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수단이 막 독립한 2011년에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 도착해서 이태석 신부님이 남수단에서 사셨던 꼭 그 세월만큼 현재 살고 있습니다. 우리 수녀회에서 아프리카에 처음 진출하게 되었고 많은 나라 중에 가장 어려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바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신 죨리 신부님의 초대에 의해서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4년을 살았고, 주바에서 3시간 떨어진 시골, 농사짓는 마을 케레피라는 곳으로 다시 개척하여 들어가 교육 선교를 막 시작하던 중 두 번째의 전쟁을 만나 마을 주민 모두와 함께 우간다 피난민촌으로 들어가 3년을 난민들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지금은 난민촌에 사는 신자들의 자녀 중 130명을 선발하여 미래의 남수단을 짊어질 아이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한다는 큰 꿈을 갖고 있습니다. 니믈레라는 남수단 국경선으로 피난 짐을 싸서 지난 1월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와 기숙사 달린 임시 초등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다닌 곳곳마다 수단어린이장학회와 함께하였습니다. 주바에서는 어린이센터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병원 건물 짓는 데에도 일부 도움을 받았습니다. 케레피를 거쳐 난민촌에 가서 활동할 때는 2~3백명의 어린이들의 장학금과 운영비를 2년 동안 받았습니다. 현재는 급식비를 함께 도움받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사는 니믈레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피난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빈 학교가 생겼고, 그것을 얻어 리모델링하였습니다. 처음엔 쉽게 생각한 학교 건물 수리가, 기숙사를 하게 되니 많이 복잡했고, 재건축비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현재 함께 하는 김 브루노 수녀님과 한국에서 온 봉사자 자매 한 명과 함께 셋이서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더 고생스러운 것은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저희 스스로 우리가 보육원을 운영하는 것 같다고 투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육원도 낮에는 학교에 가는데 이 아이들은 학교가 집이고 집이 학교입니다. 학교 교실 두 칸을 2층 침대를 넣어 침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학년과 6학년은 데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또한 국경선을 넘어오는 일이라 문제 될까 싶어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게 했기에 이중 삼중으로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공부도 잘 가르쳐야 하고, 어린이들이라 밥도 잘 해줘야 하고 예의도 가르쳐야 하기에 매번 잔소리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난민촌으로 전쟁을 피해 가는 여정 안에서 죽을 만큼의 고생을 해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저희이기에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생활 태도가 잘 잡혀 있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음식을 손으로 먹지 않고 숟가락 사용이 편해진 아이들입니다. 공책을 찢어 화장실에 갖고 가지 않고, 빨랫비누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자아이들이 더 예뻤습니다. 청소도 잘하고, 자기 옷도 깨끗이 빨아 입고, 정리정돈도 잘하고, 침실에서 냄새도 나지 않게 해놓고 인사도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좁은 공간 안에서 먼지 풀풀 날리며 심하게 운동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도 거의 마쳐 가는데 여자아이들 성적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지난 학기에 많은 여자아이들을 즉시 한 학년 내려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엉뚱한데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저희는 너무나 안타까워합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데 하면서…
반면, 남자아이들은 빨래를 잘 안 하고, 어제 땀에 젖은 옷을 오늘도 입고 있어 냄새가 많이 나고, 밤에 오줌 싸는 애들이 많아 기숙사 안은 늘 거북한 냄새가 많이 납니다. 조금 화난다고 돌 던지며 싸우다 머리를 맞아 피 흘려 병원에 데려가고, 식당 밥 먹는 숟가락 한 개 두 개 훔쳐 가서 9개나 개인 가방 속에 숨겨 놓다 걸려 정학 맞고, 맘에 안 들면 좁은 공간 떠나가라 하고 목 놓아 울며불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부는 잘합니다. 구구단도 잘 외우고, 발표도 잘합니다.
각 가정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동생 봐줘야 하고, 물 길어 오고, 땔감 나무 멀리까지 가서 주워 와야 하는 일이 여자아이들의 몫이기에 지금 부족함이 나타납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기초공부가 안 되어 있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 학년 내려보낸 아이부터(약 12명) 정규 수업 마치면 브루노 수녀님이 한국 입시 반 수준의 공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Blessing(축복)이라는 3학년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할 것 같았는데 성적이 늘 하위권이어서 제가 늘 핀잔을 하면 우리 수녀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유치원 중퇴한 아이니까 봐주면서 공부시키면 좋겠다고. 이 아이는 케레피 우리 유치원 미들 클라스였는데 전쟁이 나서 부모 따라 떠돌다가 바로 난민촌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전쟁 땜에 유치원 중퇴가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이 남수단에도 교과서가 없습니다. 교사가 칠판에다 쓰는 걸 모두 노트에 베껴서 공부합니다. 왜 교사들이 분필을 많이 사용하는지, 왜 아이들이 새 노트, 새 볼펜을 달라고 자주 오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쇄소에서 책을 만들고 싶어도 종이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벌목하는 나무를 부자 나라에서 다 가져가 사용해서인 듯합니다. 혹 다니시다가 종이가 함부로 나뒹구는 것을 볼 때 아프리카 남수단 어린이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단어린장학회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쓰지 않고 절약하여 한 푼 두 푼 모아서 보내 주시는 소중한 후원금으로 저희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큰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시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길목 어귀에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바쳤던 노고를 꼭 셈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류선자 치프리아나 수녀 /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