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살레시오회 선교사 이태석(요한 세례자, 1962∼2010) 신부를 향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수단어린이장학회 후원회원인 오이화(실비아, 59)씨는 “신부님이 톤즈에서 사신 건 8년밖에 안 됐지만, 그분이 이룬 업적은 80년을 사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그랬기에 그 짧은 선교적 투신은 꽃처럼 빛났고, 그 삶은 더 안타까웠다”고 고백한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유명일 신부도 “신부님께선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는 듯하다”며 추모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이 신부 기일을 이틀 앞둔 12일 광주 살레시오중ㆍ고 성당에서 (사)수단어린이장학회 주최로 봉헌된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미사에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400여 명이 몰렸다.
추모 미사를 주례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우리가 미사 성찬례 때마다 선포하는 말씀, 곧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 말씀을 이 신부님은 온 정신과 생각과 마음으로 실천하셨다”며 “오늘 추모 미사는 단순히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삶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사는 ‘또 다른 이태석’이 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남수단 톤즈에서 의학을 공부하러 한국에 유학 와서 지난해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존 마옌(35)씨는 “1999년 14살에 만난 이 신부님은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훌륭한 분이셨다”며 “의사가 되면 다시 톤즈로 돌아가 이태석 신부님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약속해 박수를 받았다. 이 신부 후배인 인제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택중(예로니모, 54) 교수는 “48세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 삶은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삶이었다”며 “이태석 신부님께서 남긴 향기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며 우리에게 사랑과 나눔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고 전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 이 신부의 넷째 누이 이영숙(크리스티나)씨도 “우리 가족도 신부님의 사랑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추모 미사를 봉헌한 살레시오회원들과 신자들은 담양 천주교 묘역으로 이동, 이 신부 묘소 앞에서 위령 기도를 바쳤다.
수단어린이장학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이재현(가브리엘, 59) 인천 서구청장은 “이태석 신부님의 미션을 잇는 길은 우리 모두 하나 돼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다”고 말했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11일 이태석 신부 발자취 순례단을 모집,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관구관 역사관에 재현한 대림동 수도원 성당과 이 신부 침실, 유품을 관람한 뒤 이 신부가 3개월간 요양했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양평 수도원, 부산 남부민동 이태석 신부 생가, 성소의 꿈을 키웠던 부산 송도성당, 이태석 신부 기념관 등을 돌아본 뒤 추모 미사와 묘소 참배에 함께했다.
순례에 함께한 보라매병원 심장내과 전문의 정우영(다니엘, 52)씨는 “이 신부님께서 의사가 되시려다가 신부님이 되셨다는 것이 부와 영예를 버린 것으로만 여겼는데, 순례를 해보니 원래 신학교에 가시려던 분이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의대에 가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정말 타고난 신부님이고 수도자라는 걸 체감했다”고 순례 소감을 전했다. 윤병칠(가브리엘, 71)씨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 끝까지 가는 선교사로서의 정진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이태석 신부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작은 이태석의 발길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