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톤즈 선교 이해동 신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1년 반 동안 몸무게 32kg 빠진 아프리카 선교
수년 전 KBS에서 방영된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2011년 독립)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의료와 선교 활동을 한 모습을 엮은 것으로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한국 천주교 살레시오회 소속의 이태석 신부는 2001년부터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와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8년 대장암 판결을 받고 투병생활 중 2010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살레시오회는 이태석 신부가 8년간 활동한 톤즈에 2015년 3월 31일 이해동 신부를 파견했다.
지난 8월 중순 휴가 차 한국을 방문한 이해동 신부를 서울 영등포에 있는 (사)수단어린이장학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이태석 신부와 남수단 톤즈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단체다. 선교사로 파견되어 한국을 떠날 때 106kg이었던 이 신부의 몸무게는 현재 74kg이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선교활동을 하면서 몸무게가 무려 32kg이나 줄어든 것이다.
기자가 이해동 신부의 파견 전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완전히 딴 사람처럼 변해있었다. 이 신부는 “현지에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몸에서 땀이 쉴 새 없이 흐르기 때문에 사우나실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먹는 음식도 열악하고, 모든 생활이 열악하기 때문에 살이 저절로 빠지더군요. 사실 이번 휴가도 저의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염려한 수도회에서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보라고 좀 앞당겨 준 것입니다. 원래 2년이 지나야 본국에서 6주간 쉴 수 있는 휴가가 주어집니다.”
故 이태석 신부가 남긴 유산
이 신부는 현지의 음식 사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주로 옥수수 가루를 찐 ‘우갈리’라고 하는 것이 주식이고, 그 밖에 콩이 든 수프, 찰기 없는 밥, 빳빳한 소고기 조금이 수도원에서 일년 내내 먹는 변함없는 메뉴입니다. 이마저도 없어서 배를 곯는 현지인들에 비하면 감사한 일이죠. 제가 정확하게 1년 4개월 만에 한국에 왔는데 한 5년은 있다가 온 느낌입니다. 계절 변화가 없고, 여름만 지속되니까 시간이 더 더디게 가는 것 같습니다.”
이 신부는 “현지에 채소가 귀하고, 채소를 먹지 못하다보니 건강이 너무 약해져 텃밭에 채소를 가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텃밭이 처음 200평 규모였는데, 지금은 600평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농사짓는 것을 처음 본 현지 사람들이 신기한 지 몇 시간씩 울타리 밖에서 구경하다 가곤합니다. 제가 농사 경험이 없기 때문에 농사짓는 데 인터넷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마치 농업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합니다.”
이해동 신부는 “현지에 가보니 아직 이태석 신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태석 신부가 직접 지은 병원 자리가 그대로 있고,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딴 병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살레시오회의 한 신부님이 이태석 신부의 활동에 감동하여 이탈리아에서 모금활동을 벌여 지은 병원입니다. 하지만 정식 의사가 없으니 진료는 못하고, 대신 인도 간호사 수녀님을 파견해서 보건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의사와 학생들이 1년에 3개월 정도 봉사활동을 나옵니다.”
이해동 신부는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한 신부 중 처음으로 현지 청소년들로 구성된 악대를 조직한 분”이라며 그가 남긴 유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수단 사람들은 음악성이 뛰어난데, 이태석 신부가 그 음악성을 밴드 활동을 통해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죠. 현지인들에게 자신들도 교육과 기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준 분이라고 봅니다. 이태석 신부 제자 중에 실제로 음반을 내고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이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들
이해동 신부가 머무는 살레시오회 남수단지부 톤즈공동체에는 이 신부 외에 세 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두 명은 인도출신이고, 나머지 한 명은 케냐에서 왔다. 이해동 신부는 3년의 선교기간을 약속하고 이곳에 파견됐다. 그가 선교사로 파견된 나이가 55세였으니, 보통 30대에 해외 선교사 활동을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늦은 나이다.
“제 꿈이 원래 선교사였습니다. 젊었을 때 여러 차례 선교사를 지원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년 전 동티모르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고 있던 차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민호(지아코모 고미노, 이탈리아 국적) 수사님의 권유로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톤즈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해동 신부를 톤즈로 부른 공민호 수사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60년 한국에 와서 32년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92년 수단으로 건너갔다. 현재는 주바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수단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시설의 확충입니다. 수단의 주요 산업은 목축업인데 이곳 아이들은 5~6세가 되면 부모가 학교를 보내는 대신 손에 막대기를 쥐여주고 양이나 염소를 치게 합니다. 조금 더 자라면 소를 치는 목동이 되는 것이 대부분 아이들의 정해진 삶입니다. 이를 안타까워한 살레시오회의 공민호 수사와 원선오(이탈리아 국적) 신부 등은 남수단에 100개 학교 짓기 운동을 펼쳐왔는데, 현재 64개 학교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신부는 “64개 학교 중에 톤즈 공동체에서 8개를 맡고 있다”며 “현지 수도회에서 이를 다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남수단 천주교의 교구 차원에서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며 운영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공민호 수사는 ‘100개 학교에서 매년 1만명의 읽고, 쓰고, 셈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 남수단의 미래가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학교 세우기 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 또한 먼저 온 신부님들의 뜻을 이어 그곳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현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전히 내전(內戰) 중인 남수단
이해동 신부는 남수단은 현재 부족 간 내전(內戰)이 진행 중인데, 작게는 마을단위 분쟁에서 크게는 석유나 천연자원을 두고 큰 부족끼리 벌이는 정치적인 내전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을과 마을, 부족과 부족끼리 가축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 나라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인데, 소를 훔치거나 뺏는 과정, 혹은 방목지 영역을 두고 벌이는 분쟁이 무척 많습니다. 또한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일부다처(一夫多妻)제가 보편화 되었는데, 소만 많으면 부인을 여러 명 살 수가 있기 때문에 소를 늘리는 과정에서 이웃 부족의 소를 빼앗거나 훔치기도 합니다. 지키려는 쪽에서 맞서 싸우거나 복수를 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싸움이 늘 벌어집니다.”
이 신부는 “남수단은 독립한지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이라 중앙의 권력이 지방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여전히 마을의 추장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세하는 사실상 전통 부족 국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제가 머물고 있는 톤즈 마을은 전투가 없습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주로 도시 외곽지역에 살기 때문에 도시 안에서는 소로 인한 다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투도중 쫓겨 온 사람들이 톤즈 시내로 자주 숨어드는데, 그들을 색출해 보복하는 행동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죄도 쉽게 일어나고, 오발사고도 자주 납니다.”
이해동 신부는 남수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은 충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저도 1960년대 가난한 한국의 시골을 경험한 사람이라, 약간 부족하게 사는 것 정도는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남수단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본 가난은 우리의 60년대 가난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가난’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극도로 가난한 그곳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를 보면 ‘가와자’(백인이라는 현지어)라고 부르며 먹을 걸 달라며 구걸을 한다”고 말했다.
“옷을 한번 입으면 다 헤어져서 떨어질 때까지 벗지를 않습니다. 머리는 떡져 있고, 몸은 씻지를 않아서 냄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30년을 넘도록 선교활동을 하시고 계신 원선오 신부님과 공민호 수사님이 새삼 존경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누가 내가 심은 망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면…”
이 신부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신앙과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신앙은 윤리의식을 심어줍니다. 오랜 내전으로 가난에 찌들고, 당장 먹을 것을 위해서는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신앙을 통해 윤리의식이 정착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은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르칩니다. 이처럼 신앙과 교육을 통해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하고, 이웃과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이해동 신부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기본적인 도덕개념이나 사회질서가 형성되지 않았고, 이런 것이 높은 범죄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도 처음 갔을 때는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 같은 것을 보급하면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선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자립(自立)이란 개념을 갖게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말라리아에 4번 걸려서 죽을 고비도 넘겼고, 더위와 열악한 음식에 건강은 점점 약해지고, 제 능력의 한계 앞에서 절망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하는 한계와 부적격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이 나옵니다. 제가 이곳에 가져온 것은 빵 다섯 개뿐인데, 달라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제 스스로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결국 하느님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신부는 “톤즈에는 50년 전 영국인들이 심어놓은 망고나무가 많이 있는데 이곳 아이들은 그 망고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며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누군가 내가 심은 망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단어린이 장학회
(사)수단어린이장학회는 아프리카 수단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한 해외 어린이의 기본교육과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2003년 12월 KBS에서 방영된 ‘한민족 리포트: 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수단 이태석 신부’편을 시청한 시청자들이 주축이 되어, 수단의 힘든 현실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자 2004년 1월 온라인 카페 ‘수단이태석신부님’을 개설한 것이 이 장학회의 모태가 되었다.
2007년 5월 당시 외교통상부의 승인을 받아 민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으며, 사단법인 출범과 동시에 남수단 톤즈의 후원이 더욱 확대되어 의류, 노트북, 의약품 등을 모아 컨테이너로 보내고 의료봉사단까지 파견하게 되었다. 또한 톤즈의 학생을 한국으로 유학시켜 지금까지 그들을 돌보고 있다. 2010년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후원의 손길을 보내기 시작했고, 최근 2013년부터는 남수단 톤즈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른 지역으로 후원 활동 영역을 넓혀 오고 있다. 장학회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한국 천주교 살레시오회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www.frjohnlee.org / 02-591-6210)
올해 88세인 원선오 신부는 1962년부터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82년 아프리카로 건너간 후 지금까지 선교와 교육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최근 낙상으로 케냐의 한 병원에 입원했는데, 옛 제자인 이해동 신부가 휴가차 귀국길에 병문안을 하자, 반가움에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다. 원 신부는 천주교 성가를 많이 지었다./ 이해동 신부 제공
기사원문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60921341&nidx=21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