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톤즈의 ‘이태석 신부 키즈’ 존 마옌 루벤(33)씨가 1월 21일 발표된 2020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앞서 2019 의사국가시험에 합격, 수련의를 마치고 오는 3월 전공의에 들어가는 토마스 타반 아콧(34)씨와 함께 둘 다 의사가 됐다. 2009년 말 한국에 들어와 말기 암 투병 중이던 이 신부를 만났지만, 한 달이 채 못돼 ‘형 같고 아버지 같던’ 이 신부를 잃은 뒤 2년 동안 우리말을 배우고 한국어능력시험 5급을 취득, 2012년 나란히 인제대 의대에 들어간 지 8년 만이다.
톤즈에서 이 신부 통역을 도맡던 아이들은 이제 30대 청년이 돼 이 신부가 졸업한 의대에서 남수단 출신 1ㆍ2호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아 시험에 합격했네요. 이 신부님께 받은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실기는 통과했지만, 이론 시험에 탈락했던 루벤씨는 이번엔 거뜬히 시험을 통과해 수련의 과정을 밟게 됐다. 지난해 시험에 떨어지자 루벤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며 “실패를 통해 배웠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멘토가 돼 주신 교수님들, 그리고 동기들 덕에, 또 8년 내내 친부모 이상으로 힘이 돼 주신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본당 주임 박진홍 신부님 덕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또한,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준 (사)수단어린이장학회(이사장 장동현 신부)와 기숙사비는 물론 ‘음으로 양으로’ 자신들의 학업을 도운 대학에도 감사를 돌렸다.
전공 선택은 고민 중이다. 열악한 남수단 의료 현실을 생각해 아콧씨가 외과를 선택했기에 자신은 내과나 산부인과를 고려 중이지만, 앞으로 고국의 의료 상황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그래도 ‘질병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형제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낯설고 물선’ 이역만리 의학 공부는 녹록지 않았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된 수업은 난수표와도 같았다. 특히 한자어가 어려웠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수업시간이든, 수업 외 시간이든 교수들과 동기들에게 묻고 또 물어 해결했다. 언어 문제도 어려웠지만, 문화 차이는 극복하기가 힘에 부쳤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이젠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면 남수단으로 돌아간다는 데는 두 사람 다 이견이 없다. 내전은 끝났지만, 혹독한 가난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신음하는 남수단 형제자매들을 돕는다는 데 생각이 일치한다. 다만 의사로서의 길과 후학 양성이라는 교수의 길을 놓고 고민이 있다.
“의사가 많지 않은 게 남수단의 가장 큰 문제지만, 의사 양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충분한 의료현장 경험을 쌓은 뒤 의사를 지망하는 후배들을 위해 강단에 서고도 싶습니다. 지금 남수단엔 수도 주바와 지방도시 와우에 의대가 있는데, 2012년 1월 남수단 정부 대표단과 한국의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수출입은행 등 주도로 추진됐던 ‘이태석 신부 기념 의과대학병원’ 설립이 아직도 성사되지 않아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루벤씨는 “정해진 건 없지만, 남수단에 돌아가면 일단 톤즈에 돌아가 일하고 싶다”며 “이태석 신부님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의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 신부 후배인 인제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예로니모, 54) 교수는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달라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런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해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다만 “토마스와 존, 두 제자가 남수단의 부족한 의료현실을 극복해 가며 의료인으로서 행복할 길을 찾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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