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안정효 위원장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사업회 위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태석 신부와 의대 동기, 운동과 음악 좋아했던 친구
아프리카 선교 초창기 도움 못 줘 미안해
수단어린이장학회 통해 유학온 톤즈 학생 2명 의대 졸업
내년 이태석 신부 10주기…유품 정리, 전기 출간 등 기념사업
이태석 신부 사랑 정신, 각자의 삶 안에서 실천하길
[인터뷰 전문]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희망과 기적을 선물했던 분.
톤즈의 돈보스코로 살다간 고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어느덧 내년 1월이면 선종 10주기를 맞게 되는데요.
신부님의 헌신과 나눔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사업회 안정효 위원장 연결해 이태석 신부의 나눔 정신과 준비 중인 추모 기념사업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정효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생전에 이태석 신부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셨어요.
▶대학을 6년 같이 다녔었어요.
▷의과대학을 같이 다니셨군요. 의대 다닐 때 고 이태석 신부님은 어떤 동기생이자 친구였습니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는데요. 6년 동안 늘 같이 붙어서 공부를 해서 그래서 눈에는 선한데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쉬는 시간에는 나가서 농구하고 그리고 음악 동아리, 챔프동아리가 있는데 주로 거기에서 살았죠. 거기 친구들하고 부대끼며 지내고 술이나 이런 거는 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많이 했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신부님께서 세상 떠나셨을 때 종교를 떠나서 많은 분들이 슬퍼하시지 않았습니까? 신부님께서 남기신 유산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커서 뭐라고 딱 짚어서 얘기를 하긴 힘드네요. 우선 제가 느낀 거는 미안함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어떤 마음에서 미안함이 크셨습니까?
▶제일 힘든 데를 자청해서 가지 않으셨습니까. 초창기에 많은 이메일을 받았는데 전혀 도움을 못줬죠. 사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초창기가 제일 힘든데 그 힘들 때 도움을 못 준 게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고 미안하고요. 그리고 ‘저런 분들도 있는데 나는 뭔가…’ 하는 그런 생각도 크지 않았나 싶어요.
▷모두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태석 신부님께서 떠나신 후에 톤즈를 다녀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뒷북친다는 말처럼 살아있을 때는 못하다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름에 수단어린이장학회 사람들하고 다녀왔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당시에 학교를 짓다 기초공사를 하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돌아가셨는데요. 마침 그 공사를 계속할 봉사자분이 한 분 계셔서 그렇게 네 사람이서 여름철에 톤즈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2010년일 텐데요. 체류하시면서 직접 생활해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너무 힘들죠. 특히 기억나는 게 신부님이 살던 방을 들어가보니 얼마나 덥던지요. 한증막이이더라고요. 거기에서 지내셨던 건데, 그래서 사실 속으로 ‘이제 고생 안 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나 더운 환경이고 열악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드셨을까요. 수단어린이장학회하면 이태석 신부님 생전에 만들어진 단체 아닙니까? 위원장님께서 이사장을 맡아오셨잖아요. 장학회는 어떻게 꾸려졌고 그간에 어떤 일을 해왔습니까?
▶장학회를 만들게 된 건 다음카페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오프라인에서 후원을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사단법인으로 장학회가 만들어진 거고요. 우선 제일 큰 거는 살아계실 때는 1년에 5,000만 원 정도 기금을 후원금을 받은 걸 지원을 해줬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금액이 너무 커졌어요. 돌아가시고 난 뒤에 한 해에 거의 20억이 들어왔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부님 유지를 잇기 위해서 도움과 기부를 하셨네요.
▶최근에도 1년에 10억 정도 후원금이 들어왔는데요. 저희들은 경제적인 지원은 살레시오 선교부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물론 톤즈에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 세계 동남아라든지 몽골, 남태평양 그리고 남미 이쪽으로, 저희들은 직접 사업은 안 하기 때문에 가서 직접 일하시는 분들에게 현금으로 지원을 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고요.
▷언론을 통해서 수단어린이장학회 후원으로 남수단 청년들이 우리나라로 유학을 오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간 학생들도 있다고 그러던데 현지로 돌아간 청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저희 장학회를 통해서 온 장학생들은 세 사람인데 두 사람은 신부님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 친구들 둘은 인제대, 신부님 졸업한 학교죠. 거기 입학해서 한 사람은 재작년에 졸업해서 작년에 의사가 됐습니다.
▷저희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가 됐던 것 같아요.
▶네, 인턴 마치고 조만간 일반외과 레지던트로 들어갈 예정이고요. 한 친구는 의사시험을 두 번째 시도를 하는 입장입니다. 둘 다 졸업을 했고요. 그리고 또 돌아가시고 난 바로 직후에 온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토목공학을 전공을 하고 졸업을 해서 지금 직장 생활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 내년 1월이면 어느덧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게 되는데 기념사업으로 어떤 일들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1월 14일이 10주기 기일인데요. 12일 주일에 주일미사를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강당에서 김희중 대주교 주례 미사로 10주기 1년 사업을 시작하고요. 그중에 제일 큰일은 그동안 신부님의 뜻이 남아 있는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또 전기 출간을 이충렬 작가님, 추기경님 전기를 쓰셨던 작가분이 흔쾌히 맡아주겠다고 하셔서 신부님 전기를 집필할 거고요.
그리고 영상이나 글, 사진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사진전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이후 초창기에 심포지엄을 했습니다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심포지엄도 기획하고 있고요.
▷그리고 수단어린이장학회 말고 이태석 신부님을 기리는 단체들이 여러 군데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단체들이 있는지요. 그리고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까?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외에도 <이태석 신부 참사랑 실천>이라는 단체가 이태석 신부님 돌아가시고 나서 송도성당에서 설립을 해서 송도 지역과 부산 교구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음을 하고 있고요. 두 번째로는 <부산 사람 이태석 기념 사업회>라는 사단법인이 있는데 이건 종교단체에서 만든 건 아닙니다.
부산에 있는 인제대학교, 언론계, 금융계, 교육계 분들이 종교를 떠나서 이태석 신부님의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기리는 그런 사업을 하는데 여기도 참 알차게 잘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태석 사랑 나눔>이라고 <울지마 톤즈>를 제작한 구수환 PD분이 만든 수단을 지원하는 단체가 있는데 대부분 저희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44만 명이 관람하면서 종교 다큐멘터리 흥행기록을 세웠는데 이번에도 다큐멘터리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내용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됩니까.
▶그때하고는 다른 시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슈바이처보다는 사제 그자체로서 이태석 신부를 좀 더 조명을 하고요. 그리고 톤즈는 적선의 대상이 아니고 이태석 신부는 단지 봉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봉사가 아니라 그게 생활이었어요.
▷그러셨죠. 사제의 삶을 살다가 그대로 보여주신 분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태석 신부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
▷제2, 제3의 이태석 신부들을 만나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된다는 말씀이시네요. 끝으로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아서 우리 사회가, 또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가기를 바라고 희망하십니까?
▶우리 생활 안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보여준 그런 사랑, 실천을 생활 안에서 자기생활 안에서 이루어 간다는 거. 기회가 있으면 봉사활동이 되겠고 아니면 믿을 만한 단체에 후원을 한다든지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사업회 안정효 위원장님과 말씀 나눴습니다. 위원장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관련 링크: cpbc News : [인터뷰] 안정효 위원장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사랑…각자의 삶에서 실천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