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꽃숲
우리 아파트 앞채에서는
온 세대가 뒤쪽 복도 난간 위에다
각색 화분과 화반을 얹어 놓아서
12층이나 되는 집채가 꽃으로 만발이다.
봄에서 여름, 이내 이 가을까지
나는 꽃으로 덮인 그 앞채를 바라보며
때마다 도원경에 든 황홀을 맛본다.
꽃으로 환해져서일까?
그 꽃숲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밝고 싱싱한 모습들이다.
이웃에게, 아니 자기에게도
아무런 갚음도 바라지 않아
꽃처럼 무심하여 더욱 아름다운
그 앞채 사람들 마음씨에 화응하여
나도 역시 뒤쪽 복도 난간 위에다
몇 개 화분을 얹어 놓고 가꾼다.
** 이 시를 읽은 후, 저도 화분 두 개를 베란다 난간에 두고 가꾸어 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잠자리가 와서 쉬기도 하고, 한 마리, 두 마리, 어느 날 아침은 다섯 마리가 와서 잠에 취해 있는 것이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오늘은 몇 녀석들이 와서 쉴까!”하면서 잠자리 식구들을 기다려보곤 했답니다. 초가을 풍경이었어요. 생명이 와서 쉰다고 생각하니, 온 가족이 기뻐하며 기다렸지요.
지금은 입동, 잠자리들은 모두 사라지고, 내년 봄 나비들을 기대하며, 이 겨울을 잘 견디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겨울의 길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