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아프리카 수단에서 희망 씨앗 뿌린 의사신부
“병원이 없는 곳에서 원주민들과 몇 년 살았을 뿐인데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의 공동 수상자인 이태석(요한) 신부는 “훌륭한 일을 하시는 의사회원들도 많은데 상을 훔쳐가는 것 같아 괜히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이 신부는 1987년에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군 복무를 마친 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입회, 뒤늦게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2000년 로마 살레시오대학 재학 중에 아프리카 남부수단을 방문했던 이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수단은 종교와 인종 갈등으로 20여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면서 남북이 갈리고, 경제적 기반마저 무너져 내렸다. 특히 남부수단은 흔한 전기와 전화마저 없는 불모지. 의사와 병원은 물론 약품도 귀한 까닭에 전염병 한 번 돌면 손 한 번 못쓰고 죽음을 맞아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내게 해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키로 결심한 이 신부는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남부 수단 톤즈마을로 파견을 자청했다.
“40~5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매년 홍역이 창궐해 하루에 40∼50명의 환자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가 있을리 없고, 속수무책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 신부는 열성을 다해 기도했다. 간절한 기도의 응답처럼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열 발전기가 한국에서 공수되고, 냉장고와 백신도 속속 도착했다.
백신을 맞은 아이들은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됐다. 살레시오수도회와 가톨릭 사제들을 통해 톤즈마을의 열악한 사정이 알려지고, 2003년 KBS 한민족 리포트에 이 신부의 모습이 방송되면서 Daum에 후원 카페(수단이태석신부님)가 결성됐다.
2000여명이 넘는 회원들로부터 한 푼 두 푼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이 신부는 성금을 아끼기 위해 손수 벽돌을 찍고, 시멘트를 비벼가며 병원을 세우고, 홍역·결핵·말라리아·한센병 등과 사투를 벌여 나갔다. 오후에는 아이들 교육에도 눈길을 돌렸다. 다국적 외국인 신부와 수녀들과 함께 벽돌을 찍어 돈보스코학교를 세웠다. 배움에 목말랐던 아이들은 수십리 길을 마다않고 학교를 찾았다.
“오랜 전쟁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칼을 들이대고 선생님들을 협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양처럼 공손하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교육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죠.”
처음 50명으로 시작한 8년 과정의 초·중등 과정은 Daum 카페 회원들이 만든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정기 후원금과 톤즈마을을 방문했던 환경부 공무원 이재현 씨가 쓴 <아프리카의 햇살은 언제나 슬프다> 인세 수익이 쌓이면서 1500여명이 배울 수 있게 됐다.
이들의 후원금은 2007년 톤즈 돈보스코고등학교를 개교하는 밑거름이 됐다. 올해 1월에는 ‘미주 아프리카 희망 후원회’가 창립, 힘을 보태고 있다. 깊는 절망 속에 신음하던 톤즈는 이 신부가 8년 동안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하나씩 결실을 맺으면서 희망을 꿈꾸는 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신부는 지난해 말 모처럼 휴가를 얻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암 판정이 이 신부의 발목을 잡았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도 특권이지만, 고난도 하나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을 통해 보다 가까이 하느님에게 갈 수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등포 살레시오수도회에 머물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 신부는 “저를 기다리는 많은 아이들과 형제 자매들이 있는 톤즈를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다녀오곤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4491번지 돈보스코살레시오 수도회 관구관 4층이며, 장례미사는 16일 (토) 오전 8시 30분 살레시오수도회 관구관 4층 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전남 담양 살레시오성직자 묘역. 문의(☎02-828-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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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철 기자
관련 링크 : 이태석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자 – 의협신문 (doctor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