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심레뎀타수녀님과의 만남>
오늘(2017년 6월 5일) 휴가기간 중 한국에 방문하신 남수단 굼보 까리따스수녀회의 송원심레뎀타수녀님과 함께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송레나타수녀님은 2012년 8월에 아프리카로 떠나 남수단에서 지내신지 만 6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굼보에 있는 헬스센터와 유치원에서는 한국인수녀님 세분과 일본인수녀님 한분 우간다수녀님 세분까지 총 일곱 분의 수녀님들이 아픈 환자와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40도 50도가 넘는 더위에 전기도 부족한곳에서 수녀복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지내지만, 아침에 일어나 지하수 물을 퍼서 손빨래를 하면 한시간 안에 빨래가 다 마르기에 괜찮다며 아프리카의 생활도 살만하다고 웃어 보이십니다.
남수단 굼보에서의 생활 초기에는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서 같이 안 먹고 식사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골다공증이 생기고 몸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기운이 없으니 잠도 못자고, 낮에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약을 받아가도 6개월치 이상은 가져갈 수 없으니 남수단 생활중에 약이 떨어지면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말라리아에도 수 없이 걸리고 죽을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요.
그때 아프리카에 계시는 수원교구의 한 신부님이 ‘내가 건강하게 버텨야 이 사람들과 함께 오래 같이 갈 수 있다.’ 라고 말해주고 가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싶었어요. 내가 아프면 이곳의 사람들에게 짐만 될 뿐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식사도 챙기고 건강에도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우리 수도사들의 생활은 현지인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요.
굼보 헬스센터 사진
굼보의 헬스센터에는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평균 50명에서 60명 가량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위해 찾아옵니다. 환자의 수가 많을 때는 120명 정도가 오는 날도 있습니다.
이 환자들은 피부병과 말라리아, 심한 장티푸스에 걸려 오는 환자들입니다.
말라리아는 예방약을 먹어도 걸리기가 쉽고 감기증상과 비슷하게 고열과 두통, 구토증상을 동반하는데. 아프리카 다른 나라보다 남수단의 말라리아모기는 유독 독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렇지만 말라리아는 발병초기에 약만 잘 먹어주어도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랍니다. 아마 한국처럼 의료시설이 잘되어있고 언제든 쉽게 진료를 받고 약을 구할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져 있다면 말라리아가 죽음에 이르르는 무서운 병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남수단은 말라리아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이기에, 이곳 사람들에겐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빨리 치료약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굼보 헬스센터에서는 예방약과 주사약, 먹는 치료약들을 항상 구비하고 5세 이하의 어린이환자에게는 한국 돈 200원에서 300원정도의 최소비용만 받고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약품을 지원해주던 곳에서 올해 6월 까지만 의약품지원을 하고 중단하기 결정 된 것 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후원처를 찾아야 하고 지속적인 도움도 필요합니다. 저희는 1년에 약품 값으로 평균 3만 달러가량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밖에도 남수단에서 원주민과 우리 공동체가 겪는 큰 어려움중 하나는 바로 치안문제입니다. 내전이 심각한 수준으로 번진 남수단에서는 이미 반군들이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를 향해서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습니다. 남수단 중에서도 주바와 떨어진 모로보와 케레피 지역은 이미 반군들이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그곳에 원주민들은 우간다와 케냐, 콩고 등으로 모두 피난을 갔고, 우간다 정부는 이미 난민들로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은 남수단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갈곳 없는 난민들의 고통이 심해지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굶어죽고있습니다.
남수단 원주민들을 지키던 군인들은 몇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자 되려 가지고 있는 총으로 원주민을 위협해서 강도와 도둑질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수단 정부에서도 끝없는 내전에 속수무책인 상황입니다.
지금 남수단에 들어와서 봉사하고 있는 NGO단체와 다른 종교단체도 위험에 노출되어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여성봉사자들은 성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에 많은 봉사자들의 방문도 자제시키는 분위기이고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러한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현지의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 까리따스수녀회와 살레시오회공동체가 있는 곳에서도 강도와 도둑으로 싹쓸이 당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헬스센터의 엠블런스의 차유리를 깨고 안에 있는 것들을 훔쳐가고요. 차 바퀴까지 빼갑니다. 어느 날은 핸들 밑을 뜯어 키가 없이도 시동을 걸 수 있게 하려다 날이 밝아 어쩔수없이 도망가는 도둑도 있었고, 살레시오 직업기술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비치해두었던 컴퓨터를 단체로 총을 들고 찾아온 강도무리에게 모조리 도둑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수녀님과 신부님들도 총을 든 강도와 맞서다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그들에게 해를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남수단의 상황이 악화된 이유는 결국 수단의 주요 천연자원으로 꼽히는 ‘원유’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사실 자원으로 치면 수단은 가난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정부에서 원유채취를 끊어버리자 반군은 돈이 되는 원유를 소유하기위해 전쟁을 벌였고 이에 강대국은 내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군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이들이 전쟁으로 싸우는 데에 돈을 쓰게 합니다. 그리고 원유를 싸게 공급받아갑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전쟁종식을 외치셨던 것이지요. 결국 이런 자원과 돈을 둘러싼 전쟁의 희생자는 죄없는 원주민들과 힘없는 여성,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달러 값과 남수단파운드 값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은행에서는 300달러이상은 내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돈의 흐름이 끊기고 경제활동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일자리도 없지만 일을 해도 월급을 받기 힘들게 되니 일찍이 총을 들고 군인이 되는 남자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초경이 시작되면 돈에 팔려 결혼을 하고 이마저도 가족을 위한 희생이 숙명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팔리듯 결혼한 소녀들은 정당한 부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온 노예취급을 받고 어린몸으로 출산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죽은 소녀의 집에서는 딸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남자 집에 딸의 결혼 댓가로 받았던 돈을 돌려줘야하는 문화가 있어 더욱 참담한 상황입니다. 한창 예쁘게 부모의 사랑 속에 재롱을 떨 나이의 소녀들이 애기를 안고 병원으로 오는 모습도 아주 흔히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애가 애를 안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이러한 현실에 슬픔이 밀려옵니다.
이런 문화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육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충족되는 것보다 교육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