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감사하자. 그 좋으신 분을
1월 26일에 총성이 멈추었고 2월 5일에 이곳 상황을 글로 남긴 후 벌써 두 달이 훌쩍 가버려 한국에서는 꽃 피는 봄이 되었겠고, 교회 전례로는 예수님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행사로 바쁘게 지내는 시기가 되었다.
전쟁이 멈추었지만 시국이 어수선함에도 불구 하고 로마 총원에서 수녀님들이 다녀 가셨고, 교황청에서 T. Peter추기경님이(가나인) 남수단 교회 상황을 더 잘 알기 위해 다녀 가셨다. 수단 교회 정기 주교 회의를 마치고 나온 결론을 대주교님으로 부터 간단히 들었다. 이번 전쟁으로 거의 초토화가 된 말라깔이라는 북쪽으로 있는 교구가 있는데 총성이 멈춘 후 주교님 이하 거의 모든 사제 선교사들이 주바에서 지내고 있다. 돌아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모든 건물이 전부 부숴졌고, 모든 사람들이 죽었거나 피난 갔기 때문이다. 가톨릭 선교가 잘 이뤄지진 않은 곳이라고 했다. 대신에 개신교가 성행된 곳이다. 이곳의 문제는 사람들의 MENTALITY(사고) 라고 했다. 카우(소)의 지위가, 사람 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가 죽으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사람이 죽으면 사람 맘에 아무런 감동이 없다고 한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배타고 도망 가려다가 배가 가라 앉아 모두 죽었고, 군인들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총을 쏴서 죽였고, 외국인이라고 하여 죽였고,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자기 부족 아니면 다 죽였다.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전통도 다 무너 졌다. 주교회의에서의 결론은 이곳에 하느님의 인간 질서에 대한 개념이 없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직시하고 교회가 다시 일어서야 됨을 즉 선교가 이뤄져야 됨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 많은 선교사가 필요함을 생각하며 우리도 많이 기도하였다
지금도 계속 난민 캠프 미사가 이어지고 있다. 말라칼 교구에서 돌아 온 곰보니 선교회 선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캠프 미사를 드리고 있다. 수녀, 신부 합쳐 아홉 명이었던 그들의 말라칼에서의 체험 나눔은 정말 생생하였다. 전쟁이 터지고 이들의 생사를 모르던 때 주바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들을 위해 기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동차 3대로 먹을 양식을 싣고 주민들과 함께 깊은 밀림 속으로 피난가고 있는데 군용차를 만났다. 숨죽이고 숨어있는데 이 군인들이 지나쳐 갔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돌아 오더니 마구잡이로 이들이 숨어 있는 쪽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자동차를 두고 모두 흩어지게 되었고, 그 이후 뿔뿔이 흩어져 서로 서로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브라질에서 온 신부님은 거의 3주간을 밀림 속에서 몇몇 신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들이 가져다 주는 풀이든 나무 껍질이든 먹으면서 지냈다고 한다. 다국적인 선교사들의 나라에서 이들을 찾는 가족들과 수도회가 유엔과 합세하여 찾게 되었던 것이다. 신부님이 처음 난민 캠프 미사 하던 날, 피난 온 본당 신자들과 재회하던 장면은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누덕 누덕 기운 텐트 집을 상상 할 수 있을 건가, 폐수와 같은 물에서 땀에 젖은 옷을 담가 빠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중에 누가 상상이나 해 봤을까. 그래도 주일만 되면 깨끗한 옷을 입고 더러는 다림질까지 된 옷 차림을 갖추고 미사에 오는 성인 남자들이 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 드린다.
우리가 현재 우리 사는 곳에서 이 피난민들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은 Feeding과 진료해 주는 것이다. 지난 호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군인 가족들이고 전쟁 피해자들이다. 대부분 여러 명 자녀들을 거느린 엄마가 아이들을 이끌고 이곳 돈보스코 미션으로 피난 온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우선 먹을게 없는 사람들이다. 처음엔 3세 미만의 아가들에게 우유를 나눠 주려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아예 이들 만을 위한 피딩의 집을 차린 것이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일어 났었다. 예를 들어 땡볕에 아가들을 업고 온 이 엄마들에게도 아가들처럼 우유 한 컵 씩 제공해야 되는 것 아닌지. 이들의 집처럼 땅바닥에 앉아 우유와 비스켓을 먹게 해야 할지 아니면 의자와 테이블을 마련 해야 할지 하면서 단순한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피딩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한달 반이 지나 가는데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아 매일 같이 도우미 자매님과 동분 서주 하고 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 단순하지가 않다. 계속 주바로 밀려 오는 가족들이 많아, “3세 미만의 체중 잰 아이에게 우유 한 컵” 소망은 꿈이 되어 버렸다. 뼈만 남은 엄마, 젖이 안 나오는 엄마, 임신한 엄마, 아가 동생 업고, 다른 동생들 걸려서 데리고 온 10살 짜리 오빠, 피난민은 아니지만 뼈와 가죽만 있어 노인 피부처럼 쭈굴 쭈굴한, 한 살 반 짜리 아가, 가게에도 젖병이 없어 플라스틱 컵으로 큰 애들 처럼 우유를 마셔야 되는 불쌍한 우리 아가들. 이젠 젠틀한 소망은 던져 버리고, 번호표를 만들어 우선 헬스센터 정문에서 문지기가 모두에게 표를 주고 조절하게 하였다. 장소가 협소하고 진료소 환자들에게 미안해서였다. 이제야 피난 온 사람들은 나에게 항의도 많이 한다. 다른 아이들 처럼 컵을 줘라, 리스트에 이름 등록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라, 우리 가족에게도 텐트를 줘라, 먹을 음식 재료를 줘라. 어이 없게도 이들은 신부님에게 요구 해야 되는 것 까지 나에게 하여 당황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을 보면서 내가 매일 매일 행복하다는 것이다. 주님은 공평하심을 깨닫는다.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고생하는 만큼 보람과 기쁨도 주시는 것을 본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매일 남수단을 위해 기도한다. 특별히 이 사순절 동안의 희생과 보속 그리고 헌금은 말라깔 교구를 위해서 봉헌 한다는 대주교님 지침서가 내려 졌었고, 지난번 로마 교황청에서 오신 추기경님과 남수단 모든 주교님들, 주교좌 성당에서 신자들 함께 대미사가 있었다. 미사 시작 직전에 살바키르 현 대통령이 들어 오셔서 늘 앉으시는 성당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호가 심한 것도 아니고, 모든 성당 문들도 열려 있고, 시국이 위험 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그 세 시간 가까이 되는 미사를 참석하시는 것이다. 이 분이 세계 뉴스의 톱을 갖게 한 전쟁의 주범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게 한 장본인이며, 정부 인사와 함께 부를 축척 하고 있는 대통령일까, 전날 추기경님과의 만남을 가졌는데 이젠 전쟁 안 하겠다고, 그럴 기회가 오면 권좌를 내 놓겠다고 약속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왔다. 기회가 잘 되었다 생각하고, 사제단이 퇴장 할 때 앞으로 가서 추기경님 다음으로 대통령과 평화 악수를 하면서 당신을 위해 매일 기도 하고 있다고 말하니, 고맙다고 하였다. 즉시 보좌관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다른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인사는 했지만 마음은 씁쓸하였다. 에이그, 전쟁할 돈으로 우리 백성들 하루 한끼라도 먹게 좀 해 주시지, 우리 예쁜 아가들에게 케냐에서 무기 대신 젖병이라도 한 개씩 사다 주시지….
대통령님 부탁합니다. 전쟁 하지 마세요. 저도 많이 무서웠거든요. 언제까지 백성들이 이렇게 먹을게 없어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 될까요. 좀 도와 주세요. 네? 네?
이 글을 읽으시게 되는 모든 분들, 그 동안 저희를 위해서 기도 해 주시고, 이 어려운 여정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수단 위해서 정말 기도 많이 해 주세요. 항간에 들려오는 소리는 이 전쟁은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거든요.
십자가 상의 죽음으로 우리 죄를 대신 하신 주님께서 죽음 직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새로 탄생 하게 될 제자 공동체가 쉽지 않음을 예상하시고 이들이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하셨지요. 우리 가정이 하나 되기 위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우리 교회 공동체가, 부족간의 갈등의 골이 깊은 남수단 민족들이 한 마음으로 살아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될까요. 하나로 일치하기 위해 서로 돕고, 참고, 인내하고, 이해하고 받아 들이라 하지만 쉽지 않지요. 다만 우리가 공동체끼리 마주 보며 일치 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가 한 곳을 함께 바라다 보며 일치 해야 되는 거지요. 함께 바라다 보며 가야 되는 곳이 어디인지 이 시기 동안 함께 찾아 보게요. 지금이 바로 은총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2014년 4월 6일 남수단에서 류치프리아나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