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수단 어린이 돌보다 대장암으로 투병
아프리카 수단 아이들을 웃게 했던 한국인 슈바이처가 수단 밤하늘의 별이 됐다.
톤즈마을 아이들 친구이자, 의사ㆍ교사였던 이태석(살레시오회) 신부가 14일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48살.
그는 8년 동안 섭씨 40도가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말라리아와 홍역으로 고통받는 원주민과 함께했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지었고, 음악도 가르쳤다. 그러던 중 2008년 휴가차 귀국한 길에 대장암 3기를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해왔다.(평화신문 2009년 12월 27일자 1049호 참조)
살레시오회 한국관구는 16일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대성당에서 관구장 남상헌 신부 주례로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수도ㆍ성직자를 포함한 신자 1500여 명은 고인의 천상 안식을 기원했다. 유해는 전남 담양 천주교공동묘역 살레시오 수도자묘역에 안장됐다.
미사에는 이 신부를 후원하는 수단어린이장학회(http://cafe. daum.net/WithLeeTaeSuk) 초청으로 지난해 말 한국에 유학 온 아프리카 청년 토마스 라반(24)과 존 마옌(23)도 함께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귀국 당시 투병 중이었던 이 신부는 걱정하는 이들에게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했다. 14일 새벽, 선종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눈 감은 이 신부에게 “이제 우리는 누구를 바라봐야 하냐”며 펑펑 울었다. “신부님이 성공할 거라는 희망을 주셨기에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신부님은 하느님이 데려가서 좋겠지만 우리는 슬프다”면서 “우리도 신부님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눈물로 다짐했다.
두 청년과 함께 한국에 온 살레시오회 아프리카관구 수단지부장 펠링턴 신부는 장례미사에서 이들을 제대 위로 불러낸 후 고별사를 읽어 내려갔다.
“당신은 의사이자 사제, 스승으로서 톤즈의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과 연결시켜 줬습니다. (중략) 우리 가족이 돼주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톤즈의 젊은이들에게 당신 삶을 전할 것입니다.”
펠링턴 신부는 “톤즈에서도 당신이 만든 밴드는 (비록 당신이 지휘하진 못하지만) 당신을 위해 연주할 것”이라며 “그들은 (슬픔을) 춤과 노래로 주님을 찬미할 것이다”고 전했다.
수련동기 백광현 신부는 “로마 유학 시절 톤즈에 두 달간 선교사 체험을 다녀오고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한 태석이 형이 수단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고생을 했는데 다시는 가지 않겠지 했다”며 고별사를 이어갔다.
백 신부는 “투병 중 신부님은 ‘돈보스코가 저를 축복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며 그가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남상헌 신부는 강론에서 “신부님 삶이 우리 인간의 눈에도 그토록 아름다웠기에 하느님 보시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셨을 것”이라며 “그래서 하느님이 일찍 불러 가셨다”는 누리방에 올려진 한 수녀의 글을 인용했다.
형 이태영(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신부는 고별사에서 “어려움 속에서 기쁨과 희망, 사랑의 꽃을 피워낸 태석이가 이 미사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예수님이 너는 나를 많이 닮았구나 하시지 않겠느냐”며 동생 신부를 추모했다.
이 신부는 1962년 10남매 중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2000년 종신서원을 한 이듬해 사제품을 받고 5개월 후 수단으로 떠났다. 지금까지 인제인성대상ㆍ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삶이 담긴 책으로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이태석 신부 지음)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이재현 지음)가 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고아원을 짓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실과 바늘을 들고 나가 한 걸인의 바지를 꿰매준 일화는 그의 성품을 엿보게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한 성경구절은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였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