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1962~2010, 살레시오회) 신부가 남수단 톤즈를 떠난 지 7년 4개월, 세상을 떠난 지 6년여가 지났다. 톤즈 주민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이 신부를 간직하고 있을까?
이 신부의 삶을 알리고, 톤즈를 비롯한 저개발국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건립을 지원하는 (사)수단어린이장학회(이사장 안정효)와 함께 11일부터 18일까지 이 신부가 8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던 톤즈를 방문했다.
이 신부의 발자취를 취재하고 톤즈의 주민들을 만나 이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지난해부터 톤즈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이해동(살레시오회) 신부를 만났다. 5회에 걸쳐 톤즈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이태석 신부와 이해동 신부의 이야기를 싣는다. 글ㆍ사진=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브라스밴드는 이태석 신부를 잊지 않았다
14일 늦은 오후였다. 돈 보스코 중고등학교(Secondary School)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애국가였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다. 돈 보스코 라디오 스테이션(Radio station) 앞이었다. 라디오 스테이션은 내전이 끊이지 않는 톤즈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방송국으로 7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방송국 안에 브라스밴드 연습실이 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방송국 앞에서 트럼펫, 클라리넷 등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른 한국 노래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고향의 봄’, ’아리랑’을 악보도 보지 않고 능숙하게 연주했다. 이태석 신부가 만든 ‘브라스밴드’의 단원들이었다. 청소년 35명을 모아 밴드를 만든 이 신부는 악기 사용 설명서를 읽어가며 연주를 가르쳤다.
이 신부가 톤즈를 떠나고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단원들은 가르침을 잊지 않고 틈틈이 연습하고 있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임마누엘(21)씨는 “주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같이 이렇게 연습하고 있다”면서 “악기 연주가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밴드가 만들어질 때 10대 초중반이었던 단원들은 어느덧 20대가 됐다. 이 신부가 떠난 후에도 2년에 한 번씩 새 단원을 뽑아 연습을 시키며 밴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지휘자 역할을 하며, 새 단원들에게 악보 읽는 법도 가르치고 있는 마고트(22)씨는 “이 신부님이 안 계시다고 해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신부님의 정신이 끊긴다고 생각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음악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악기를 수리하고 조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 신부가 떠난 후 새로운 악보를 구하지 못해 8년째 같은 곡들을 연주하고 있다고 했다.
밴드 연습실에 들어가 보니 찢어진 드럼이 가장 먼저 보였다. 먼지가 낀 악기들은 천으로 덮여 있었고, 공책에 그린 악보는 너덜너덜해진 채로 피아노 위에 쌓여 있었다. 공연 때 신는 신발들은 구겨져 상자 안에 있었다. 연습실 한 편에 이 신부가 단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눈에 띄었다.
작은 씨앗이 큰 열매로 ‘존리 하스피틀’
이 신부가 머물렀던 수도원에서 1분 정도 걸어 나오면 그가 환자들을 돌보던 ‘존 리 하스피틀’(John Lee Hospital) 있다. ‘존 리’는 톤즈 사람들이 이 신부를 부르던 호칭이다. 톤즈의 첫 의사였던 이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병을 치료해 줬다. 이 신부가 떠난 후 MSMHC(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마리아 선교 수녀회) 수녀를 비롯해 16명의 직원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늘 20~30명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지만 의사는 없다.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거나, 증상을 듣고 적당한 약을 주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중한 병은 진단도 치료도 할 수 없다. 피부병 환자가 많고, 우기와 여름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많이 찾는다고 했다.
병원을 담당하고 있는 샨티 수녀는 “이 신부님이 떠난 후 환자가 많이 줄었는데, 다시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지금은 하루에 200여 명을 진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빠르면 오는 6월, 지금의 병원 뒤에 훌륭한 진료시설을 갖춘 새로운 병원이 문을 연다. 새 병원은 2014년, 이탈리아의 ‘톤즈 프로젝트’라는 단체에서 세웠다. 건립을 주도한 이는 이태석 신부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병원 이름을 ‘존 리 하스피틀’이라고 지었다. 이 신부가 뿌린 작은 씨앗이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새로운 병원에 들어가 봤다. 모든 것이 열악한 톤즈에서는 ‘신세계’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병상이 80개에 이르고, 수술실과 인큐베이터, 갖가지 검사기구, 실험기구도 있다. 의사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샨티 수녀는 “의사를 초청해 꼭 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학교 세워져
이 신부가 톤즈에 뿌려놓은 씨앗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 배움의 갈증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고등학교를 지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아이들 1000여 명이 초등학교와 중ㆍ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새로운 초등학교가 건립됐다. 내년부터 초등학생 600여 명이 새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 신부는 처음 톤즈에 왔을 때 학교가 없어 나무 밑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섭리만을 믿고 학교를 열었다. 첫 학교를 지은 지 10년 만에 그토록 짓고 싶어 하던 새 학교가 건립된 것이다. 이 신부가 하늘나라에서 학교를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듯하다.
후원 문의 : 02-591-6210 수단어린이장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