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축제를 지냄 1
교회력의 여러 축제들은 고유한 방법으로 복음서를 묵상한다. 축제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훌륭하게 창조하시고 더 멋지게 갱신하신’(성탄 축제의 기도문) 우리의 삶을 축하한다. 우리가 축제를 지내는 까닭은 우리의 삶이 축하할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축하하는 잔치를 지낸다. 우리는 거룩한 전례의 축제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실제를 짐작할 수 있다. 전례를 통해 자신의 유일하고 고유한 품위에 대한 느낌을 내면에서 성장시킬 수 있다, 나는 몇몇 축제를 예로 들어, 이러한 면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성탄시기에 우리는 마음 안에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한 어린아이로 탄생하신다. 우리는 자기 과거에 고정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이 손수 만드신 우리의 원초적 모습과 만나도록 하신다. 내가 나의 가치를 믿을 수 없기에, 내가 나의 가치를 자꾸만 낮게 평가하기에, 그리스도의 탄생 안에서 하느님 친히 내게 오시어 다음과 같은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너와 같이 아름다운 존재는 이 세상에, 이 순간에 단 한 번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베들레헴의 아기 안에서 세상을 향해 빛나는, 사람들 한 명 한명의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신적 아름다움을 축하한다.
구원된 우리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는 표상은 성탄시기에 세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마구간에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는 것이다. 나의 어둠 속으로 하느님의 빛이 들어와 마음속 혼돈을 변화시킨다. 이것을 우리는 성탄 자정미사에서 찬미하고 기뻐한다. 나는 하느님께 굳이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마구간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거기에 빛을 비추실 것이다. 주님의 탄생은 나의 육체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남을 의미한다.
나는 수도원의 피정 집에서 성탄 축제와 관련해 피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와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육체 안에서 빛나는 것을 인식하는 훈련을 했다. 만약 하느님의 영광이 나의 육체 안에서 빛나는 것이 나의 가장 깊은 실제라면,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을 체험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피정에 함께한 사람들은 이 훈련을 통해 성탄 축제의 신비를 차츰 더 깊이, 더욱더 아름답게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표상은 성탄시기를 마감하는 축제인 예수님의 세례이다. 요르단 강물 한가운데에 서 계시는 예수님에게 하늘이 열리며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마음에 드는 아들이.”(마르 1,11)
요르단 강물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죄로 물들어 있다. 죄 한가운데 서 있는 내게 하늘이 열린다. 내 삶이 넓게 열리고 하늘의 신적 영역에까지 다다른다. 하늘에서 하느님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에 대한 원초적 말씀을 하신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나의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내 마음에 든다.” 하느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신적 가치를 부여한다.
나는 부모나 다른 이들의 말로 나 자신을 규정하던 행동을 그친다. 나는 나의 가치를 아버지나 어머니, 다른 사람들의 호의나 인정에 의해서 규정받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만이 나를 규정하신다. 나는 나의 참된 가치를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에서가 아니라, 이토록 멋지게 나를 만드신 하느님으로부터 찾는다.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판단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신 것은 그리스교부들이 말했듯이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도록, 즉 신화神化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안셀름 그륀
2015_12_23
동그라미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