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절망적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낙담 속에서도 무덤에 가기 전 향유를 준비하고 끝까지 지켜낸 여인들의 기도와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그런 절망의 상태에서 보여준 여인들의 지칠 줄 모르는 기도와 끝날 줄 모르는 사랑의 행위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들의 작은 기도와 사랑을 통해 현시대에도 예수님 부활의 증거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희망이란 인간의 철학적 사고인 낙관주의와는 달리,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올 10월 로마에서 열렸던 저희 수도회 총회 준비를 위한 피정 때 지도 신부님께서 언급해 주셨던 교황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 각자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했던 2년간의 세월에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라고 재촉하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생명과 희망으로 우리 곁에 있으셨던 시간을 둘러봅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지금, 저희 부칼파 공동체는 생각도 못 했던 대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작년, 저와 동료 수녀님은 코로나 감염증만큼이나 부칼파를 위협했던 뎅기 열병을 심하게 앓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자 카세리오 아방까이 주민들이 고맙게도 ‘수녀님들 몸보신하라’며 암탉 세 마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린 그 암탉을 먹는 대신 기르기로 했습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성당 앞뒤 정원엔 코땍코땍코땍~ 맛나는 달걀을 낳아주는 암탉 열두 마리, 코~코로코~ 시계 알람처럼 매일 적당한 시간에 울어주는 미남 수탉 두 마리, 삐유삐유삐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약병아리 열두 마리 그리고 삐약삐약삐약~ 어미 닭을 따라 종일 먹이를 찾아 날았다 뛰었다 하는 귀염둥이 병아리 열한 마리가 새벽빛이 밝아 올 때부터 하루해가 저물 무렵까지 분주하게 성당 정원을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올 초부터는 인터넷으로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고 있던 카세리오 여자아이들 6명을 수녀원 2층에 거주시키며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습니다. 소심하지만 자신의 달란트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유리(13세, 중1), 욕심이 많지만 아주 섬세한 요안나(11세, 초6), 투박한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하고 여린 크리스티나(12세, 초6), 말수가 적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봉사 정신을 발휘하는 프레시아(12세, 초6), 식물과 동물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고 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원주민 아이 키나(11세, 초5), 장난꾸러기이지만 재치가 있어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는 막내 에스멜라다(7세, 초1). 이렇게 힘을 합치면 뭐든 해내는 아마존 독수리 6자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성당 안에서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편 비어 있던 성당 정원에 요리용 배자코, 까삐로나, 간식용 만사니또, 세나 같은 여러 종류의 바나나를 군데군데 심었습니다. 첫 번째로 심은 바나나 줄기는 2년 동안 벌써 여러 번 통통한 바나나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을 향해 커다랗게 뻗어가는 바나나의 푸른 잎은 가끔 우리 집 닭들이 먹는 특별 간식이 되어 주기도 하고, 바나나의 꽃은 신비로운 빛깔의 벌새들이 정원에 수시로 날아들게 하여 자연의 신비로움을 눈에 담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녀님, 이곳엔 생명이 있어요. 그래서 참 좋아요!”
어느 날 삯바느질을 하며 살아가는 루즈 자매가 성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넨 첫 마디였습니다. 루즈 자매는 작년 코로나 감염증으로 거의 모든 병원이 마비되었을 때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던 젊은 청년 아들을 의료진들의 실수로 잃었습니다. 그날 루즈 자매는 갓 뻗어 나가고 있던 어린 바나나 줄기가 가득한 성당의 푸른 정원에서 어미 닭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병아리를 지켜보며,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윽고 꺼내어 볼 수도 없을 만큼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버렸던 아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눈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중환자실 침상에 굳어버린 몸으로 누워 있던 아들의 모습을 창 너머로 지켜보던 3일간의 절망, 병원에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살 수 있었던 아들에게 느끼는 미안함, 의료진들의 오진에 대한 억울함과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흘리고 있던 눈물, 또 그날 성당에 들어오며 말했던 루즈 자매의 첫 마디. 이들이 바로 사랑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여인의 마음이었음을, 하느님께서 예수님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고 계시는 순간이었음을, 또한 우리에게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사인이었음을 떠올려봅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늘 아이들에게 희망을 나눠주시고, 또한 저희 공동체가 생명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영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수단어린이장학회 가족 한분 한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수단어린이장학회 가족 모두에게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구영주 클레오파 수녀 / 예수의 까리따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