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
안녕하세요 ? 필리핀 빠야따스에서 인사드립니다 . 제가 필리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3 년 2 월입니다 . 공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여유로운 움직임과 친절함이었습니다 .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살 집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동네 사이에 건축한 것을 계기로 나라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처음에는 길이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집을 지으면서 “Subdivision” 을 통과하면 통행세를 내야 했고 , 연고가 없으면 부잣집 동네는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 또한 “Subdivision” 안에 잠시 머물며 살면서도 차로 짐을 나르려면 통행세를 내야 했습니다 . 또 하나는 치안이 약한 필리핀은 개인 집이나 회사에 경비를 두고 총을 갖게 하여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
선교목적으로 우리는 빠야따스 쓰레기 동네와 우리 집 옆 동네인 삥끼안을 중심으로 ,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도시 빈민가를 방문하여 가족을 만나고 , 머리를 깎아주고 , 상처를 치료해주고 , 필리핀 자매와 함께 아이들에게 교리와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도왔습니다 .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을 선정하여 장학금도 지원했습니다 . 선교의 모든 불편은 우리의 사명과 기쁨의 자극이 되어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5 년을 이곳에서 지내다가 저는 직무 이동으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10 년만인 2018 년 4 월 , 다시 제가 처음 필리핀에 와서 살던 이곳 빠야따스로 돌아왔습니다 . 10 년 만에 와보니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
여유 있던 자연의 공간들이 집과 상가로 꽉 들어찼고 , 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지금은 어디서든 많아서 무슬림 동네처럼 보입니다 . 무슬림들 중에서는 공공 사무실에서도 높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 또 이글레시아라는 교회는 천주교에서 나간 교회인데 100 미터 거리마다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여 도시와 시골에서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우리 동네에 이 교회의 본부가 있는데 넓은 공간에 학교 , 교회 , 병원 , 은행 등 크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고 하지만 , 일 년에 한두 번 성당에 오는 신자들이 많고 또 신자들 교육이 약해서 믿음과 봉사 활동이 적은 편입니다 .
도시에는 교통난이 심해 일요일을 빼고는 늘 교통체증이 심합니다 . 그래서 늘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데 현지인들은 이에 적응도 잘 되어 있습니다 . 그럼에도 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가족 간의 유대가 깊고 , 가족이 우선시 되고 있으며 ,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많아 어디서나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또한 , 이어지는 많은 축제와 잔치에 참여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흥겹게 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들이 미래의 일꾼이니 그래도 필리핀은 미래의 희망이 있는 나라로 보입니다 .
우리가 일하고 있는 빠야따스 현장도 많이 변했습니다 . 예전에는 높은 쓰레기 산 위에 어른 , 아이들 할 것 없이 함께 일했는데 , 지금은 그것이 금지되어 허락받은 어른들만 일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분리된 쓰레기를 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동안 먼저 구분하여 오는 길에 고물상에 내려놓아 수입을 얻고 , 나머지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려지므로 현지 사람들의 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 생활이 점점 힘들어져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 그러한 사정으로 우리 까리따스 수녀들은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일주일에 한 번 , 5 백 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면서 교리 , 머리 깎아주기 , 목욕시키기 , 상처 치료 , 장학금 지급 등 그들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그와 더불어 가정을 방문하여 영양 부족으로 체중이 미달인 3~4 세 아이들을 매년 35 명씩 선정하여 매일 식사제공 , 초기교육 , 건강증진 후 초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시작한 지도 8 년째입니다 .
처음에는 마르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센터에 왔지만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고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들로 변했습니다 . 또 장학금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들은 희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으며 , 시간이 가능할 때 우리 복지센터에서 와서 함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 , 자존감 ,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 선교사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의 가정과 사회에는 문제가 늘 따릅니다 .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 또는 친구들의 꾐에 빠져 마약을 하는 어른과 어린이들도 많습니다 . 현 정부는 마약 타파를 위해 사살도 감수합니다 . 우리 동네 과넬리안 수녀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마약 자를 직접 본 그 수녀님은 오랫동안 힘들어했습니다 . 많은 마약 자들이 사살되었는데 그중 한 곳이 빠야따스였습니다 .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남편이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고 , 가끔 안 나올 때는 남편을 도망시켰다가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이런 상황과 뉴스를 보며 모두 마음 아파하며 지내기 일쑤입니다 . 가톨릭 주교들은 사살반대를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하지만 현 정부는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
우리의 희망은 우리와 함께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 가족원들만이라도 영육으로 건강하게 자라 이곳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 우리와의 잦은 만남 , 상담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올바른 사회의 일꾼이 되어 빠야따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와 봉사로 임하고 있습니다 .
제가 지난 5 년 경험한 이 동네에 Junreth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 이 청년은 수원교구 신부님의 도움으로 장학생이 되어 4 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아이를 선정할 당시에는 아이의 가족은 쓰레기에서 뒤진 닭다리를 먹었고 , 밥에 소금을 뿌려 먹었습니다 . 또 전기세도 못 내 전기회사에서 법정에 오도록 하여 도와 달라고 저에게 요청해오기도 했습니다 . 저는 그 가족의 밀린 전기세를 1 년으로 나누어 갚아 주었고 , 교통비 대신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 동생이 태어날 땐 엄마와 아기가 입원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 신부님의 자비로 학비와 용돈은 매달 지급 되었지만 , 가족의 생계는 쉽지 않았습니다 . 성실한 그 청년은 4 년 과정의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은행에 정식 직원으로 취직했고 ,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까지도 자기와 같은 상황의 아이 1 명을 선정하여 매월 용돈을 주고 있으며 ,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힘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을 통해서 올해부터 Junerth 와 같은 이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시작했습니다 . 이곳에서 여러분의 도움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 Junerth 와 같은 아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며 기대해봅니다 .
민순애 베르나르도 수녀 /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