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학회에 몸 담으면서 생각해봅니다.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2004년에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출국하는 이태석 신부님과 전화 통화하면서, ‘다음카페를 보면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였습니다. 당시 힘든 생활에 찌든 때여서 이 신부님과는 연락도 소식도 모르던 시기였습니다.
이 신부님이 출국하고 카페의 글과 사진을 찬찬히 다 읽어 보면서, 장학회 봉사자들이 당시 신부님께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태석신부가 정착하던 시기에 국내 방송에서 신부님의 생활이 방송되면서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공동체였습니다.
신부님 투병 때에 봉사자들을 간간히 볼 기회가 있었지만, 신부님의 장례식과 그 이후에 봉사자들을 다시 만나면서 처음으로 장학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장학회 안에서도 여러 일들이 지나가고, 몇 해 전에는 장학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장학회에 다시 봉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느님은 늘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불같은 마음이었고, 이제는 많이 평화로워진 좀 다른 마음의 봉사자가 필요하신 듯합니다.
오래전 교회 봉사단체에서의 지도신부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봉사 활동에서 일로서 하는 봉사 활동이 아니라 마음이 전달되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찿으라는 말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음식 봉사하기 전에는 늘 봉사자들이 먼저 식사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힘들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다들 겉으로만 수긍할 뿐, 눈 앞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늘 쫓기는 느낌이라 나를 챙길 생각도 못하고,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고,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수긍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일로서 하는 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또 좋은 마음이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런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30여 명이 넘는 봉사자들과 함께 20년을 계속한 의료봉사 일을 거부당한 것입이다. 진료하는 곳이 차로 1시간 반을 가야하는 먼 곳이라, 도착해서 허겁지겁 준비하고, 마치면 돌아오기에 급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불법 체류 근로자들이라 많이 고마워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불만이 쌓이고 있던 것을 간과하고 마음은 오만해져 갔습니다. 봉사자들의 태도를 강압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오해도 쌓이기 시작한 것을알지 못했습니다.
일로 생각한 것이고, 봉사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되새기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모두 처음에는 좋은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적인 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봉사는 내가 타인에게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기쁨을 안기고, 자신을 내적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마음을 자주 성찰해야겠고, 교육도 자주 받아야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나 자신을 내세울 때면 벌써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완전한 나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는 분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장학회에 대한 수도회의 많은 관심과 봉사자들의 선한 마음들이 더 커지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정효 안드레아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총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