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15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2007년 어느 날, 이태석 신부는 인천공항에 배웅하러 온 수단어린이장학회 오이화(실비아) 이사에게 활짝 웃으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휴가를 마치고 톤즈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신부는 아직 현대 문명이 전해지지 않은 톤즈를 우리나라의 150년 전 모습에 비유했다.
톤즈 거리와 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신부가 말했던 ‘150년 전’이 실감 났다. 사람과 개, 염소와 같은 가축이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길 곳곳에 동물과 사람의 분뇨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주민들은 흙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마른풀과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지붕을 덮은 사각 형태 집에서 산다. 방 넓이는 13㎡ 정도로 모든 집이 비슷비슷하다. 전기도, 수도시설도, 화장실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고, 대소변도 거리에서 해결한다. 물은 마을 공동 우물에서 길어온다. 집 안에 들어가 보니 무척 어두웠다. 살림은 단출했다. 그릇 몇 개와 옷가지가 전부였다. 삶은 옥수수와 콩이 주식이다.
사람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거의 밖에서 보낸다.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집 앞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외국인들에게 무척 친절하다. 인사를 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화답한다.
이번 방문에 함께한 공 고미노(살레시오회, 76) 수사는 “한국은 1960년대 초반에 무척 가난했지만 20여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며 “하지만 이곳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공 수사는 1960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32년 동안 활동하다가 1992년부터 수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가 뭐길래
톤즈에서는 뿔이 커다란 소를 끌고 다니는 목동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소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자 모든 분쟁의 원인이다. 남자들은 혼인할 때 아내의 집에 소를 선물해야 한다. 톤즈의 전통이다. 지참금으로 보내는 소의 수는 처가의 재력과 여자의 학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소 10마리에서 많으면 150~200마리에 이른다. 딸을 시집보내면 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딸을 선호한다.
소를 많이 가진 남자는 몇 번이고 혼인한다. 톤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이해동(살레시오회) 신부는 “아내가 27명이나 되는 사람도 있다”면서 “남자들은 아내가 많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내가 한 명뿐인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못난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설명했다.
톤즈에서는 부족 간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원인은 대부분 ‘소’다. 혼인 때문에 소가 필요한 남자가 이웃 마을의 소를 훔치고, 도둑맞은 마을 주민들은 총을 들고 복수를 하러 온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웃 마을에 있는 연못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거나 초원에서 풀을 뜯겨도 전쟁이 일어난다.
나이를 모르는 아이들
이곳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짧고, 아이를 많이 낳는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무척 많다. 중장년층은 가뭄에 콩이 나듯 만날 수 있다. 한국과 정 반대다.
이태석 신부는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투명하고 순수한 톤즈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흘러나오는 감탄사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연발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이 신부의 말이 떠올랐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맑디맑다.
마을 어디를 가든 십 수명의 아이들이 따라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자세를 취한다. 3월 12일, 톤즈의 나환자 마을인 ‘라이촉’의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 ‘랏’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만났다. 2학년이 됐다는 랏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보여 달라고 하더니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걸었다.
영어를 제법 잘했다.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나이를 물었더니, 수다스럽던 아이의 말문이 막혔다. 잘 알아듣지 못했나 싶어 다시 한 번 천천히 질문했지만 랏은 묵묵부답이었다. 옆에 있던 이해동 신부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알지 못해 대부분 나이를 모른다고 했다. 달력도, 출생신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성당을 찾아와 세례를 시킨다. 세례증명서가 출생신고서, 본당이 동사무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12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성가와 율동, 동물이 어우러지는 미사
이곳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아이를 낳으면 마치 전통처럼 유아세례를 시키기 때문에 신자 수는 많지만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많지 않다. 3월 13일 마을 중심에 있는 톤즈 예수성심성당에서 봉헌된 주일미사에는 1000명가량이 참례했다. 미사 전 성당 밖 자갈밭에서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했다.
미사 참례자 10명 중 7명은 청소년이다. 어린 동생을 안고 온 여자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성당에는 200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어 주일미사는 마당에서 봉헌된다.
성가를 많이 불러 미사가 무척 길다. 참회 예절 후, 강론 후에도 한참 동안 성가를 부른다. 목소리가 무척 아름답다. 보편 지향 기도는 7명이나 했다. 미리 기도를 적어 오지 않고 즉석에서 자유롭게 기도를 바치는데도 더듬거리는 이 한 명 없다. 영성체 예식 전에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2시간여 동안 딴짓을 하지 않고 미사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사 중에 개와 염소가 제단에 올라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톤즈는 150년 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
글·사진=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관련 링크: cpbc News : [톤즈, 부활을 꿈꾸다] (2) 톤즈, 시간이 멈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