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수단어린이장학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4년을 지내고 작년 10월에 프놈펜 북서쪽에 있는 바탐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지원해주는 장학금은 이전 소임지인, 소녀들을 위한 직업센터(Computer-Secretarial course)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서, 이번 바탐방 소식은 장학생들의 이야기 대신 캄보디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주산업이 농업인 바탐방은 넓게 펼쳐진 논밭과 푸른 자연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저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듬뿍 느끼게 하는 선물 같은 곳입니다. 건기(乾期)엔 금세 타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에 웬만해선 바깥출입을 삼가야 하지만, 올해는 우기(雨期)가 빨리 온 덕에 마을로 가는 길이 늘 즐겁습니다.
제가 사는 바탐방 공동체에는 재봉을 가르치는 작은 직업센터가 있습니다. 올해는 시골에서 온 8명의 소녀가 기숙 생활을 하며 기본교과(literacy)와 재봉기술을 함께 배웁니다. 기숙 생활을 하는 66명의 여중고생들은 주중에 남자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돈 보스코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기숙생들이 학교에 가는 동안에는 80여 명의 유치원생이 빈 공간을 매일 채워줍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온종일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하지요. 저는 기숙생들을 돌보며 마을 세 곳에 있는 본당 유치원들(차로 30분~1시간 거리)을 도와주고 주일엔 마을 오라토리오(청소년들과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뛰어노는 공간)를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마을 곳곳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유치원을 방문하거나 오라토리오를 갈 때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미소라는 단 하나의 무기로 제 마음을 쏙 뺏어가는 이 아이들은 태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에서 사는 탓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아요. 농사로 생계를 잇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다른 일거리가 특별히 없기에 많은 부모가 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수도인 프놈펜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함께 살지만, 이곳 바탐방은 가족이 물리적으로 해체된 경우가 많습니다. 할머니, 이모와 사는 유치원생 한 아이는 한 살 때 태국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 부모님을 네 살이 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 5월 성모성월에는 밤인사 시간에 매일 두 명의 기숙생이 성모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는 기회를 얻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의 빈자리를 성모님께 의탁하며 보호를 받는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몇몇은 부모님과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오랫동안 기도해서 지난 캄보디아 새해에 3년 만에 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상에 작은 꽃을 봉헌했습니다.
마을을 돌아보면 이곳 아이들의 생활은 정말 단순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장난감을 갖고 시간을 보낼 상황은 아니지요. 그래서 매주 일요일 오후에 우리 집과 성당 두 곳 마당에서 오라토리오가 문을 엽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말씀한 ‘Run, jump, shout, but do not sin.’은 이곳 오라토리오의 모토입니다. 오후 1시 30분쯤 되면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축구, 줄넘기, 배드민턴 등을 하며 신나게 뛰어놉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가톨릭 정신에 대해 훈화를 듣습니다. 영상을 틀거나 리더 아이들이 주제에 맞는 연극을 준비하면 모든 아이가 금세 집중합니다. 그 후 미술, 노래, 율동, 연극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집니다.
주일 오전 미사를 봉헌하고 점심 직후 오라토리오를 위해 대문을 나설 때면 뜨거운 햇볕에 잠시 주춤합니다. ‘이렇게 더운데 아이들이 많이 올까?’‘그늘을 찾아야 하겠는데…’등 걱정이 앞서지만, 리더 친구들과 함께 오라토리오가 열리는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먼저 와 기다리던 동네 아이들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활동시간 내내, 있는 힘껏 뛰고 달리고 환호하며 땀에 젖은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제게 전달해주는지. 그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되뇝니다. ‘살레시오 수녀로서 얼마나 행복한가!’
오라토리오 활동의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오라토리오 리더 친구들입니다. 저와 함께 사는 10 · 11학년(우리나라의 고1, 2학년) 기숙생들과 본당의 청소년들 30여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지요. 살레시오 청소년운동(SYM)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살레시오 리더로 교육받으며 오라토리오 아이들 안에 현존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리더 모임을 합니다. 이 친구들이 오라토리오에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가끔 문제가 생겨도 인내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상황을 저에게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저에게‘선물’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저희를 이곳에 오게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있는‘선함과 순수함’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큰 선물이지요.
주어진 환경에서 마음껏 기뻐할 줄 아는 아이들, 그래서‘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분은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라는 성 요한 보스코의 말씀을 충만히 살 수 있음을 절감하며 오늘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Run, jump, shout, but do not sin.’
홍미나 따시아나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