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태석 신부 모교 인제대 의대 김택중 교수
■ 제작 : 손성경 PD
■ 진행 : 김효영 기자(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김택중 주임교수(인제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 김효영 : 고 이태석 신부님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이죠. 이 분이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생입니다. 인제대에서는 이태석 신부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의 김택중 주임교수 만나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김택중 : 네 안녕하십니까.
◇ 김효영 : 먼저 인문사회의학교실이 궁금한데요?
◆ 김택중 :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근래에 들어 의사들의 능력이나 지식적인 측면 외에 의사들의 인성도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강조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각 의과대학에서 인성적인 측면을 개발시키기 위해서 의학적인 것 외에 인문학, 사회과학, 문학, 예술 등 다른 분야를 통해 학생들의 교육을 강조하려는 교실들이 생겼고요. 연구 분야는 각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의학의 역사, 철학, 윤리 이런 쪽을 연구하고 관련해서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 김효영 : 의사가 병만 잘 고치면 되지, 무슨 인문과 사회과학 지식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 김택중 : 물론 환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의사들이 실력이 좋아야 하죠. 하지만 의사들이 단순히 능력, 지식만 좋다고 해서 환자들의 질병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거든요. 의사들이 환자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 기본적인 예의, 매너, 동병상련, 공감, 이런 것을 더 느꼈을 때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더 원활해 지면서 환자의 치유 속도가 빨라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 김효영 : 내가 어디 아프다고 했을 때 같이 걱정해 주고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큰 위로를 받고 치료 과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시죠?
◆ 김택중 : 네. 실제로도 도움이 된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김효영 : 그런 면에서 보면 이태석 신부는 훌륭한 의사였습니다.
◆ 김택중 :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맞습니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이태석 신부님을 닮을 수 없겠지만, 또, 그대로 닮고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없겠지만, 이태석 신부님처럼 희생을 했을 때 환자들이 느끼는 것은 일반 의사들하고 다르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 김효영 : 이태석 신부님이 인제대 의대 3회 졸업생이시군요. 김 교수님은 모교가 인제대입니까?
◆ 김택중 : 네 맞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제 선배이시죠. 근데 기수가 차이가 나서 제가 생전에 유감스럽게도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되게 아쉽습니다.
◇ 김효영 : 하지만 그 때 이 신부님과 같이 의대를 다녔던 또 다른 선배님들이 계시겠죠.
◆ 김택중 : 그럼요. 안 그래도 학교에서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이나 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을 인터뷰 해봤는데요. 실제로 이태석 신부님의 동기 분들이라던가, 선후배분들, 생전에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기억이 있으신 분들을 인터뷰해보면,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가셨다고 표현한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 김효영 : 그 분들이 일례로 든 일화가 있나요?
◆ 김택중 : 제가 기억하기로는요. 약간 다른 얘기지만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과연 공부는 어떻게 하셨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부님의 성적표를 확인해 봤는데, 재밌게도 수석이라든지 상위권은 아니세요. 그렇다고 하위권도 아니고 중상위권이었습니다. 공부를 적당히 잘 하시면서 공부만 하신게 아니라 음악 동아리 활동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그리고 실제로 학생 가요제 나가셔도 상도 받으시고, 이렇게 의대를 다니시면서 두루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의료 봉사는 당연한 거고요.
◇ 김효영 : 다재다능하셨군요
◆ 김택중 : 네. 다재다능하셨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김효영 : 이태석 신부가 의료 봉사활동도 하셨다고 했지만 그 분은 왜 그 곳으로 가셨을까요? 계기가 있습니까?
◆ 김택중 : 이태석 신부님이 의사가 되신 다음, 군의관 전역을 하신 다음에도 원래 어릴때부터 신부가 되고 싶었던 분이었다고 합니다. 형님이 신부이시거든요. 그러니까 아들이 얼마 없는데 의대까지 나와서 의사가 됐으면 이 쪽 정서에서는 가문의 영광아니겠습니까?
◇ 김효영 : 부모님의 기대가 엄청나죠.
◆ 김택중 : 네. 그런 분이 신부가 되시겠다고 하니까, 어머님이 홀어머님이셨거든요. 어머님이 낙담이 크셨는데 설득을 해서 신학대 가셔서 졸업을 했어요. 로마에 있는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부에 유학을 가셨는데 재학중에 일찍이 봉사를 할 곳을 찾아보자,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시게 됐죠. 방학 중에. 한참 내전중이었습니다. 남수단 오지 중에 오지인 톤즈라는 곳을 갔어요. 지도에도 잘 안나옵니다. 톤즈에 가셔서 몇 십년 동안 내전이 일어나고 폭격되고 폐허된 부분을 보니까 정말 참담하셨던거죠.
그래서 당시에 톤즈에 있었던 다른 선교사님이 신학생이던 이태석 신부의 표정을 보고 돌아가면 다시는 안 오겠구나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 이듬해 졸업을 하셨거든요. 신부 서품을 받자마자 바로 남수단 톤즈로 가셔서 내가 몸 담을 곳은 이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7년 동안 의료 봉사, 신부로 활동을 하셨던거죠.
◇ 김효영 : 신앙의 힘이었을까요?
◆ 김택중 : 아마 그런게 클 것 같습니다. 집안 자체가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고요. 형님도 신부셨고, 누님도 수녀원에서 활동을 하셨던 분이고요. 가족들 증언이나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 분께서 어릴 때부터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대로 못 지나쳤다고 합니다. 뭐든지 다 주려고 하셨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유독 남다르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가족내 신앙심과 결부해서 본인의 타고난 배려심이 겹치면서 신부의 길을 가게 되고 톤즈까지 가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김효영 : 아주 먼 옛날 분이 아니십니다. 1962년생이십니다. 지금 우리 나이로 보면 50대 중반을 넘기신 정도예요.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해마다 인제대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기리는 행사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김택중 : 매년 의과대학 개교 기념일 즈음해서 일주일 동안 의학과 1학년, 다른 단과대로 치면 3학년에 해당되겠죠. 의학과 1학년 대상으로 2013년부터 이태석 기념 과정이라는 것을 개설해서 학생들한테 봉사 실습 교육을 시키고 있고요. 학생들이 공부에만 매몰되면 안되니까 이태석 신부님을 일종의 역할 모델로 삼아서 그런 정신과 가치를 배우라는 취지에서 과정을 개설했고, 2010년 이태석 신부님이 선종하신 이듬해부터 2011년부터죠. 매년 이태석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태석 기념 과정과 이태석 기념 심포지엄이 같이 병행이 되는데요. 7년째 접어들다 보니까 한 번 이태석 신부님이 한국이라든가, 주변에 남기신 유산이 있을까,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런 유산을 찾아보자 해서 이태석 신부님 생전에 설립됐던 수단 어린이 장학회라는 후원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하고, 또 선종 이후 2011년에 설립이 됐는데요. 부산사람 이태석 기념 사업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두 단체를 초빙해서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정신과 가치를 어떤 식으로 계승해서 활동하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봤고요.
인제의대 졸업생 중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생전에 학교에 오셔서 특강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특강을 듣고 굉장히 감명을 받은 졸업생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의사가 된 다음에 이태석 신부님처럼, 코이카라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에서 국제협력의사라는 직책으로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1년 정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후배들한테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김효영 :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자는 취지일텐데, 그 분의 정신과 가치는 무엇입니까?
◆ 김택중 : 단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사실 우리 사회가 각박하지 않습니까? 경쟁에 매몰돼 있고, 이런한 경쟁 사회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진행하시면서 본인의 목표를 실현하신 분이거든요. 목표를 향해 가다보면 주변을 돌아볼새가 없고 오직 본인을 위해서만 하는 경향이, 그게 인지상정인 것 같아요.
근데 그런 목표 의식을 실현함과 동시에 또 타인에 대한 배려로 승화하셨거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사랑과 나눔의 정신, 종교적 신앙심과 결부돼서 시너지 효과를 내긴 했지만, 그런 사랑과 나눔의 정신의 실천이 결국은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김효영 : 하지만 모든 의사들에게 아프라카, 남수단같은데 가야된다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 의사들이 평소에 어떤 마음을, 이태석 신부님이 물려 줄 어떤 정신으로 환자들을 대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김택중 : 모든 의사들이 이태석 신부님처럼 될 수 없죠. 실제로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해봐도,학생들이 토론을 합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인데 내가 과연 이런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 지 좀 겁난다고 솔직하게 토론한 학생들도 있고요. 물론 한편으로 이런 분이 되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죠. 본받기는 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수단같은 오지에 가서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살아가야 되기 때문에.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흔히 전문직이라고 합니다. 전문직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단일 민족 국가 단위에서 전문직이라는 직업을 일단 수용을 해서 용인하는 그런 역사적 과정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의사다라는 주장을 해서 의사가 되는게 아니라 사회에서 그런 전문직을 수용을 해준 겁니다. 인정해주고. 그렇게 때문에 독점 면허권을 부여하는 것이거든요. 의사 외에 다른 직종들은 환자를 볼 수 없다, 그런 독점 면허권을 사회에서 부여해 줬기 때문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의사들이 그런 사회가 인정해준 범위 내에서 환자들한테 본인의 의료적인 직책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사회 계약적 측면에서 온당한 처사라고 볼 수 있죠. 그런 계약적인 측면에서 환자들을 계약으로만 보면 상당히 건조해 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쨌든 의사라는 사람들도 전문직이지만 그 사회에 소속된 시민이거든요. 환자도 시민이고. 같은 시민으로서, 시민 사회의 공동 구성원으로서 다른 시민들을 나의 그런 직업적인 영역 내에서 대등한 위치에서, 그러니까 의사가 환자를 예전처럼 수직 관계로 보는게 아니라 시민 대 시민으로서 대등한 관계로 보게 된다면 예전처럼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의사가 나올 수 없고요.
거기에 더해서 이태석 신부님처럼 사랑과 나눔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직업적인 공감을 통해서 동병상련이죠. 나도 아플수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게 된다면 환자의 치유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효영 : 이태석 신부님을 선배로 둔 인제대 의대생들은 상당히 자랑스러워하겠습니다.
◆ 김택중 : 사실 2010년 선종하신 다음에 울지마 톤즈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거든요. 사실 저도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울지마 톤즈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이태석 신부님이 계셨다는 것을 몰랐어요. 저도 극장에 가서 이태석 신부님을 뵙거든요. 사실 창피한 얘기인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제가 교육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을 하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 가치, 영상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 알게 되면, 물론 너무 훌륭해서 겁난다라는 학생도 있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정말 많습니다. 최근에 의사들의 역할 모델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고 있거든요. 한국 내에, 전 세계적으로 훌륭한, 귀감이 되는 의사들을 선정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그런 교육들이 진행되고 있는 추세인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학교에 누구보다 훌륭한 역할 모델이 있다는 게 사실 우리 학생들에게 굉장히 유리하고 좋은 교육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효영 : 인제대 의대생들에게는 이태석 신부님의 DNA가 흐르고 있는 겁니다. 그죠?
◆ 김택중 :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효영 : 누구보다 인간적인 의사, 누구보다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하는 동병상련의 자세를 갖춘 의사들이 인제대 출신 의사라는 인식이 꼭 심어지길 기대해봅니다.
◆ 김택중 : 네 고맙습니다.
◇ 김효영 :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인제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 주임교수를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