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23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선물해주십니다. 귀한 선물을 앞에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장학회 가족 여러분께 성탄 인사와 새해 인사를 함께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특별히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의 의미가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 가족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롭게 자리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인간이 되어 오셨을까요?
성경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고 이야기합니다(요한 3,16 참조). 한편, 이레네오 성인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이유는 우리를 당신과 같아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신비는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한(divinizzazione) 사랑인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쁨, 슬픔, 희망, 절망, 사랑, 갈등, 혐오 등의 모든 인간적 현실인 ‘아래로부터’ 우리를 하느님 당신께로 끌어 올려주십니다. 이 기반은 바로 당신의 모상에 의한 창조와 육화의 영성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인간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신심생활 입문]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겸손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온유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를 완덕에로 인도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서는 온유한 마음을, 하느님을 향해서는 겸손한 마음을 보존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비굴함이나 자기 열등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겸손은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사람만이 자기 본연의 모습대로 살 수 있습니다.
겸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humility’는 라틴어 ‘humilitas’에서 왔습니다. ‘humilitas’의 어원은 ‘humus(땅, 흙)’인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humilis’(부식토)를 뜻합니다.
부식토는 동물의 사체나 식물 등이 분해되어 형성된 검은 빛의 토양으로 생명이 자라기 아주 좋은 땅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겸손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관계 안에서 겸손의 본질은 자신이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길러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겸손의 핵심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가장 좋은 땅이 되어주셨던 성모님처럼 보다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날 수 있는 거룩한 토양이 되어주는 우리 장학회 가족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는 그 거룩한 여정을 함께 걸으며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가는 한 해가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박해승 요한보스코 신부, 살레시오회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