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미 살라맛뽀!(너무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손은진 카타리나 수녀입니다. 저는 지난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필리핀 칼로오칸 현지에서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의 도움으로 현지 어린이들에게 영양 지원과 무료 식사 제공 프로그램을 담당했습니다.
필리핀 매트로마닐라의 주변도시 중 하나인 칼로오칸에는 섬이나 산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사는 도시의 빈민가 지역이 대다수 있습니다. 이 마저도 일자리가 없을 때는 말 그대로 밥을 굶는 가족이 많습니다. 저는 루르드성모성당이 있는 까마린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지역은 루르드성모성당을 중심으로 까마린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가 함께 있는 지역입니다.
일 년 내내 건기와 우기만 있는 아열대성기후를 가진 필리핀은 대부분의 학교가 아침 일찍 수업을 시작합니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오전반과 오후반 수업이 4시간씩 교대로 진행됩니다.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기에는 학교 교실이나 운동장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좁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 거리에 수업이 끝난 학생과 수업이 시작되는 학생들이 교차될 때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꽉 찹니다. 지역 전체가 마비된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고단하지만 활기 넘치는 지역, 까마린!
주된 교통 수단인 트라이씨클(삼륜차)과 짚니(지프차를 개조한 미니버스) 등이 바삐 움직이고, 농구 하는 청소년들, 춤 연습을 하는 학생들, 시장 상인들과 가게들로 항상 활기가 넘치지만, 사실 이곳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는 아이들이 상당수입니다.
우리는 우선 이 넓은 지역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선정해서 도울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우선 지역을 11개의 공동체(다갈루어로는 빰마야난)로 나누고, 그 지역에 살면서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원봉사자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오게 된 아이들 100여 명에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가루로 건조된 유제품류, 영양 간식, 식사 대용 통조림 등을 나누었습니다. 포장된 아이템은 제법 커서 받아 들면 어린이들 가슴에 한아름 안깁니다. 꾸러미를 받아 든 아이들과 가족들의 감사와 안도, 기대로 가득 찬 어린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저의 가슴은 뜨겁게 타오릅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어린 학생들을 모두 도울 수는 없지만, 그 중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우리의 도움이 말 그대로 ‘삶의 기초적인 것’이 되어, 제발 배고프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일 년 정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가족이 식구 전체가 모두 굶주리다 보니, 어린이 대상으로 한 영양 지원이지만, 식량을 온 가족이 함께 먹고 있다는 딜레마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료 식사 제공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수녀회에서 식사를 만들어서 정말 배고픈 아이들을 앉히고 직접 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소년 알렌! 쓰레기 대신 희망을 줍다
여기 알렌이라는 소년이 있습니다. 계란형의 얼굴에 얇은 쌍꺼풀, 오똑한 콧날을 가진 11살의 이 소년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다 헤진 쌀 가마니를 둘러매고 쓰레기를 주으러 다닙니다. 다니다가 너무 배가 고프면 저희 수녀회의 초인종을 누릅니다. 처음 그 소년을 보았을 때가 잊히지 않습니다. 배고픔과 쓰레기를 줍는 수치스러움 앞에서 어린이로서의 천진함 대신 희망 없이 메말라버린 눈빛과 고단함이란….
우리는 초인종 소리에 수녀회의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숨어있는 어린 동생들이 때가 잔뜩 낀 얼굴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먹을 것을 달라고 달려옵니다. 그 소년은 친동생들 4명 뿐만 아니라 이모네 가족의 아이들까지 7명을 책임져야 했었죠.
우리는 이 알렌의 가족들을 우선 선정하여 1년 동안 점심식사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첫날에는 아이들도 이런 도움이 어리둥절했는지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아, 우리 수녀님들을 바람 맞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알렌의 가족들은 저희 수녀원에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알렌이 교복을 입고, 아침 수업을 마치고 수녀원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던 날입니다. “수녀님 배고파요!”하며, 책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는데, 얼마나 뛰어왔는지 코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수북한 한 대접의 밥을 다 해치우고 크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살라맛뽀!”(다갈로그어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저의 마음에도 하느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차오릅니다. 저는 혼자 조용히 외칩니다. ‘주님 살라맛뽀!’
하지만 이 글을 쓰며, 저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여러분 마라미 마라미 살라맛뽀!(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손은진 카타리나 수녀 /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