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여러분 .
메르스 전염병 때문에 긴장해야 하는 한 주간 속에서도 무사한 일 주간이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저는 약간의 건강검사를 위해 톤지에서 이곳 주바에 와 있습니다 .
톤지에는 엑스레이 찍는 기계도 피검사를 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지 못해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주바로 오거나 멀리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야 하는 이곳 실정에 따라 저도 별수 없이 이곳에서 거의 소 한 마리 값인 950파운드를 주고 비행기 표를 사야 했습니다 .
지금 남수단의 화폐가치가 너무나 널뛰기를 해서 암시장에서는 1달러에 12파운드까지 받을 수 있고 정부 공식 은행에서 5파운 정도 밖에 못 받는다고 하니 저는 암시장 가격으로는 아마도 7-8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샀고 정부 공식가격으로는 약 18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샀는가 봅니다 .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돈 – 소 한 마리 가격이 1000파운드 정도에서 시작한다 하니 거의 소 한 마리를 공중에 날리면서 톤지에서 주바로 오게 되었습니다 .
사실 그 비행기 표를 사놓고도 비행기가 비가 많이 오는 날씨 때문이거나 , 조종사가 아파서 또는 전투지역에 징발되어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일주일 이상을 기다리다 겨우겨우 타게 된 비행기가 12인승 프로펠러 비행기였습니다 .
비행기는 톤지 공항으로 도착한다고 해서 비행기 오기 전에 한 시간 반 전에 나가보니 , 세계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공항인 톤지 공항에 비행기 탈 사람들이 큰 나무 밑에 가방을 일렬로 세워놓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12 명타는 비행기가 오는데 왠 사람이 그렇게 많이 기다리고 이 나왔나 .. 했더니 비행기표를 사고 대기 번호를 받은 사람들이 혹시나 탈 수 있을까해서 온 사람도 있었고 , 또 비행기 탈 사람들의 가족들도 오고 , 비행기 타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곳 공항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비행기가 온다는 소식에 구경을 하러 나무 밑에 웅성웅성 모여있었습니다 .
저는 탑승 번호 3번이었기에 3번째로 탑승할 수 있었는데
조종사 두 명을 포함해서 14명 큰 비행기가 아닌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니 속으로 이 비행기가 이렇게 무겁게 사람과 짐을 싣고 제대로 날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
오른 쪽을 쳐다 보아도 왼쪽을 쳐다 보아도 창밖에 날개가 3-4미터 정도 밖에 안되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바로 내 의자 밑에 비행기 바퀴가 달려 있어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일어설수도 앉을 수도 무서우면 그냥 눈감고 있는 것이 최선인 비행기였습니다 . 게다가 좀 센바람이 불면 비행기 자체가 바람에 떠밀려가는 기분이 느껴지더군요 . 정말 촌놈이 작은 비행기 타면서 무서움에 쫄면서 탔습니다 .
조종사가 이륙하기 전에 혹시 토할 것 같으면 앞 의자 뒤의 그물망에 있는 봉투를 사용하라고 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
미국의 한인 공동체에서 보좌 신부로 일할 때 본당 신자가 경비행기를 한대 가지고 있어서 가끔 카우델 공항에 가서 경비행기를 타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연습을 안 했으면 고소공포증에 쫄아서 다른 병으로보다 공포증으로 먼저 갈 뻔했습니다 .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옆 사람과 대화는 전혀 나누지 못하고 … 그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피곤했는지 한 참을 잤습니다 . 한 참을 자고 일어나보니 조종사도 자고 부조종사도 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하기야 공중에서는 지상에서 차 운전하다가 자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
예전에 저하고 어떤 신부님하고 고속도로를 가다가 제가 조수석에 타있는데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나 운전하시는 신부님과 나 밖에 없는데 ? 내가 코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는 졸지 않고 잇다는 얘기이고 누가 조는 사람이 있나 ? 하고 살펴보았더니 글쎄 운전하시는 신부님이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으악 ! 저승사자님께 운전을 맡겼구나 하면서 운전석에 앉은 그 신부님을 깨워 정신차리게 해드린 일이 있는데 그 상황보다는 나았습니다 .
어찌 되었든 톤지의 그 가난한 사람들의 부러운 (?) 눈빛을 받으면서 이륙한 비행기는 조종사가 중간에서 좀 자고 졸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남수단의 정글이랄까 숲 위를 하느님이 하늘에서 보고 보시니 좋더라 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 정말 우리나라도 아름다웠지만 우기의 비를 맞아 처음부터 끝까지 푸르르고 푸른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는 남수단의 숲이 모습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
혹시나 숲 속에 코끼리나 사자 기린 같은 것이 보이면 줌을 이용해서라도 몇 장 찍어볼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남수단에 코끼리 사자 기린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다만 저 아름다운 숲 속에서 왜 사람들만이 피를 흘리며 부족끼리 싸우고 죽이고 할까 하면서 이 나라의 부족간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정착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잠깐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
한 시간 반 동안 하늘에서 하느님과 좀 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행하다 주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승객들을 활주로 한 가운데 내려놓고 비행기는 비행기를 묶어놓은 자리에 묶어놓고는 승객들을 실러 오는 셔틀 버스인지 셔틀 택시인지는 또 오지를 안았습니다 .
반시간 이상을 땡볕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승합차 한대가 오더니 개인 짐들을 뒷칸에 실어주고 환자와 여자승객 4사람과 저는 신부라고 “아부나 앞자리에 오세요 !” 라는 대접을 받으면서 공항 활주로를 빠져 나오는데 나머지 7명의 남자들은 어떻게 나오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의 지시를 받아 걸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
여러가지 새로운 (?) 것들을 배우면서 공항 청사에 도착해 보니 공수사님과 토마스가 나와 있어서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는 기분으로 얼싸안고 상봉의 기쁨을 나누었고 ..
톤지 집에서 11시에 나와 12시 반에 이륙하고 주바에 두시 도착 … 집에 오니 세시가 되어 그 동안 배고픔에 허덕인 위장에 평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
식사를 다하고 지난번 토마스가 사는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그 실제 건물들과 장소들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서 그 정도만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
다음날 아침 이곳 본당 신부님과 공수사님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엑스레이 촬영기가 고장 나거나 없는 병원이 많아서 피검사 따로 엑스레이 따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4시간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
평소 건강상태 중에 안 좋던 부분과 한국에서 두세달에 한번 건강검진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이곳 의사에게 그에 대한 여러 증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
이곳에 와서 한가지 좋은 점은 한국에서보다 간 기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기름진 음식도 섭취하지 않고 고기구경하기도 힘들어서 인 것 같습니다 . 한국에 안원장님은 하느님이 공평하셔서 한편에 약한 것도 주시지만 좋은 것도 주셨다고 마지막 평가를 내리시네요 .
그리고 이곳 의사가 제가 예전에 능막염을 앓은 병력과 폐의 염즘에 대한 진찰을 하고는 결핵검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해서 월요일 검사를 위해 주바에 남았습니다 .
제가 주바 이곳 굼보 공동체에 있게 되니 옆집의 까리타스 수녀님들이 공수사님과 우리 한국 누렁이들만 모여서 치프리아나 수녀님의 어머님을 위해 함께 미사하자고 하여 그리고 수녀님들이 근사한 우리 한식 식사를 마련하시겠다고 해서 6.25 날 저녁에 함께 모여 저도 오랜만에 우리말로 미사를 – 남북 통일을 위한 기원미사 – 거행 하였습니다 .
거의 세달 만에 되지도 않는 영어미사만 하다가 우리말 미사를 하니 감개무량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
사진에 나온 모습들이 우리말 미사를 하는 모습인데 미사 드리는 경당도 울긋불긋한 장식이 아니라 소박하고 단순한 장식의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가 깨끗한 한국식 제대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니 마치 고향에 온 듯 했습니다 .
이곳 주바에 와보니 주바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
물론 시내는 시끄럽고 쓰레기가 온통 휘날리고 찌든 가난의 모습이 어느 곳에서는 엿보이지만 정말 변두리에서 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톤지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
해질 무렵에 이곳 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이 와서 운동장에서 소리지르면서 공을 차고 저녁시간에 자기 가족을 위해 물을 긷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녁노을에 어울어지는 .. 그리고 운동이 끝나면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또 성체 조배를 하는 모습이 톤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공수사님은 아랍어로 학교 옆길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어른들과 학부형들과 선생님들과 뭔가를 얘기하시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시고 .. 아이들은 공수사님과 악수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입니다 .
물론 새로운 가와자 (이곳 사람들은 백인들을 가와자라고 하는데 )여서 그런지 관심을 가지고 제 옆에 와서 이것저것 묻고 신기하게 쳐다 봅니다 .
아 . 이곳의 굼보 공동체에 와보니 바로 이 집도 한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기증했다고 건물 중앙에 표가 붙어 있더군요 .
이곳 저곳에서 이태석 신부의 숨결과 한국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보내준 열매들이 엿보입니다 .
묵주기도를 하는데 바로 제 앞에 앉은 아이의 양쪽 슬리퍼 뒷꿈치 부분이 모두 다 구멍난 것을 보고는 지금도 아예 신발이 없거나 슬리퍼를 신어도 끈은 아직 쓸만하기에 끈이 아까워 구멍 난 밑창을 버리지 못하고 신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날이 올까를 생각하면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런 날이 확실히 꼭 올 것이라 믿습니다 .
80 년대 한국의 어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외국인이 호텔에 날아온 파리를 보고 한국이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너도 여기 날아오지 못할 날이 멀지 않았구나 했다는데 …
이곳에서 구멍 떨어진 신발을 신거나 아예 신발을 신지 못하는 아이들이 온전한 신발을 신고 교실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놓을 날을 상상해 보면서 그럴 날이 꼭 올 것을 확신해 봅니다 .
오늘은 긴 시간 동안 떠들었습니다 .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 긴장이 풀려 말이 많아졌나 봅니다 .
그럼 다음에 또 인사 드리기로 하고 ….
수단어린이장학회 회원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2015/06/22~30 남수단에 톤즈에 계신 이해동신부님과의 메신저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