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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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바다는 우리 대신 말해주네. 밤낮 설레는 우
리네 가슴처럼 숨찬 파도를 이끌며 달려오네. 우리가 주
고받은 숱한 이야기들처럼 아름다운 조가비들을 한꺼번
에 쏟아놓고, 저만치 물러서는 파도여, 사랑이여.
13
그에게서만은 같은 말을 수백 번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와 만나는 장소는 늘 같은 곳인데도 새롭기만 하다.
14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식물세포처럼 사랑의 말과 느낌
은 섬세하고 다채롭다.
15
꽃에게, 나무에게, 돌에게조차 자꾸만 그의 이름을 들려
주고 싶은 마음. 누가 묻지도 않는데도 내가 그를 사랑하
고 있음을, 그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하루에도 열두 번
알리고 싶은 마음. 사랑할수록 바보가 되는 즐거움.
16
어디서나 그를 기억하는 내 가슴속에는, 논바닥에 심겨
진 어린 모처럼 새파란 희망과 언어들이 가지런히 싹을
틔우고 있다. 매일 물을 마시며, 나와 이웃의 밥이 될 기쁨
을 준비하고 있다.
17
사랑이 나에게 바다가 되니 나는 그 바다에 떨어져 녹아
내리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사네.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서 태어남을 거듭하는 한 방울의 물 같은 사랑도 영원하
다는 것을 나는 당신 안에 흐르고 또 흐르는 물이 되어 생
각하네.
18
사랑은 파도타기. 일어섰다 가라앉고 의심했다 확신하
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파도 파도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