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2016년 서울대교구장 사목교서(다해)
루카 21,25-28.34-36; 15/11/29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 교회의 가르침은 새로운 복음화의 나침반 –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1티모 4,13)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구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뜻에 따라 2013년 한 해를 ‘신앙의 해’로 지냈습니다. 저는 한국 천주교회가 ‘허약한 신앙’의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고 신앙의 강화를 위해 다섯 가지 방안을 표어에 담았습니다. 곧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그것입니다.
올해는 그 세 번째 해로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고자 합니다.
신앙인은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며 삽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를 통하여 그분과 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악의 세력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2코린 11,15)하여 나타나 선과 진리를 왜곡하고 그릇되게 가르치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요한 10,16)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목자를 세우시어 당신의 자녀들이 악의 세력에 현혹되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당신이 제자들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셨습니다(마태 28,19-20 참조). 이 명령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들에게 맡겨져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입니다. 우리는 주일과 대축일 때마다 미사 중에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 세상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시어 수난하고 부활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신경에는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증거한 믿음, 오랫동안 교회가 다져온 정통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신경과 더불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이 두 문헌을 특별히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공의회 문헌들은 올바로 읽혀져야 하며, 교회의 전통 안에서 교도권의 중요한 규범적 문헌들로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 세기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을 우리는 공의회에서 발견합니다.
공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교회의 쇄신에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믿음의 문’, 5항)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교리서는 교회 생활 전체의 쇄신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이 교리서가 신앙 교육을 위한 확고한 규범이며 교회의 친교를 위해 유효하고 권위 있는 도구임을 확인합니다.”(‘믿음의 문’, 11항)
교회의 가르침은 나침반처럼 항상 신앙 여정의 길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때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의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다질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특히 150년 전 신앙의 순교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150년 전 병인년에는 많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고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지난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셔서 주교님들에게 기억의 지킴이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황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선조들을 공경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 선익을 위하여 사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히 여깁니다.”(2014년 8월 14일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하신 교황님의 연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이 간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 순교자들과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 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과거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길을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적 진전을 가로막거나 실제로 멈추게 하고 말 것입니다.”(2014년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하신 교황님의 연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 상황에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믿고, 믿음대로 살며, ‘주교요지’, ‘상재상서’등을 저술하여 그 가르침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박해자들까지도 용서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닮고자 했습니다.
올해 우리는 병인년의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남북 분단으로 순교의 길을 걸으신 신앙인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의 순교의 의미를 새기면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도록 기도하고, 또 노력합시다.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습니다(마태 7,24-25 참조). 슬기로운 사람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고 체험할 뿐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세상에 증거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지금은 자비의 시대입니다. 평신도들이 자비를 실천하고 다양한 사회 환경에 자비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2015년 1월 11일 삼종기도 때의 말씀) 지난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 ‘자비의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자비로운 신앙인이 되길 촉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은 신앙인은 그 자비와 사랑을 잊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피의 순교’가 가능하지 않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땀의 순교’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땀의 순교’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이웃에게 그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일 것입니다.
동료 사제 여러분!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는 사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사제 여러분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고유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며, 성사를 집전하는 가운데 신자들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특히 교회의 가르침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사제들이 직접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베푸는 가운데 신자들이 사제 여러분들에게서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이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도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봉헌생활의 해에 다짐했던 바를 잊지 말고 복음 삼덕 안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신자들이 기도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을 여러분을 통해서 배울 수 있도록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기도자의 모습을 여러분들에게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사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회적 불신과 박탈감이 팽배합니다. 경제적 양극화, 정치적 갈등,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둠에 빛을 비추어야 하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와 부패를 이겨내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되고, ‘기도’로 자라난 신앙을 이제 ‘교회의 가르침’으로 더욱 다져가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알리는 그리스도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15년 11월 29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