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부터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총회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나 입니다.
한번도 직접 만나 뵌 적 없고 다큐로만 알았던 이태석 신부님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제가 겪었던 하느님 체험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때는 질풍노도 시기의 명확한 꿈이 없던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학교에서 평소보다 일찍 기말고사를 치루고 외고 준비를 시키던 시기였습니다. 외고를 준비하지 않는 친구들은 선생님께서 틀어주시는 영화를 보곤 했는데 영화 대신 다큐를 보여주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때 운명적으로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를 보게 되었고 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던 신부님의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신부님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톤즈로 의료 봉사를 가는 의사의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고 부족한 저의 능력으로 인해 몇 번의 도전에도 끝내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오랜 시간동안 간직했던 꿈이었기에 이를 놓아주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저의 20대 초중반은 실패와 좌절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한 하느님께서 내 꿈 하나 안 들어주냐며 원망하기도 하고 심지어 ‘왜 다큐를 찍으셔서 이런 꿈을 갖게 했냐’며 이태석 신부님까지 원망을 하곤 했습니다. 진정 제게 마련하신 길이 의사의 길이 아니라면 놓아주지 못하는 이 꿈을 이제는 미련없이 스스로 놓아줄 수 있도록 그리고 길고 외로웠던 수험생활로 지친 저에게 행복한 순간들을 마련해 달라며 울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우울감과 무기력 속에 갇혀 있던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2016 WYD(세계청년대회) 참석을 권유하였고 카톨릭 소식지에 적힌대로 신청 하였습니다. 수도원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저는 당연히 서울대교구로 신청하여 참석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전 모임에 가서야 전 살레시오라는 수도회 여정을 신청했었고 살레시오가 이태석 신부님의 수도원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살레시오와 함께하는 WYD에서 살레시오 특유의 즐거움으로 매 순간이 행복했고 엄청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으며 좋은 인연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살레시오에서 알게 된 친구들의 권유로 대림동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하였고 WYD 이후에도 살레시오와의 인연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봉사를 시작하고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6호 시설 아이들을 만나며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저에게 주기도 하고 그동안 받고 싶었던 필요한 위로를 해주기도 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한켠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 사랑스러운 대림동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오랜 시간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신부 이태석’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눔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은 수단에서의 다짐과 같은 말이 아닌 신부님께서 현명한 관구장님께 보내는 메세지의 마지막 말이었는데 ‘특히 정말 보고 싶은 대림동 아이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세요’였습니다. 대림동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묻어있는 구절을 보면서 개인적인 일정으로 아이들을 못 보게 되는 날이면 아이들을 보고 싶어하는 제 모습과도 비슷하고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저의 이십대 초의 기도가 생각났고 우연이라고 여겼던 모든 순간들은 하느님께서 저를 살레시오로 오도록 인도했던 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신부님을 접했을땐 ‘의사’ 신부님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신부님은 의사의 역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분이셨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저는 의술이 아닌 대림동 아이들을 만나면서 신부님의 모습을 본받고 살레시오 정신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꿈을 자연스레 놓아주었고 다른 관심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뀐 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하느님은 제 기도를 듣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마법처럼 제 기도를 들어주시기 보다 저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원망이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현나 효임골롬바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총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