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 오지 봉사의 삶 ‘현재진행형’
지난해 오늘, 한국발 뉴스 하나가 아프리카를 울렸다. 수단에서 의사이자 교사로 활동하며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이태석 신부가 선종했다는 소식. 우는 것을 불명예로 여겨 좀처럼 울지 않는 수단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은 신학자이자 철학자, 음악가, 의사로 아프리카 원시림 가봉공화국에서 인술을 펼쳤던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이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10남매를 키웠다. 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할 때까진 여느 동기생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의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부의 뜻을 굳힌 이 신부는 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이후 방학 때 봉사를 하며 찾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이 신부는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수백만명이 죽었다는 남부 수단의 소식을 접했다. 이때부터 수단에 뜻을 품은 이 신부는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주저없이 자원봉사자들조차도 꺼린다는 남부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로 향했다.
우선 당장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만들고 이후 맨손으로 벽돌을 구워 병원을 지었다. 이 신부는 하루에 보통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에도 나섰다.
다음으로는 무지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학교가 급선무였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1년 과정을 꾸려 손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브라스밴드를 창단해 악기도 가르쳤다. 이 학교는 톤즈 아이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2008년 모처럼 휴가를 얻어 한국으로 돌아온 ㄷ뒤 받은 건강검진에서 이 신부는 생각지도 못한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곧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겠다던 이 신부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이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걱정하고 그리워했다.
이 신부는 이렇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주는 감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신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지난해 하반기 극장가에서 개봉돼 4개월 만에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뭉클한 감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 고인의 삶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수단 지역에 끊어졌던 의료봉사도 재개됐으며 후원 카페와 수단 어린이장학회를 찾는 후원자들의 손길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