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1
여기서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확신을 가지고 겉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여러 경로를 통해 권장되며, 우리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느냐인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인간이라는 긴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겸손과 자신의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와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강한 면을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물론 올바른 충고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언에 강한 사람들만 가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면 다음 단계의 조언은 더 이상 없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자기 안의 모든 것, 즉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약한 부분마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유머 감각을 지니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 건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리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수록 우리는 자신의 어두운 측면과 미처 채우지 못한 갈망, 억압된 감정들을 발견한다. 신앙을 바탕으로 결혼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자 했던 한 부부가 각자의 부정적 측면들로 인해 싸우기 시작하더니, 반년도 지나지 않아 관계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신앙이란 단지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에서 도망치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들은 먼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어두운 측면, 즉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되갚아 주려는 악의를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일생에 걸쳐 작업해야 하는, 즉 기나긴 여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자기 안에서 자신을 실망시키며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수도회에 입회하면서, 나는 기도와 자기 수련Askese을 통해 내 안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은 여지없이 내 안에서 그 존재성을 알려 왔다. 결국 나는 애초의 환상을 포기했다. 이제는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하느님께서도 받아 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스스로의 미숙한 행동에 짜증이 날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정도 수준이었어. 그러니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그래도 상관없어.” 그러면 나는 실망 중에도 내적 평화와 평정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좋으며, 그대로 존재해도 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손 안에 있음을 느낀다.
안셀름 그륀
2015_12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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