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의 첨부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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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축복을.
2014년 1월 9일 목요일 오전 9시 30분. 예정한 대로 시국을 위한 대미사 시작 전 평화 행진을 위해 주바 주교좌 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으로 모든 신자들이 모였다. 사실 흙벽으로 지은 20m정도의 길이의 성당으로 옆 집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성당 건물을 찾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뜨락도 그냥 어느 큰 집의 앞마당 정도인데 이곳에 많은 신자들이 모였고 대주교님께서 전례 시작을 위해 마이크를 잡으셨다. 제일 먼저, 앞에 있는 10세 정도된 남자 어린이를 앞으로 부르셨고 질문을 하셨다. 너 이름이 뭐니? 누구라고 했다. 여기에 왜 왔니? 기도하러 왔다고 했다. 무슨 기도를 하기 위해 왔는데?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사이 사이 대주교님의 목소리가 떨렸고 멈춤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하셨다. 왜 평화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니? 그 꼬마가 대답했다. There are many dead body.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평화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주교님도 우시고 나도 울고 많은 사람이 가슴 아프게 울었다. 그리고 독서와 함께 대주교님의 짧은 메시지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였다. 대주교님은 우리들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너희는 본시 형제 자매가 아니냐? 왜 아우가 죽어서 울부짖게 하느냐? 너무 많은 너희 형제, 자매들이 죽었으니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 물으셨다. 30-40분 정도 평화의 행진이 있었고 주교좌 성당 큰 마당에서 성체 거동이 짧게 있었고 이어서 미사가 시작 되었다. 미리 대주교님께서 선정하신 노래가 훌륭한 성가대의 소리와 율동과 함께 성당 안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노래 제목은 사도신경으로 “ I believe in God “ 이었다.
The soldiers are going to die. We are praising the Lord. 많은 병사들은 죽으러 가고 있고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고 대주교님은 말씀하셨다. 주교님의 의향은 이러했다. 시국이 어렵고 불안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난을 떠나 우리 홀로 남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니 용기를 잃지 말고 떳떳하게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자고 하시는 격려 중에 격려의 의도가 있으신 것이었다. 신자들에게 또 외치셨다. I am a sinner, Fathers & Sisters are also sinners. All of us is sinner. 그래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난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모두 죄인이고 엎드려 용서를 빌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 자매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풀며 살아 왔는가 생각해 보며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서로 서로 사랑하여야만 된다고 하셨다. 한창 싸움중인 보르에서 도망 나온 딩카 신부님도 제대위에 다른 사제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 전날(1/8) 오전에 왕복 4시간 정도 걸리는 모그리 마을에 다녀 왔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격전지이다. 군인캠프가 있기 때문에 위험한 마을이다. 돈보스코 미션 공소가 있는 곳이고 얼마 전에 한국의 은인들의 도움으로(빠야따스 그룹) 우물 하나를 파 준 마을이다. 대주교님께서 그 전 주 주일 미사도 가지 못하게 하셨던 그런 곳인데, 상황이 조금 뜸하니까 데빗신부님이 가자고 하셨다. 자동차 뒤에 양식을 싣고 울퉁 불퉁한 길을 끝없이 달렸다. 몇 번의 군인 검열을 거쳐서 마을에 도착하였지만 매 주 미사 하던 큰 나무 아래는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조금 마을 안쪽으로 들어 가 자동차를 세우니까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 들었다. 조금 큰 자녀들은 친척이 있는 주바로 보냈고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일강 섬으로 갔고( 나일강도 섬이 있는가 보다), 거의 아부바(노인) 들만 모여 들었다. 이들도 음식걸이를 받으면 그것을 이고 섬으로 들어 간다고 하였다. 그 북적 대던 마을이 정말 고요 했고 군인들만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진짜 군영은 저쪽 뒤 어디라고 하였다. 일을 다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두 젊은 엄마들이 주바에 간다고 하여 태우고 오는데 얼마나 시끄럽게 자기 부족 말로 떠드는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 동안 일어 났던 이야기들, 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하며 자기들도 며칠 먹을 양식을 사면 forests(밀림)속으로 들어 갈 거라며 여기는 시끄러워서 밤에 잠을 못 자겠다고 하며 꼭 남의 예기 하듯이 말하였다. 오는 도중에 많은 곳이 불 태운 흔적이 있었고,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있었고, 한쪽에서는 시신이 부패하는 강한 냄새가 진동 하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세우고 엎어져 죽어 있는 병사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두 팔이 머리위로 향하면서 윗옷을 벗으려는 모습이었다. 팔은 뼈만 앙상한 듯 했고 머리는 거의 그대로이지만 단단한 둥근 뼈 모양이었다. 다른 병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죽어 있었다. 그 날밤 잠을 잘 수 없었고, 죽은 영혼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 바쳤다.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마술을 지닌 듯, 이젠 하늘과 땅을 잇는 영혼들의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어 무섭지 않다. 땅 속에서 울부 짓는 아벨의 울음 소리를 듣고 계시는 주님은 살아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워, 많은 죽은 우리의 아우, 아벨의 영혼을 위로하게 하신다. 카인처럼 발뺌 하지 않고,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아무 죄 없으시면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하는 성가대의 힘차고 희망적인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평화의 기도를 하러 왔다는 꼬마처럼 우리도 끊임 없는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이 어려운 시국을 우리 모두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그리 마을 다녀 오던 날 오후, 곰보니 수도회 관구장 신부님의 인솔하에 조금 더 떨어진 제블 UN캠프 또 다른 난민촌을 방문하였다. 8,000명 정도 들어 왔다고 하였는데 즉시 어느 그룹과 회의를 가졌다. 말이 회의지 회의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되는지 염탐하러 온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 캠프와 가까운 마을에 살면서 성당에서 성가대 단원이었던 신자들이었고 지금도 너무 인상적이다. 바깥과 너무 가까워 지금도 딩카족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 전날 밤도 두 명이 자기 마을에서 죽었다고 하였다. 자기 집이 저어기라고 하면서 가르켰다. 리더급이 나이 있어 보이는 형제가 일일이 자기들을 소개 하였고 자동차 3대에 나눠 타고 온 조금 수가 많은 우리들도 하나 하나 소개 되어졌다. 그들은 여러 국적을 가진 우리들이 방문 와 준 것 만해도 고마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리더급은 이곳 주바 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년을 남기고 있었고 다른 어른처럼 보이던 리더는 고등학생이었고 줄줄이 있던 키 큰 아이들은 놀랍게도 초중생들이었다. 갈 여건이 된다면 Mother land(고향)에 가겠냐고 물으니 이 어린 친구들이 “YES’라고 크게 대답했다. 그러나 큰 친구들은 주바는 딩카 땅도 아니고 누에르 땅도 아닌 남수단인 땅이니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하였다. 이 건장한 남자들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내가 더 답답함을 느꼈다. 이들은 묵주와 성경책을 원했다. 밥은 어떻게 먹고 있느냐고 정말 묻기 어려운 질문을 누군가가 하였다. 왜냐면 옥스팜 캠프는 가족들이 각자 끓여 먹고 있는데 이곳은 아주 질서가 있어 보여서였다. UN에서 주는 준비 된 배급을 조금씩 먹고 있었다. 무엇을 먹느냐는 것은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다. 조금 익숙해 지면 그래서 내가 엄마처럼 보여 지면 다 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그만 가게를 하는 사람에게 우리 마리아 보스코 수녀님이 물어 봤다 어떻게 이런 물건을 사서 들여 올 수 있었는지를. 그가 말하길 자기 딩카 친구에게 돈을 줘서 그 친구가 사다 줬다고 하면서 자기는 좋은 친구를 두고 있다고 하였다. 식용유 한통, 세제 한 봉지 등등이다. 이것을 조그만 비닐에 3cm정도의 부피로 담아 아마 1파운드에 파는 것 같았다. 나도 밖에 보다 조금 비싸지만 전화카드를 사 주었다. 사람들은 정말 선량하다. 벌레 하나 죽일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들인데 누가 있어 이들에게 이런 큰 고통을 주고 있는가, 누가 이들의 아픈 삶을 보상해 줄 수 있는가. 누가 이들의 부서질 것 같은 가슴을 보듬아 줄 수 있단 말인가. 언어도 부족하고 능력도, 가진 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 맞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지. 오늘은 세례축일 주일이었다. 오늘은 옥스팜 캠프(제일 먼저 갔던곳) 3곳에서 미사가 있었다. 지난번 갔던 큰 모임 장소는 수단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시고 지금은 은퇴해 계시는 타반 주교님과 카푸친 수도회 신부님이 담당, 아이달린 여성들이 있는데는 MMI 수도회 신부님, 병원쪽은 살레시오회 제콥신부님 담당이셨다. 나와 DMI 수녀님 두분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고 안내자도 없는 터라 그냥 알아서 해야 되는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여기 저기 병동을 다니면서 아라빅 언어가 유창하신 신부님이 큰 목소리로 미사가 저쪽에서 있습니다. 저쪽입니다, 하면서 외쳤지만 돌아 오는 목소리는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가느냐 하는 반응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환자가 자기 뿐 만 아니라 열 명 정도 Mother land로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저쪽 그늘 있는 마당에 미사를 차렸지만 결국 환자 수가 가장 많고 넓은 방으로 담당자에게 허락을 받고 50명 남짓 누워도 있고 앉아도 있는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무종교이든 상관 없이 총상으로 다친 환자들 앞에서 미사를 시작하였다. 침대는 없고 모두 매트나 돗자리에 누워 있었고 한국말로 하면 군인 모포를 하나씩 차지 하고는 있었지만 구질구질 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나는 엉거주춤 서서 미사시작을 맞이 하였다. 옆에 있는 환자가 자꾸 자기 자리 옆에 앉으라고 하여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더니 혼자 서 있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앞에 다리 다쳐 있는 환자가 힘든지 그냥 모포를 뒤집어 쓰고 내 앞에서 누워 버렸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이런 처지에서도 미사 응답을 하고 대영광송을 따라 부르느라 모포가 들썪였다. 너무 대견하여 뭐든지 다해 주고 싶었다. 너무 아픈 상처로 고통스런 상태였지만, 그래도 주님이 오시는 이 미사 성제는 많은 고통 받는 이들의 위로가 됨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을 달라고 하여 일어나서 가져다 주었다. 그래도 죽은 병사들 보다는 훨씬 행복한 줄 알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줬다. 캄보디아 유엔 군인들의 병원으로 대부분 그들의 간호사와 의사들이었다. 손이 미치지 못하니까 각자 알아서 자기 신변은 처리해야 되는데 돌봐 주는 사람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개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너무 불편하여 자기 슬리퍼를 베게 해 줬다. 주위에 파리가 얼마나 판을 치는가 소변을 모아 놓은 큰 우유 깡통이 넘치고 있어 파리가 꼬이고 더러는 빠져 죽어 있었다. 들어 올 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보고 왔기 때문에 미사 끝나면 저 깡통부터 비워 줘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미사도중 주사 맞는 시간이 된 듯 여기 저기서 소리 지르면서 시끌 법적 거렸지만, 어느덧 평화인사 나눔 시간이 되었고 돌아 다니면서 정말 평화를 비는 악수를 나누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면서.. 그렇게 미사가 끝났고, 주교님 집전 하시는 본 장소가 아직 안 끝나 우리 모두 그쪽으로 갔다. 지난 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사 드리고 있었다. 미국나라 남수단 대사도 미사 봉헌하는 철저한 가톨릭 신자 여성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 주교님께 인사 드리고, 아픈 환자가 있다고 하여 신부님과 함께 사람들 사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 가봤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왔음을 느끼면서, 마치 사진으로 본 여름철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밭에 텐트 쳐 놓은 것처럼 그렇게 빼곡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살아 가겠지. 이들의 보통 있어 온 보통의 삶이니까. 그래도 이 유엔 캠프 안이 지금 이 순간 목숨을 지탱해 줄 유일한 피난처라 생각하기에 밤이면 이곳 저곳 캠프에 있는 숫자의 배수가 들어와 잠자고 나간다고 하였다. 나도 UN에 이렇게 감사해 본적이 없었다.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유엔임을 체험하고 있다. 나는 간호사도 아니고 주사 맞는 것을 쳐다 보는 것도 겁나 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의 보호자는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해 주고, 시중 들어 주고, 예기 들어 주고 그러면서 예수님이 절름발이에게, 소경에게, 해 주셨던 연민 가득찬 마음을, 어느날 갑자기 총상을 입고 스러져 있는 이 젊은이들에게 전달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곳에서 이 어지러운 땅을 지키고 있는 모든 선교사들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의 고국에서 정말 많이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와 함께. / 고맙습니다.
남수단 선교사 류 치프리아나수녀 씀 (2014.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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