따라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열발전기를 한국에서 들여올 수 있게 됐고, 냉장고와 백신도 속속 공급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결핵·파상풍·백일해·소아마비·홍역·볼거리 등 죽음의 질병으로부터 수많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단순히 질병뿐만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의 심성을 치료하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오랜 전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칼을 들이대고 선생님들을 협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양처럼 공손하게 변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8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톤즈는 아직도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희망의 싹이 자라는 곳으로 변했다. 병원도 갖추었고 중·고등학교 과정의 학교도 설립해 170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신부는 진료뿐만 아니라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후 어린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설립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또 오랜 내전으로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도왔다.
이 신부는 600∼700명의 한센병 환자들도 지속적으로 돌봤다. 한센병은 조기에 발견하기만 하면 완치도 가능하기 때문에 마을별로 한 명씩 담당자를 교육, 의심이 되는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알리도록 해 한센병 후유증으로 불구가 되는 사람들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신부의 땀과 사랑에 힘입어 아프리카의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였던 톤즈는 절망에서 희망의 땅으로 바뀌었다. 2∼3일씩 걸리던 길이 포장돼 1시간이면 닿을 수 있게 됐고, 태양열을 이용해 위성TV와 인터넷도 쓸 수 있게 됐다.
현지인들은 이 신부를 ‘쫄리’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신부의 세례명 존(요한)에 성을 붙여 ‘존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 신부는 ‘아시아에서 온 스타’로 통한다. 그만큼 이 신부의 활동이 인상깊게 박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후원도 잇따랐다.
지난 2005년 톤즈의 이 신부를 방문한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방문기를 글로 엮은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를 출판, 인세를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수단이태석신부 카페’ 회원들은 2006년 사제 휴가기간에 이 신부가 한국을 방문하자 후원자들과 함께 ‘1% 나눔 작은 음악회’를 열어 기금을 모았으며 ‘수단어린이장학회’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 신부는 2008년 말 모처럼 휴가를 얻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암 판정이 이 신부의 발목을 잡았다. 이후로 이 신부는 한국에서 투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고통의 특은’을 주시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톤즈 마을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가지지 않으므로 인한 불편함은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이런 불편함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한 참된 가치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절로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19일엔 수단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와 투병 중인 이 신부에게 큰 위안이 됐다. 수단에서 이 신부가 가르쳤던 두 청년이 사단법인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초청으로 한국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이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건 음악을 가르치건 그 과정이 진정 행복한 것은 아이들이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귀국해 수단을 이끄는 엘리트로 성장하고, 두 사람을 시작으로 더 많은 수단 청년이 좋은 교육을 받게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청소년에 대한 기독교적 교육을 목표로 하는 살레시오회 소속 신부답게 아이들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인지 불분명할 때가 있잖아요. 그렇기에 항상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화장실에 있으면 그 순간 최선을 다하고, 공부할 때도 그 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고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요. 아울러 많은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어요. 봉사를 하면 오히려 받는 것이 더 많은데, 보통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봉사는 삶의 질을 높이고 자아 실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 출생 ▲1987년 인제대 의과대학 졸업 ▲1991년 살레시오회 입회 ▲1992년 광주 가톨릭대 입학 ▲1994년 1월 첫 서원 ▲1997년 로마 유학(교황청립 살레시오대) ▲2000년 4월 종신서원(로마) ▲2000년 부제서품(로마) ▲2001년 사제서품(서울) ▲2001년 11월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수단으로 출국 ▲2005년 제7회 인제 인성대상 수상 ▲2008년 11월 한국 입국 후 대장암 3기 판명 ▲2009년 12월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관련 링크 :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자를 위한 헌신… 수단에‘仁術 기적’ :: 문화일보 mun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