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충렬 “이태석 신부는 왜 목숨까지 바친 사제가 됐는지 알리고 싶었다”
등록 2021.12.12 07:00:00수정 2021.12.12 08:34:22
전기 ‘신부 이태석’ 출간…가치있는 삶 담아
아프리카 오지에 사랑의 씨앗 뿌려
“훌륭한 인물 복원되어야 역사도 발전 가능”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공식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 저자 이충렬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2.12.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이태석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떠나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서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난한 남수단, 그 중에서도 오지인 ‘톤즈’에 가게 되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사제가 됐는지를 가능하면 정확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충렬 작가는 이태석(1962~2010) 신부의 삶을 담은 전기(傳記)를 쓴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신부 이태석'(김영사)은 이 신부가 몸담았던 한국 살레시오회의 공인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출판 인가를 받아 완성된 ‘공식 정본 전기’다. 이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 마을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대장암 투병 끝에 48세로 선종(善終)했다.
이 작가는 “그가 불우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목숨까지 바친 이유가 의사, 신부라서인지 아님 그 분이 갖고 있는 성정때문이었는지 궁금했다”며 “그 과정을 밝혀 독자들이나 젊은이들이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신부가 청소년을 끝없이 사랑하는 영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고 결론내렸어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 곳에서 찍은 이 신부의 사진을 봤는데, 표정이 굉장히 밝았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공식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 저자 이충렬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2.12. pak7130@newsis.com
그의 하루 일과는 너무 빡빡했다. 오전마다 200~3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오후에 오라토리오(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활동을 하면서 밴드부 아이들에게 노래를 연습시켰다. 저녁에 학생들 자습을 도와줬는데, 응급 환자가 심심치 않게 찾아와서 보통 자정쯤 잠자리에 들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신부는 의술과 음악에 재능이 있어 훌륭한 선교사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분은 의사이고 음악가였지만, 모두 선교 사목을 위한 도구로 삼았을 뿐입니다. 선교사를 자원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이 작가는 의대에 진학했던 이 신부가 어떻게 자신의 성소를 받아들여 사제가 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가 됐는지에 주목했다. 편지·이메일·축일 카드 등 이 신부가 직접 남긴 모든 기록을 섭렵했다.
의대 동창과 살레시오회 동료 신부들, 톤즈에서 함께 지낸 봉사자 등을 직접 취재해 육성을 담았다. 성직자의 삶뿐만 아니라 낯선 땅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남모르게 고뇌와 번민에 시달리는 모습도 녹여냈다.
“그는 옷을 걸친 이가 거의 없는 한센병 환자들과 움막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온몸이 감전된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의대 다닐 때 해부학 실습까지 한 그였지만, 50여 명의 남녀노소가 흙바닥에 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너무나 처참해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112쪽)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공식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 저자 이충렬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2.12. pak7130@newsis.com
이 신부의 삶과 영성을 충실히 복원하는 데에는 꼬박 2년 6개월이 걸렸다. “이태석 신부의 전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자 의미있는 발견은 신학생 시절에 이 신부가 톤즈의 나환자(한센인) 마을을 처음 갔을 때의 일”이라며 “당시 동행했던 제임스 신부 증언에 따르면 이 신부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악취를 참지 못하고, 벌판으로 달음질쳤다”고 전했다.
“저는 그 증언을 듣고 이것이 바로 인간 이태석의 모습이었고, 이 어려움을 딛고 2년 후에 톤즈의 선교 사제로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벌판에서 의술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이 작가는 이 신부가 톤즈로 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제임스 신부를 국내 최초로 인터뷰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심각해서 끝내 제임스 신부를 만나러 가지 못했고, 30여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어요. 일주일에 한 통 정도 왔다갔다 하다보니 반년이 걸렸습니다. 대면 인터뷰를 못하면서 책 출간이 1년 늦어졌는데요. 편집자님이 흔쾌히 두 번 편집하셨습니다.”
그는 이 책의 인세 전액을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신부가 생전에 함께했던 수단어린이장학회는 그의 뜻을 기려 아프리카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이태석 신부가 보여준 사랑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가 생각해봤습니다. 그 방법이 이 신부가 말씀하셨던 연대와 후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이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그의 ‘사랑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벽돌 한 장을 쌓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공식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 저자 이충렬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12.12. pak7130@newsis.com
이 작가는 1994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간송 전형필'(2010)을 시작으로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2012),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13), ‘아, 김수환 추기경'(2016), ‘천년의 화가 김홍도'(2019) 등을 펴내며 한국 문화·사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전념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한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내며 한국 전기문학의 개척자, 대표 작가가 됐다. 전기 작가의 길을 걸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대학시절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소설가의 꿈을 접었다가 3년 습작을 통해 마흔 살에 등단했다”고 회고했다.
“늙은 문청(문학청년)이 등단하다보니 아무래도 문학적 감수성이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졌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그래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외국에는 전기 작가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전기 문학(어떤 인물의 생애·활동을 주제로 한 문학)의 맥이 끊겨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우리가 존경할만한 분들은 대부분 인생의 변곡점이 있는데요. 저는 그 단초를 찾으면 기뻤습니다.”
고충도 토로했다. “인물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주인공의 삶을 총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시대적 배경과 주변 인물들의 기록까지 살펴야 한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까지 파악한 후에 그의 일생을 복원하는 것이 전기 쓰기의 어려움”이라고 털어놓았다.
“자료 조사를 통해 ‘이건 사실이 아니었구나’하고 쓴 걸 지우고, 하루에 원고지 한 장을 못 쓰는 날도 있어요. 전형필 선생님 책은 집필에 7~8년 정도 걸렸어요. 고미술, 서예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석탑까지 공부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집필 기간이 4년입니다. 쓸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힘들지만, 보람과 재미를 느껴요.”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공식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 저자 이충렬 작가가 1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2.11. pak7130@newsis.com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 정치인·기업인들의 자서전은 많아도 역사와 문화에 큰 업적을 남긴 분들의 전기가 매우 귀하다”며 “유럽과 달리 전기가 문학 장르로서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문학 장르를 시와 소설에 국한하는 일본식 ‘순문학’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전기 문학은 발전할 수 없어요. 훌륭한 인물이 복원되어야 역사, 문화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세종도서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신간 도서를 구매하는 도서관 등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로 25세에 순교한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정본 전기를 집필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협업해 작업하고 있으며, 내년 봄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no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