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심장부인 파라과이에서 인사드립니다. 제가 사는 콘셉시온은 파라과이 북부에 있는 인구 18만 명의 소도시입니다. 1947년 파라과이 내전이 일어난 곳 중 하나이며, 내전 이후 현 정권과 정치적 싸움에서 밀려 경제와 교육 환경이 50년 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도 반군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낙인이 찍혀 여행 제한지역으로 묶여 있어 관광객 및 자원봉사자를 받지 못해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2019년 2월부터 콘셉시온 도움이신 마리아 학교 행정실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1903년에 유럽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설립되어 117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지만, 단 한 번도 재정적으로 독립해 본 적이 없고 늘 외국 원조에 의지해서 지내왔습니다. 초창기부터 약 20년 전까지는 스페인 및 이탈리아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유럽 성소자의 감소로 더는 선교사 파견이 없자 파라과이 출신 수도자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학교 재정은 바닥이 났고 건물 또한 극도로 노후 된 상태로 방치되었습니다.
개교 당시부터 주로 콘셉시온의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이 입학했고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등록금을 못 내도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할 수 없어 퇴학시키지 않고 계속 다니도록 해왔기 때문에 학교 재정이 더 어려워지게 되었고, 지금도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는 교사와 직원의 급여 지급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초창기부터 200명 이하의 여학생만을 받아 기숙사와 병행하여 운영했으나, 20여 년 전 파라과이 교육법이 변경되면서 학교 기숙사를 폐쇄해야 했습니다. 그 후부터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고, 급격히 늘어난 입학생을 받기 위해 일부 기숙사를 교실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두 배로 늘어난 학생들을 수용하기에는 여전히 교실이 부족합니다. 2020년 6월 현재 재학생 수가 420명인데, 매년 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어 시급히 교실을 확장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에 응답하여 이 학교에 도착해 보니 학교 중심부이며 학교 성당과 연결된 건물은 거의 철거해야 할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은 위험한 줄도 모르고 폐쇄된 구멍을 뚫고 들어가 귀신놀이를 하는데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서 늘 불안했습니다. 기본 구조물이 성당과 연결되어 있어 철거할 수가 없고, 파라과이 법에 따라 역사가 있는 건물은 변경할 수 없기에 기본 틀 안에 재건축을 해야만 하는데 그 비용 마련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며 여기저기 원조신청서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필요한 만큼의 재건축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희가 필요한 비용의 거의 절반을 지원해주신 수단어린이장학회의 후원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방학기간을 이용해 먼저 낙후된 건물을 어여쁘게 단장했습니다. 앞으로 부족한 시설은 계속 보완해나가려고 합니다. 초등부 아이들은 등교를 시작하는 날 서로 새 교실로 들어가겠다고 다투기도 했는데, 담임교사들까지도 교장실과 행정실에 찾아와 자기 반을 새 교실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하는 해프닝이 있었답니다.
우리 학교는 역사가 있는 가톨릭 학교라 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고 입학희망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설확충을 하여 운영을 잘한다면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과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신자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학생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어 학교의 재정자립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3월 12일에 파라과이에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는데, 즉시 전국에 휴교령이 내렸습니다. 예방 차원에서 일단 모든 것의 멈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 내려졌지만, 교육에 대한 어떤 대안과 계획이 없이 시작된 휴교라 모든 학교와 학생들에게는 혼돈의 시작이었습니다. 전국 학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가톨릭 사립학교들은 휴교로 인한 학교 운영의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등록금의 50% 이상 감액을 요청하고, 학교 측에서는 학교 교직원 급여지급 문제가 있어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 같은 사정이고,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를 좀 빠져 나갔습니다. 등록금뿐만 아니라 교재비도 부담되어 특히 실직자 자녀들이 국립학교로 옮겨갔지요. 안타깝지만 저희 형편상 모두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줄 수는 없어서 50% 면제를 제안하고 그것도 어려운 아이들은 다른 학교로 이동하게 했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교령 때문에 새로 단장된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매년 5월 24일이면 학교의 주보인 도움이신 마리아 대축일 축제로 학교 성당은 기도의 물결로 가득하고 수많은 졸업생이 성모님을 방문하고자 학교를 찾아오는데, 올해는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트럭에 성모님을 아름답게 꾸며 거리와 골목을 행렬하며 성모님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원래는 성모님 축일 전야제 때만 할 계획이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아주 좋아 축일 날 오전에 한 번 더 실시했습니다.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은 대문 앞에 뛰어나와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고, 고령으로 걷기조차 힘든 어르신들이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성모님을 맞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성모님을 맞이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얼마 전 저희 공동체에는 3명의 예비 지원자가 들어왔습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 중에서 성소에 관심이 있는 소녀들을 선별하여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며 성소 체험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련의 시기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업을 계속 이어갈 사람들을 보내주심을 보며 희망이 생깁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이사야서 65,17)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교육 방법, 새로운 선교 사명, 새로운 사랑 법을 가르치시니, 그 가르침에 따라 걸음마를 배우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언제나 영적 물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저희 선교사들을 기꺼이 도와주시는 수단어린이장학회 모든 후원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분들이지만 매일 기도 안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며, 함께 연대하여 지금의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박점림 모니카 수녀 /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