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 아래 가볍게 흔들리는 붉은 장미들의 얼굴이 해맑고 상냥합니다. 우리 청소년들도 이렇게 밝고 기쁘게 자라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이태석 신부님이 속했던 살레시오 가족의 2024년 생활지표(strenna)는 ‘우리를 꿈꾸게 하는 꿈’입니다. 살레시오 가족의 아버지인 돈 보스코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에 평생 영향을 미친 ‘9살 때 꿈’은 모든 살레시안들이 갖는 꿈의 원형입니다. 이 꿈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요한 보스코가 하느님을 모욕하는 아이들을 주먹질로 말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존귀한 분이 나타나서 “주먹다짐으로 하지 말고 온유와 사랑으로 이들을 네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은 다툼을 멈추고 그분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린 요한이 울면서 “제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아저씨는 누구시죠?”라고 묻자, 그분은 “나는 네 어머니가 하루에 세 번 인사드리라고 가르쳐 준 분의 아들이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존엄한 모습을 한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그 부인은 다정하게 요한을 부르더니 “자 보아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바라보니 소년들은 모두 달아나고 그 대신 염소, 개, 고양이, 곰 등 많은 동물이 나타났습니다. 그 부인은 “여기가 네가 일해야 할 곳이다. 겸손하고 강하고 굳건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라. 지금 이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너는 장차 내 자녀들에게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맹수들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큼의 온순한 양들이 나타나서 그 남자 어른과 부인을 환영하는 듯 그분들 주위를 뛰어다녔습니다. 요한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 알아듣게 말씀해주세요”라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부인은 요한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나면서 어떤 꿈은 꾸었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학회는 이태석 신부님이 꾼 꿈을 이어갑니다. 지난해에는 약 4천 명의 후원회원들께서 19억 6천여만 원의 후원금을 모아주셨고, 9억 1,300만 원을 남수단 등 16개국 32개 공동체에 지원하였습니다. 작년 후원금 중 10억 원은 한꺼번에 후원해 준 목돈이어서 적절한 지원처를 찾아서 올해 분배할 예정입니다.
내년 1월이면 벌써 이태석 신부 15주기가 됩니다. 2025년은 가톨릭교회가 희년으로 선포한 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희년(禧年, jubilee)은 모든 소유지가 원주인에게 되돌려지고 모든 노예가 해방되고 빚이 탕감되는 해방과 회복의 해입니다(레위 25,8-17). 장학회도 이태석 신부 15주기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쇄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은 이태석 신부님이 꾸었던 꿈속으로 우리도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장학회는 후원회원들께서 보내주신 후원금을 모아서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이 일은 대단히 필요하고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님이 여기에 머물고자 했다면 굳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땅 톤즈를 직접 찾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학회는 이태석 신부 15주기 기념사업으로 서간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동료 수도자, 친지 및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메일 등 자료를 한 데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는 작업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꿈과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기 위한 심포지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모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15주기를 기해서 이태석 신부님과 함께했던 이들 또 함께할 이들을 모을 생각입니다. 특히, 이태석 신부님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랑스러운 제자들, 존과 토마스를 총회사원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어엿한 전임의로 성장하였고 앞으로 한국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 이태석 신부님 생전에 그리고 선종 후에 톤즈를 방문했던 이들의 간담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15주기 기일 무렵에는 신부님의 고향 부산과 잠들고 계신 담양을 잇는 1박 2일 순례 일정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들은 지금까지 동고동락해온 회원들과 후원회원들입니다. 우리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천상에서 회원 및 후원회원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후원과 격려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우리 장학회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태석 신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최선호 /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