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회, 이태석 기념관 개관, 이태석 전기 출간등 행사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천주교 국제수도회 살레시오회가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를 기념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9일 오전 여의도 영등포구 살레시오회빌딩에서 사업 추진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살레시오회 장동현 신부(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장), 유명일 신부(이태석위원회 위원장), 김상윤 신부(청소년사목 위원장), 백광현 신부(살레시오회 부관구장), 신태흥 이사(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 전성우 평화방송 PD(이태석 10주기 위원회 기획분과장)등이 참석했다.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장인 장동현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생활할 때, 평신도가 남수단 톤즈를 방문해 이 신부님을 돕고자 카페를 열었다. 2004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출발이었다”면서 이어 “2007년에 사단 법인이 된 후 2007년 이래 201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105억원 규모로 22개국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장학회 사업을 설명했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교육과 의료 활동을 펼치며 참사랑의 모범을 보인 이태석 신부를 위해 시작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이태석 신부 생전에는 이태석 신부가 활동하던 톤즈 지역의 청소년 교육과 의료 사업 지원에 주력했다. 그의 선종 이후에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지원 범위를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
장동현 신부는 이태석 신부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장동현 신부는 “울지마 톤즈 후속편 등이 이어지며 영화가 흥행과 시청률에 집중되는 게 마뜩잖았다. KBS 스페셜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톤즈의 아이들이 무리하게 한국에 데려와 졌다. 이태석 신부의 이름이 활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다. 그게 2013년 성탄절 즈음”이라고 회상했다.
백광현 신부 또한 장동현 신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백광현 신부는 “신부님과 수도회에 같이 들어왔다. 신부님 선종 이후에 과열된 현상을 보면서 신부님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저희 수도회에 이태석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때 제가 위원장을 맡았다. 신부님의 생각을 올바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1년에 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이라는 심포지엄을 처음 열었다. 신부님이 수도자로서 자기 삶을 충실히 사셨던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NGO 사업가가 아니었다. 신부님의 진짜 마음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한다. 한 사제의 삶이 상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태석 신분 살아 생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던 김상윤 신부는 이태석 신부의 치적인 브라스밴드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했다. 김상윤 신부는 “이태석 신부님이 수련을 하고 떠날 때, 제가 선교사를 돕겠다는 마음이 생겨 신부님과 연결이 됐다. 이태석 신부는 사제, 의사, 음악가였다. 이태석 신부는 어느 날 ‘이들의 피에는 악보가 흐른다’라고 말하더라. 밴드에 필요한 것을 준비해 보냈는데, 그 아이들이 1주일 만에 합주를 했다. 악기들의 운지법만 이 신부가 알려줬다. 첫번째 합주곡이 ‘사랑해 당신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톤즈에 브라스밴드 악단이 있다는 걸 경찰 관련자가 알게 된다. 내전 중이었는데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넣도록 여러 나라가 압박하던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추기경단 주교단 각국의 외무장관들이 모이는 자리에 밴드가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지게 된다. 그 밴드는 이태석 신부가 평화를 위해 만든 밴드다. 첫 번째 밴드를 했던 아이들이 대거 경찰청에 특채로 들어가게 됐다”라고 흡족해 했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 출신 신부다. 이태석 신분은 직업을 바꾼 이유에 대해 “나는 돌을 들고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보이면 돌을 버려야 되지 않겠니”라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상윤 신부는 “이 신부님이 의사는 돌로 표현했고, 성직자가 되고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자가 된다는 걸 다이아몬드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레시오회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행사로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미사, 이태석 신부 발자취 순례, 이태석 기념관 개관, 이태석 전기 출간, 영화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시사회, KBS 아침마당, 이태석 특집 생방송, 이태석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준비됐다.
장동현 신부는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성과를 설명했다. 장 신부는 “2005년도에 수단이 잠정적으로 평화 협정을 맺고, 2011년에 독립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젊은 나라다. 내전을 30~40년 했다. 교육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2009년에 2명을 초대하고, 이듬해에 한 명을 초대했다. 그 중에 두 명이 의대에 진학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토마스는 의대를 졸업해 부산 백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존 마이는 작년에 의사고시에서 실기는 붙었는데, 필기에 떨어져 필기 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게 큰 열매다. 2진으로 온 산티노댕이라는 청년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토목 기사가 돼 남수단에서 직장인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세 학생은 모두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후원했다”라고 말했다.
2020년은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파견돼 의사, 사제, 선생님, 친구로 8년간 헌신하던 중 암에 걸려 선종한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 ‘수단의 돈 보스코’로 불린다.
이태석 신부는 2001년 6월 사제 수품 후 평소 꿈이었던 선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아프리카 수단으로 출국했다. 톤즈의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웃들에게 친구, 교육자, 의사, 사제로 꿈을 펼치던 중 KBS ‘한민족 리포트’에 그의 활동이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태석 신부는 2008년 11월 예년처럼 한국으로 휴가를 왔고, 건강 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으나 2010년 1월14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전성우 PD는 “한국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를 잘못 알고 있는 면이 있다. 이태석 신부는 유쾌하신 분이었다. 그렇게 기억해 달라”고 청했다. (출처: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