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심는 사람들 ”
한 해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 일상이 늘 같고 잎이 지고 겨울이 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 올 한해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초등학생 장학금 지원을 해 주신 덕분에 한해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다 .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모님 앞에서 폼 잡은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 남수단 톤즈에 계시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죨리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한국의 신자들이 조금씩 모은 헌금을 보내와서 이렇게 우리가 교육 혜택을 받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취지를 설명하며 시작된 일이 난민촌 어린이장학사업이 되었다 .
수천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 중 200 여 명을 선별하기가 어려워 각 공소의 제대 복사들과 전례 무용단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뽑게 되었다 . 그야말로 아수라장 속에서 성적표에 명시된 성적을 고쳐서 내거나 , 평소엔 미사에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나도 그 팀이라고 하며 막무가내로 떼쓰듯 죽치고 있는 아이들 , 부모들끼리 서로 삿대질하며 가방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실랑이하는 우리 난민촌 엄마들 . 이분들 덕에 남수단이 , 그 오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애교스러웠다 .
우리는 봉사자들과 함께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시장에 가서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흥정을 하던 시간들 , 크기별로 신겨보고 줘야 하는 신발을 수천 명의 눈이 무서워 절대 나눠 줄 수 없어 납치하듯 우리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나눠 주던 일 . 너무 남루해 보이던 아이들이 교복을 입혀 놓으니 세련미가 넘쳐 나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던 일들 . 수업료 내기 위해 사무실에 가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 한국에 계시는 고마운 분들의 몫을 대신 받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
마지 2 캠프 스쿨에 쥴리라는 4 학년 여자 어린이가 있다 .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한쪽 발 소아마비로 지팡이를 짚고 살아오고 있다 . 이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별로 말도 없고 뒤처지는 아이로 보여졌었다 . 그런데 학용품 등을 내주게 되면서 유심히 보니 내면에는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멀리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갈 기회가 되었을 때 목발을 사다가 주었다 . 지팡이 하나로 온몸을 흔들며 걸어야 했던 쥴리는 이제 양쪽 목발에 의지하여 품위 있게 걷게 되니 본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부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
새로 생긴 사립학교에 학급 학생 숫자가 적어 그쪽으로 우리 아이들이 많이 입학하게 되었다 . 그러나 교육비는 훨씬 비싼데도 책걸상도 교실도 없어 두 번째 갔을 때는 대판 싸우고 왔다 . 학비 낸 거로 의자라도 사 줘야지 어떻게 휑한 공터에서 돌멩이에 앉아 공부시킬 수 있는지 하고 … 다음에 가보니 플라스틱 의자에 우리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다 .
빠게리냐 캠프에 있는 탄달라 초등학교를 많이 밀어줬다 . 이 학교는 유일하게 NGO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 내에서 자생한 학교이다 . 처음 피난 왔을 때 피난 온 교사들이 모여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고 학부모 모임이 결성되어 학비를 조금씩 받아 분필이며 , 시험지 등을 사고 조그만 칠판을 사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야외에서 아이들 수업을 진행했다 . 그러다가 비가 올 것 같으면 집으로 다 돌려보내곤 하였다 . 교사들에게는 옷이라도 빨아 입으라는 명목으로 비누 몇 장씩을 가르친 수고비로 드렸다 . 선생님들이 아이들 미래를 위하는 사명감 하나로 1 년을 버텨 왔고 , 우리는 이 학교를 돕기로 했다 . 아홉 칸 임시 교실을 지어주고 25 명의 교사에게 월급을 조금씩 지급해 주고 고학년 아이들을 과외 수업시키게 하여 수고비를 또 지급해 드리니 , 우리 아이들의 영어 , 수학 실력도 많이 향상됨을 볼 수 있었다 . 이 학교에 우리 남수단 어린이 장학생들을 대거 뽑아서 보내 , 학교 운영에 보탬이 되게 하였고 이제는 번듯한 학교가 되어 얼마 전에는 축구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왔다고 학교 잔치를 하니 꼭 오라는 연락이 왔다 .
이렇게 1 년이 흘러가고 ,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 어린이들을 데리고 내년엔 남수단 국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너무나 척박한 이곳에서 이런 꿈을 꾸기엔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서럽고 , 아픔이 밀려오고 또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기에 포기하고픈 생각이 없지 않아 있지만 , 인생은 도전이라고 했던가 ,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우리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보다 나은 환경을 우리 어린 꼬마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 주님 , 우리 하는 일에 힘을 주시고 우리 발걸음을 지켜 주소서 . 아멘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