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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태석 신부의 소개로 한국에 유학 온 남수단 출신 제자가 이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은 올해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이 신부의 남수단 출신 제자로는 두 번째 의사 탄생이다.
10대 시절 톤즈서 인연 맺은 뒤
인제대 유학 온 존 마옌 루벤 씨
재수 끝에 의사 국가 시험 합격
3월부터 백병원서 인턴 생활
(사)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는 “2020년 제84회 의사 시험에 고 이태석 신부의 소개로 남수단에서 한국으로 온 존 마옌 루벤(사진·33) 씨가 합격해 곧 의사 면허를 받을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이번 제84회 의사 국가시험에는 3210명이 응시했다. 2018년 이태석 신부의 제자 토마스 타반 아콧(35) 씨가 의사 면허를 받은데 이어 2번째 의사 제자가 탄생한 셈이다. 그는 3월부터 정식으로 인제대 백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존 씨는 토마스 씨와 함께 지난해 의사 실기시험해 합격했지만 필기시험에 아쉽게 떨어졌다.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의학과 한국어 공부를 병행해 올해 재수 끝에 의사 면허증을 품에 안았다. 그덕에 존 씨는 묘하게 고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인 올해 인제대 의대 졸업장과 함께 의사 면허를 갖는 ‘선물’을 받게 됐다. 한국에 온 지 11년 만의 성과다. 토마스 씨는 먼저 지난해 의사 면허를 취득해 현재 인제대 백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거치고 있다.
내전으로 피폐해져 있던 남수단 출신인 존 씨는 10대 시절인 2001년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미사를 봉헌할 당시 신부를 돕는 복사를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 신부의 권유로 토마스 씨와 함께 2009년 한국에 유학생 신분으로 들어왔다. 당시 이 신부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자신의 꿈을 말했던 두 청년을 기억하고, 수단어린이장학회를 비롯해 국내외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이들의 유학을 성사시켰다.
이렇게 두 사람은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오랜만에 이 신부를 만났다. 하지만 이미 병세가 악화된 이 신부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이들을 응원했다. 이 만남 뒤 한 달도 안 돼 이 신부는 선종했다. 두 사람이 의술을 배워 아픈 이들을 도와주는 삶을 걷는 게 어쩌면 이태석 신분의 마지막 바람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 들어온 두 사람은 연세대 한국어 어학당 등에서 한국어를 익힌 뒤, 2012년 인제대 의대에 나란히 합격해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됐다. 이 신부는 인제대 의대에 1981년 입학(3회 졸업)했다. 인제대 의대는 존 씨에게 학비를 전액 지원했고, 생활비는 수단어린이 장학회가 지원했다. 존 씨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졸업한 만큼 좋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며 “선종 10주기를 맞아 의사가 되니 신부님이 주신 선물인 것 같다. 신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정말 많이 자랑스러워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