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2
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사랑으로 타인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라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그분의 정신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많은 분들이, 그분의 정신을 살고 그분의 삶을 통해 기쁨을 살아가려면, 그분처럼 선한 지향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늘 이야기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이야기 시작에 앞서 저는 누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을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고 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이태석 신부님의 삶의 여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여러분들 앞에서, 그분과 함께 사랑을 함께 나누었던 한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저의 작은 의무라고 생각하며, 또한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함께 했던 여러분 모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1,2로 구성되었으며 지난 11월 21일 나눔을 위해 준비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인간의 위대한 역사 사건들 속에는 하느님의 선함, 자비로운 사랑의 계획이 은밀히 내재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역사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마음속에서, 사랑의 크기와 깊이가 늘어나고 줄어듦을 반복하는 가운데서 1) 하느님을 향한 봉헌적 사랑, 2)십자가의 삶을 기반으로 한 사랑, 3)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성장해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랑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세상의 흐름을 더욱 강렬한 사랑의 흐름으로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태석 신부처럼 선한 사람이 되어라.
1. 하느님을 향한 봉헌적 사랑
이태석 신부님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일없이, 착하고 어질게 세상을 살았습니다. 성장한 후에도 신부님은 의학공부와 군복무시절 군의관으로 지내면서 삶의 전화점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을 체험하였고 제대한 후에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함으로써 수도자로서의 삶을 통해 청소년을 위한 호의와 재능과 자비를 발휘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친절한 태도, 언제 어디에서든지 봉사할 수 있는 영혼의 자유로움, 타인의 행복을 위한 헌신, 선함은 하느님의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더 깊이 추적해 보면 삼위일체적 하느님 사랑의 삶의 중심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선함이란 성삼위의 사랑의 일치와 용서로 당신 자녀들의 과오를 말끔히 잊고 용서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선교사로서, 톤즈의 돈보스코로서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을 향한 봉헌적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형제들과의 친교나 수단 톤즈에서의 그의 선함이란 요란한 말이나 과장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들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께 손을 내밀고, 진정성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봉헌적 사랑과 선함이란, 열등한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극복하도록 힘을 북돋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중하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봉헌적 사랑, 바로 그런 삶을 솔선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바탕을 두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처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 십자가의 삶을 기반으로 한 사랑
이태석 신부님의 밝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고행을 감수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했는지에 대해 사실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모습에서 드러난 밝은 면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부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지 신부님의 마음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신부님 삶 안에 숨겨진 사랑 즉, 십자가의 삶을 기반으로 한 사랑 신부님의 삶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우선 신부님의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펴보면 형제들을 위해 기쁨을 주고 그들에게 사랑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던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걱정거리를 잊고 형제들을 생각하는 일, 형제들을 기쁘게 만드는 일,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야말로 여러 사람들의 상처를 감싸 주고 고통을 진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기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신부님을 톤즈의 형제들 곁에 있게 하셨다는 것은 톤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지구촌의 한 곳, 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불쌍한 형제들을 위해 그의 내부에 숨겨진 순수를 지향하고자하는 열망, 자기를 내어 주고자 하는 열망과,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열망에 자신의 삶을 걸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나서는 남다른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형제애는 세상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수단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형제애가 널리 퍼지도록 기도하며 몸소 실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톤즈의 많은 사람들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형제들의 짐을 함께 져 주지 않는 사람은 형제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이태석 신부처럼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라
3.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선함으로 대한다면 세상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나 쉽게 망각합니다!
약간의 진실한 호의만으로도 사람들의 영혼들과 가까워진다는 것을 신부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전쟁과 기아로 얼룩진 무죄한 어린 학생들을 보듬어 안아 주었습니다. 이로써 분열된 사회에 평화와 일치와 사랑을 심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수단의 전쟁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도 자주 원한을 품고 사람들은 서로 멸시하고 냉대하느냐?”
신부님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모든 이들에게 거룩한 호의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쳐 노력했습니다. 신부님의 호의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호의는 존경심과 사랑과 낙천주의와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의를 남용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님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랑이 담긴 웃음, 고통 받는 이들을 감싸 안아주고, 반갑고 친절하게 맞이하는 태도, 타인의 걱정을 함께 하고, 무상으로 베푸는 호의, 타인의 장점만을 이야기하는 신중함 등은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의 삶 안에 있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해답이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의 삶 속에 들어 있습니다. 신부님의 삶은 사람들에게 강한 햇살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사랑의 햇살은 꾸준하게 이어져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밝혀 주고, 따뜻하게 데워 주고, 빛을 내는 데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여러분들처럼 말입니다. 그 사랑의 빛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량하게 행동해야합니다. 선량함을 비난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선량하게 행동하려면 종종 우리 자신에 대해 초연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내 형제들에게 베푼 모든 호의를 내게 베푼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너의 호의를 백배로 갚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우리도 선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주십사고 자주 기도해야합니다. 또한 선을 베풀 기회를 주십사고 성령께 자주 청해야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 되기를 염원하는 관대한 성향을 지닐 것을 요구할 뿐입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태석 신부님처럼 진리 안에서 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진실성은 일상생활의 보잘것없는 일들을 통해 확인됩니다. 오늘날 수단 톤즈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변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확장인 동시에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상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을 본 따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부당함이나 사랑의 결핍, 무관심의 대상이 될 때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며, 증오심과 악의로써 보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님은 이런 것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수단의 오랜 내전이 양편의 인간성을 점점 더 짐승처럼 변하게 하고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게 하는 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사람들을 구해 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몸으로 부딪쳐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이태석 신부님처럼 하느님께 자유로이 내어맡긴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영혼을 사랑으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자신을 어떻게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사랑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완전하고 조건없는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지금까지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_12_16
성바오로수도회 심재영 예로니모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