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PBC 뉴스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이충렬 실베스테르 / 「신부 이태석」 저자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희망을 일군 수도자.
사제이자 의사이자 교사로서 헌신적인 활동을 펼친 선교사.
바로 故 이태석 신부입니다.
다음달이면 벌써 12주기가 되는데요.
이태석 신부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전기가 출간됐습니다.
전기를 집필한 이충렬 실베스테르 작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 작가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전기를 집필하는데 꼬박 2년이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 네, 그렇습니다.
▷ 편지, 이메일, 메모, 축일카드, 기사까지 다 꼼꼼하게 확인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이번에 전기를 펴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 이태석 신부님은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주면서 지금까지도 선한 영향력을 펼치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인물도 한 10년 지나면 잊혀지기 시작합니다. 잊혀지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작년 10주기 때부터 전기를 준비를 해서, 서울대교구의 교회인가와 한국 살레시오회의 공인을 받아서 정본 전기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는 반응이 좋아서 보람을 느낍니다.
▷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향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 제임스 신부님이신데, 국내 최초로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제임스 신부님 이야기 나누신 얘기, 듣고 싶습니다.
▶ 이태석 신부님이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케냐로 선교 실습을 떠나십니다. 그런데 케냐에서 살레시오공동체 숙소에 있는데, 아주 우연히 신앙적으로는 하느님의 섭리로 톤즈에서 케냐로 물건 구입하러 오셨던 제임스 신부님을 만나서 저녁 때 오랜 시간 동안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제임스 신부님이 뭐라고 하냐 하면 “아프리카를 알려면 톤즈를 와야 된다. 거기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그런데 거기가 내전 중이고 또 이태석 신부님의 당시 신분이 신학생 수사였기 때문에 주교님이 허락을 잘 안 해주는 것을 그냥 사정사정해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과정과 이태석 신부님이 선교실습 때 갔던 곳이구나 하는 것을 알면서 제임스 신부님과 30여 차례에 걸쳐서 이메일 인터뷰 밖에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때문에 수단도 봉쇄돼, 이태리에서 만나려고 했더니 이태리도 봉쇄돼, 한국으로 모시려 했더니 너무 연로하셔서 그것도 쉽지 않아서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는데 굉장히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이메일로 인터뷰 하신 것도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 네.
▷ 이번 전기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도 담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인가요?
▶ 대표적인 예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태석 신부님이 신학생 시절 톤즈에 가셨을 때 얘기입니다. 그곳에서 여기도 나환자 마을이 있다 그러니까 “제임스 신부님,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곳을 꼭 보고 싶고, 제가 그곳의 환자들을 위해서 꼭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는 자신감에 충만해서 나환자촌에 갔습니다. 그런데 내리는 순간 그곳에서 널부러져 있는 나환자들과 그 움막 속에서 나오는 악취 이런 것 때문에 내리자마자 벌판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리고 수풀 속에 앉아서 “하느님 어떻게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1시간 반 동안을 거기에 머무르셨다고 이태석 신부님이 기록을 남기셨는데, 그 때 이제 거듭나는 겁니다. 선교사로서. ‘아,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의술이 아니구나. 가난한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음과 그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구나’ 그것을 느끼고 제임스 신부님한테 “죄송합니다. 제가 로마에 돌아가면 용기를 갖고 내적 영성을 좀 더 많이 해서 이쪽으로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일화가 굉장히 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 각오를 하고 가셨는데도 막상 현장에서 악취를 맡으시니까 본인도 많이 놀라셨던 것 같아요.
▶ 충격이 보통 심하셨던 게 아니라 그래요.
▷ 「신부 이태석」 중에서 시청자들과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짤막하게 낭독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가능하시겠습니까?
▶ 네, 지금 말씀드렸던 톤즈에 선교 실습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신학생 동료들이 ‘저 정도 놀랐으면 안 갈 것 같다’ 그랬을 적에 이태석 신부님이 기록으로 남긴 것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입니다.
“3주 간의 피정이 끝나서 이태석 수사는 고열과 오한에 시달렸다. 그는 로마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원에 갔고, 말라리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피정을 떠나기 전부터 증세가 있었지만 피정 때문에 참았는데, 이번에는 심한 구토증까지 나타나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형, 이런 고생을 했으니 ‘다시는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 거죠?’ 그러나 이태석 수사는 정색을 하며 되받았다. ‘아니, 나는 갈 거다’ 병원에 있을 때 어디서 말라리아에 감염된 것일까 생각해보니 수단에서였다. 그 덕에 고열과 싸우면서 오히려 수단을 더 자주 생각할 수 있었고, 그곳 주민의 아픔을 100분의 1이라도 느끼면서 동참할 수 있는 보배롭고 의미있는 선물을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다고 생각해. 이제 나도 그들과 똑같은 병을 앓았으니 그들과 같다. 이제 비로소 수단 사람들과 같아진 거야. 나는 수단에 꼭 갈 거다.’”
▷ 말씀해주신 부분이 그대로 잘 담겨 있네요.
▶ 네.
▷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 자료를 보니까 “이 책은 위인전이나 영웅담과는 다르다” 이렇게 돼있더라고요. 이 책이 독자들한테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십니까?
▶ 많은 분들이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를 보고 완성된 사제, 거의 맥가이버급 신앙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사제도 그렇게 훌륭한 사제가 되기까지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알 적에 우리는 그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프린치스코 교황님은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제22장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인들의 행적이 완전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관상해야 할 부분은 성인의 온 생애와 성화를 향한 과정, 여정,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그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그 성인의 모습은 그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전체적인 의미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 때 드러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에서 성공적으로 선교 사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두려움과 어려움 이것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선교사에게 필요한 내적 영성의 심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야 ‘아, 이태석 신부님이 이런 신앙 여정을 겪어서 그렇게 훌륭한 선교 사제가 될 수 있었구나’ 해서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 끝으로 책 인세를 전부 기부하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나눔 정신을 저부터 실천해야 되겠다. 전기 쓰고 그런 것 안 하면 창피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은 2003년도에 한민족 리포트라는 ‘수단에서 찾은 행복’ 그 다큐가 나가고 나서 이제 반향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단 이태석 신부 돕기’ 후원회를 만들었고 그것이 수단어린이장학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기부를 하면 그것이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앞으로도 동참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 「신부 이태석」을 집필하신 이충렬 실베스테르 작가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