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 1주기 추모…그를 다시 기억한다
“그는 어떻게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던 이태석 신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2010년 1월 14일 선종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가 개봉돼 논픽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누적 관객 30만 명을 넘어섰다.
“어린 태석이는 가난한 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
소 알로이시오 신부 헌신적 삶 배워 수단서 봉사활동”
그가 죽기 직전 펴낸 아프리카 이야기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증보판으로 발행돼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그를 후원하던 인터넷 카페 ‘수단어린이장학회(cafe.daum.net/WithLeeTaeSuk)’의 회원 수는 현재 1만여 명에 달한다.
고(故) 이 신부에 대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감동한다. 이 신부는 1962년 부산 서구 남부민동에서 태어나 26세에 인제대 의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다시 사제의 길을 걸었고, 8년간 수단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이 신부는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음악교육과 학교 건립 등으로 가난한 현지인들의 상처난 마음도 안아 주었다. 그러다 병을 얻었다. 이 같은 내용의 다큐멘터리 상연관마다 관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에는 고인에게 감사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글들이 매일 게재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한국을 떠나 수단으로 간 이유에 대해 “그곳이 가장 가난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들이 꺼리는 곳으로 떠날 수 있었던 마음은 또 어떻게 지닐 수 있었을까.
2004년 수단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한 아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 이태석 신부.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음악을 좋아했던 이 신부의 학창시절(기타를 치고 있는 학생이 이 신부).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이 신부는 어린 시절 친구가 많았다. 친구들은 이 신부를 천진난만했던 밝은 성격의 소년으로 기억한다. 고향 친구이자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인 석도재(49) 씨는 “어렸을 적엔 같이 밭에서 서리를 하다 비료 구멍에 빠지기도 했을 정도로 장난도 많이 쳤다”면서 “키도 크고, 노래와 연주를 워낙에 잘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다”고 밝혔다. 대학시절 당구도 수준급이었다 한다.
이 신부의 성장기를 얘기할 때는 음악과 부산 송도성당, 그리고 밝은 성격이 빠지지 않는다. 모두가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성당은 곧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이 신부는 풍금을 스스로 익히며 음악에 빠져들었고 친구들을 사귀었다. 석 씨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태석이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털어놨다.
말기암과 싸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 신부.
수단어린이장학회 제공
이 신부가 살던 집 인근에 고아들을 돌보는 보육시설이 있었다. 이 신부는 자연스레 그곳 아이들이 송도성당에 놀러온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단다.
이 신부의 형인 부산 기장 삼덕공소 이태영 신부는 “어린 태석이 누나와 길을 걷다 보육시설 건물을 쳐다보고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 적이 있다”며 “동생이 ‘고아들이 안타깝다’며 귀가를 거부해 ‘고생하는 어머니도 불쌍하지 않냐’고 달래 겨우 데려왔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어린 이 신부가 집에서 바늘과 실을 챙겨나가 길거리에서 고아들의 옷을 기워준 적도 있었다는 것. 그의 삶의 전부가 된 약자에 대한 연민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 김백상 기자
또 이 신부는 보육시설을 세운 미국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를 옆에서 보고 자랐다. 소 신부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한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다. 1960~1970년대 소 신부의 삶은 수단의 이 신부의 삶과 겹쳐 보인다.
이 신부의 고향 선배 김황열(51) 씨는 “이 신부가 매우 가난한 시절을 보낸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그 시절엔 다 어려웠다”며 “소 신부가 더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어 주는 걸 지켜보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단에서 꽃핀 이 신부의 선행의 바탕은 이미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전염되는 것이었다. 소외계층을 위한 누군가의 선행은 또다른 사람에게 전염되기 마련이다. 소 신부가 이 신부에게 착한 마음을 전해주었듯 이제 이 신부의 아름다운 삶과 정신은 그를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퍼질 것이다.
고향 친구인 남산성당 오창열 신부는 “같은 사제로서 성스러운 삶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가 부럽고 내게 자극이 되고 있다”며 “스스로 향기를 내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이태영 신부는 1년 전 동생이 곁을 떠나자 공허함을 느꼈다고 한다. 동생에게 쾌유라는 신의 기적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러나 그는 나날이 동생의 향기가 곳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지낸다고 했다. 이 신부를 알아가고 닮으려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지금의 현상이 어쩌면 그가 만들고 싶었던 기적이 아닐까.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영상=김상훈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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